우중충한 회색빛 하늘, 끈적거리는 대기의 습도 등이 요새 장마철에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날씨 탓에 기분까지 개운하지 않은 일상. 여행을 떠나자니 예측할 수 없는 기상조건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마땅히 움직일 수 없을 때 찾을 수 적당한 장소가 있다. 바로 경기도 양평에 있는 ‘후두둑 흙피리 체험장’이다. 야외에 나서 적당히 상쾌한 자연공기도 마시고 한적한 시골집에 들러 하루 종일 흙피리를 만들면 즐거운 하루가 빨리도 간다.

장마철에 마땅한 체험 장소가 없나를 곰곰이 생각하던 중 도자기 비엔날레 행사장에서 판매하던 흙피리를 생각해냈다. 도자기는 흔하게 체험할 수 있어 이제는 특색 없는 얘깃거리가 되었지만 흙피리라면 색다른 경험지다.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발견한 곳이 ‘후두둑 흙피리 체험장’(031-773-2042, 018-202-8806, www. hrgpiri.co.kr)이다. 이른 아침 전화를 했을 때 주인장은 잠에서 막 깬 듯 성의 없는 답변만 던져주고 있다. 통화 끝 무렵에 오전 10시 경에 체험객들이 찾아온다는 말을 전해준다.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곡수1리의 귀골마을을 찾아가는 날은 회색빛 하늘 탓인지 기분조차 개운치 않다. 그저 평범하게 논밭이 펼쳐지는 양평의 시골 마을. 날로 푸르게 변하는 벼 잎의 생생함을 확인하면서도 머리는 멍하다.

구수한 입담과 각종 흙피리
마을 안쪽에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는 세 그루의 느티나무. 주인장의 그쪽에 주차를 하고 걸어 들어오라는 말을 상기하고 차를 세웠다. 가구 수 많지 않은 평범한 시골마을. 흙피리 체험장이 없다면 여행객들은 눈길하나 두지 않을 평범한 촌락이다. 흙피리 체험장은 마을에 들어서도 정작 팻말은 없다.
마침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을 세우고 체험장을 물었더니 고갯짓만으로 마을 안쪽을 가리킨다. 잘 지어놓은 벽돌집이냐고 물었더니 더 안쪽의 허름한 집을 찾으라 한다. 차가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지만 주인장이 느티나무 근처에 주차를 하라는 데는 이유가 있을 터. 특별한 호기심도 기대치도 없이 흙피리집을 찾아 들어간다.
비에 젖어서인지 색깔이 많이 바란 초루한 초가집 한 채. 귀를 기울이니 수업이 시작된 듯 강사의 말이 담장 너머로 새어나오고 있다. 살림채인지, 강의실인지 구분이 안 되는 실내에는 옹기종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편한 복장에 길게 기른 머리를 뒤로 묶고 더워 보이는 검은색 모직 모자를 썼으며, 검정고무신을 신은 주인장. 치장되지 않은 집처럼 어수선해 보이지만 이런 일에 경험이 많은지 입담은 구수하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반짝 거리면서 강의에 몰입을 한다.
테이블 앞에 미리 만들어 놓은 오카리나, 꾸룩, 훈 등 자그마한 흙피리를 손에 들고 설명을 한다. 흙피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오카리나’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거위’라는 뜻인데, 리코더처럼 취구와 혀가 고정되어 청아하고 깨끗한 정확한 음을 만들어 준단다. ‘훈’은 단소나 대금의 취구와 같은데 부는 사람의 입 모양에 의해 바람소리, 꺾는 소리, 거친 소리, 청한 소리 등을 자유롭게 낼 수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크다. ‘꾸룩이(방구피리)’는 새를 부르고 개를 부르고 애인을 부르는 신호음처럼 들리는데 마치 휘파람과 같다.
이름도 모르는 그저 ‘후두둑’으로 통하는 주인장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한시간여정도 가볍게 강의를 한다. 매스컴에 소개될 필요 없다는 그는 말을 많이 아꼈다. 묻는 말에 대꾸하는 것에도 인색한 그는 아이들에게는 친절하면서도 재미있는 단어를 뒤섞여 관심을 한 몸에 이끌었다. 강의가 끝나면 흙을 빚어 피리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기대는 깨졌다.
미리 만들어 놓은 오카리나와 꾸룩이를 나눠주면서 숟가락을 하나씩 건네주는 것이 전부였다. 은색 나는 일상에서 쓰는 스텐렌스 숟가락이 대부분이고 두어 사람만 금색, 동색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앞선 강의 내용 중에는 숟가락 색깔에 따라 나중에 구워 냈을 때 색깔이 달라진다는 말을 했었다.
여튼 보편적으로 체험객들은 ‘오카리나’를 만들고 아주 어린아이들은 ‘꾸룩이’를 집어준다. ‘훈’은 단소 등을 불 줄 아는 사람에게 주는 제법 전문가 코스라 할 수 있지만 직접 체험은 하지 않는다.
손에 집어든 피리 모양은 각양각색이다. 물고기, 각종 산새, 개, 고라니, 오리, 고니, 토끼, 사슴 등등. 삼삼오오 짝을 지어 열심히 숟가락으로 껍데기를 문지르기 시작한다. 문지르기를 하는 것은 흙을 빚으면서 생기는 미세한 구멍들을 문질러서 메워주고, 촉감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것이란다. 열심히 문지르면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데, 다 된 사람들은 날카로운 송곳으로 이름을 새기면 1차 작업은 끝이 난다.

놀면서 하는 작업
주인장은 모두 모아 일일이 다시 손을 본다. 입구와 구멍을 다듬어 구워내서도 소리가 잘 날 수 있도록 손을 보는 것이다.
그런 후에는 뒤 켠 마당에 피어 놓은 모닥불 위에 철판을 올려놓고 그 위에 작품을 얹는다. 가마도 아닌 곳에서 과연 작품이 완성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 불이 활활 지펴지지도 않는다.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나는데 1천도의 고온에서 구워지는 보편적인 도자기의 일반 상식이 완전히 깨어지는 순간이다. 연기만으로 구워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흙은 갑작스럽게 불을 때면 표면이 굳어져 속 공기가 열을 받아 팽창하기 숨어있는 공기의 피난처를 마련해 주고 조심조심 나가라고 하는 작업이란다. 연기를 쐬어 주며 조심스럽게 진행하면서 불의 온도가 400도 정도 되면 물은 95%가 빠져나가고 ‘시껌장이’ 가 흙에 붙기 시작한다.
천천히 불빛에 구워지는 시간은 2시간정도.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고기도 구워 먹고 점심도 먹으면서 산에 올라가 마른 솔잎을 주워 모아 솥단지에 모은다. 막바지에 불꽃을 가하면 빨갛게 달아오른 흙피리를 솔잎이 든 차가운 솥단지 안에 넣으면 갑작스런 경직이 일어나는데, 이때 솔잎(낙엽)이 타면서 나온 연기가 흙피리 안으로 들어갔다가 갇히게 되면서 낙엽의 그윽한 향기가 흙 속에 남게 된다.
연기를 씌우는 작업이 끝나면 아이들을 모아 입안 가득히 물을 머금어 소방수 놀이를 장난처럼 하면서 뜨거운 흙피리를 식히는 마지막 공정을 하게 된다.
그저 장난처럼 ‘누가 누가 잘하나’ 식으로 솔잎 모으기, 물 멀리 품어내기를 유연하게 해내는 후두둑 주인장.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가 흘러가면서 멋진 흙피리가 완성된다. 자기가 직접 만든 피리를 손에 들고 연주경연을 펼치면서 하루 체험을 마감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실내에서만 하고, 굽는 일도 쓰레기 소각장처럼 얼키설키 만들어 놓은 가마(?)에 굽는다.
그래도 운치 있는 초가집 사이로 아름다운 망초 꽃이 피어나 해사하게 웃고 자그마한 연못에는 보기가 쉽지 않은 노랑 어리연꽃이 피어 눅눅한 여름 더위와 습기를 비웃고 있는 듯, 아름답기만 하다. 그 사이로 주인장이 부는 피리 소리가 꿈틀꿈틀 춤을 춘다. 축축한 공기 속으로 퍼지는 운치 있는 피리 소리는 장마에 녹진하게 내려앉았던 마음을 뽀송뽀송하게 말려 주고 있다.

■정보 :체험비-1인당 1만2,000원(30명기준 1만원), 전화나 인터넷으로 필히 연락.
■자가운전 : 여러가지 방법 중 서울-양평간 6번 국도를 이용해 양평읍내로 들어서면 된다. 양평읍내를 거쳐 여주로 난 37번국도 이용. 여주 이포 막국수촌 4거리를 만나면 용문이라는 팻말을 따라 좌회전. 이내 곡수라는 마을을 만나게 되면 이곳에서 여주 쪽으로 들어오면 왼편에 곡수1리(골말 마을)이라는 팻말을 만난다.
■음식점 : 흙피리를 만들 때 피운 숯불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 커다란 무쇠 솥이 준비되어 있고 필요한 재료는 전부 씻어서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그 외는 체험장에서 가까운 곡수에 있는 김치찌개를 잘하는 식당이 있으며 아니면 이포쪽 막국수 촌을 이용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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