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사무직 직원들의 애환을 다룬 웹 드라마가 한동안 화제였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됐는데, 회사 생활을 직원들 시각에서 생동감 넘치게 그렸다는 평을 받았다. 이 드라마는 매우 열악한 근무환경의 기업을 배경으로 한 만큼, 노동법을 위반하는 장면들도 자주 등장하는데, 실제 자주 문제되는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회초년생 주인공이 첫 출근 후 사장에게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사장은 “뭐? 계약서? 그런 것은 믿음으로 가는 거지”라며 에둘러 거부의사를 표시한다. 주인공이 재차 이를 요구하자 사장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다른 직원에게 계약서 작성을 지시하고, 직원은 “그런 것 써본 적 없다”고 구시렁대며 빈 워드문서에 임의로 내용을 기입해 근로계약서를 만든다(근로계약서를 제대로 교부 받은 회사 직원이 아무도 없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구직공고 내용과 다른 연봉액이 임의로 기입되고, 계약서는 이면지에 인쇄돼 교부된다.
사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이 불법임은 상식화 된지 오래다. 다소 과장된 드라마 속 상황이 쓴웃음을 곁들인 극적인 재미를 유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사용자든 근로자든 이러한 권리·의무의 구체적인 내용 및 법적 근거를 이해하고 있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다.
우선,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근로기준법은 근로계약 체결 시 근로계약서 작성을 강제하고 있지 않다. 법은 단지 ‘①임금의 구성항목, 계산방법, 지급방법, ②소정근로시간, ③주휴일 및 연차유급휴가’에 관한 사항을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서면으로 명시·교부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을 뿐이다(제17조 제2항, 법이 이러한 의무를 사용자에게 부과하는 것은 근로자가 근로조건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리한 취업을 강제 당하지 않도록 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 다만, 이러한 의무 준수 여부는 사용자에게 입증책임이 있고, 위반 시 형사처벌(500만원 이하 벌금) 대상이 되므로, 실무상 입증의 곤란을 피하기 위해 위 근로조건이 포함된 서면 근로계약서를 작성·교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법은 위 ①~③ 외에 취업규칙에 규정돼야 할 사항들(예: ‘취업 장소·업무’, ‘시·종업·휴게시간, 휴일·교대근로’, ‘임금 산정기간·지급시기’, ‘퇴직, 퇴직금, 상여금’, ‘출산전후휴가·육아휴직’, ‘안전보건’,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상벌’ 등) 또한 근로계약 체결 시 명시하도록 하고 있는데(제17조 제1항 제5호), 이는 반드시 서면으로 할 필요는 없고, 구두에 의한 명시도 가능하다.
다만, 명시의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는 점은 서면명시의 경우와 동일하기 때문에, 해당 부분 역시 추후 입증의 곤란을 피하기 위해 명시의무 이행이 유추될 수 있는 정황을 근로계약서에 기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위와 관련된 세부적인 내용들을 모두 기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대개는 ‘기타의 근로조건은 취업규칙 내용을 적용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둔 후 취업규칙을 함께 제시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와 같이 근로계약서 작성·교부는 근로조건 명시·교부 의무의 이행수단으로 활용될 뿐이므로, 계약서의 형식이나 명칭보다는 무엇이 명시돼 있는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기업들로서는 법상 명시돼야 할 근로조건들이 근로계약서에 제대로 기재돼 있는지 확인하고, 누락된 부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웹 드라마에서처럼 단순히 근로계약서 형식의 문서를 작성·교부한 것만으로는 법상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없다. 만약 주인공이 노동청에 사장을 고발했다면 사장은 처벌됐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사용자가 근로계약서를 작성, 교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휴게시간 등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건, 처벌된 사례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