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요람 실리콘밸리를 가다-2] 차트메트릭

최근 들어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성공의 꿈과 자신의 아이디어를 믿고 사업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인 경영자들의 스타트업이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혁신 기업들의 격전지인 실리콘밸리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들 한인 스타트업들의 진짜 경쟁력은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조성문 차트메트릭 대표
조성문 차트메트릭 대표

조성문 차트메트릭 대표는 게임빌의 1호 직원이었다. 게임빌은 스포츠 캐쥬얼 게임으로 유명한 1세대 게임사다. 지금은 컴투스가 됐다. 조성문 대표는 송병준 게임빌 창업자의 직속 후배였다. 송병준 창업자는 서울대학교 창업동아리 벤처의 초대 회장이다. 당시 아직 학부생이었던 조성문 대표는 송병준 창업자에 의해 회사로 거의 잡혀 오다시피 했다. 일 잘하는 직원이 절실한 한국계 스타트업이 종종 쓰는 방법이다.

선후배의 의리가 무기였다. 조성문 대표는 게임빌에서 막내이자 대리이자 과장이자 부장으로 일했다. 그렇게 고속승진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렇게 일당백으로 일했다는 얘기다. 당시 게임사들한텐 우리 게임이 어디에서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알아볼 방법이 따로 없었다. 구글스토어나 애플스토어 같은 앱스토어 마켓도 없었고 주요 플랫폼들의 인기 차트를 한눈에 보여주는 대시보드 같은 것도 없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막내 직원이 한땀한땀 데이터를 모아서 정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참 소모적인 작업이었다. 조성문 대표는 게임빌에서 7년 동안 일했다. 회사 막내들이 스스로를 갈아 넣어서 데이터를 정리하는 걸 보면서 이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다.

차트메트릭 로고
차트메트릭 로고

 

아티스트 인기 미래예측도 가능

15년 뒤 실리콘밸리에서 차트메트릭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조성문 대표는 게임빌 막내 시절을 떠올렸다. 차트메트릭은 전 세계 200만 뮤직 아티스트의 음악과 공연 활동을 총정리해서 한 눈에 보이는 대시보드로 보여주는 서비스다. 매일 150만개 음악을 트래킹한다. 하루 1만5000개 차트를 집계한다.

이미 유니버설 뮤직과 소니 뮤직과 워너 뮤직 같은 레거시 음반사 및 아마존과 애플과 구글 같은 스트리밍 뮤직 서비스들이 모두 차트메트릭의 고객사가 됐다. 2016년 6월 시작된 차트메트릭은 2021년 기준으로 연 매출 200만 달러의 서비스로 성장했다.

차트메트릭은 음악이 서비스되는 거의 모든 플랫폼을 실시간으로 추적한다. 예를 들어 BTS를 선택하면 빌보드는 물론이고 한국의 멜론까지 전세계 음원차트의 순위와 변동폭을 그래프로 보여준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와 틱톡 같은 SNS 플랫폼의 팔로워수 증감과 팔로워 내부의 양적질적 성장을 보여준다. 차트메트릭은 대시보드 서비스인 만큼 직관적이다.

특정 아티스트의 인기 흐름을 한눈에 보여준다. 블랙핑크는 여성 팬덤이 강한 아이돌 그룹이다. 그걸 오프라인 콘서트에 가면 느낄 수 있다. 차트메트릭은 그걸 수치로 보여준다. 차트메트릭의 인공지능이 블랙핑크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을 분석한다.

프로필을 바탕으로 성비와 인종과 연령을 구분해낸다. 블랙핑크의 팔로워는 80%가 여성이다. 인종은 아시아인이 50%다. 연령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이 50%다. 나아가서 블랙핑크 팬들이 어떤 패션브랜드를 선호하는지도 보여준다.

블랙핑크의 멤버들은 각각 샤넬과 셀린과 생로랑과 디올의 글로벌 앰버서더들이다. 블랙핑크 팬덤이 어떤 브랜드들을 선호하는지를 알 수 있다면 소속사 YG입장에선 이런 광고 계약 협상을 하기에 매우 유리해진다.

나아가 차트메트릭은 과거 어떤 콘서트나 이벤트가 있었을 때 팬덤에서 큰 변화가 있었는지를 실시간으로 추적해준다. 콘서트의 효과가 어느 정도였는지 팬사인회의 효능은 얼마만큼인지도 보여준다.

미래 예측도 가능하다. 요즘 뜨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언제부터 떴고 지속 기간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해볼 수 있다. 반대로 지는 해도 알 수 있다. 특정 아티스트가 요즘 인기가 시들한다는 걸 대시보드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검색량이 줄고 소셜 반응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응책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이렇게 차트메트릭은 점점 음악 산업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돼 가고 있다.

이른바 데이터 드리븐 뮤직 비즈니스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혁신은 인문과 기술의 교차로에서 일어 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을 통한 빅데이터 처리 기술을 음악이라는 인문 시장이 접목시킨 것이 조성문 차트메트릭 대표의 혁신이었다.

무엇보다 음악 산업 자체는 데이터 처리 기술이 없다는 점이 중요했다.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데이터를 처리할 수 없어서 인간의 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음반사마다 데이터 분석 부서를 두려면 비효율적이다.

음악도 알고 데이터도 아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반면 차트메트릭에 요청하면 월 140달러의 구독료만 내면 원하는 데이터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훨씬 효율적이다.

지구촌 음원차트 순위·변동‘한눈에’

AI 빅데이터 처리기술에 음악 접목

모든 음악서비스 플랫폼 실시간 추적

팔로어 수 증감·양적질적 성장 수치화

창업 5년만에 연 매출 200만달러 돌파

유니버설 뮤직·애플·구글도 고객사

실리콘밸리서 한국벤처 멘토역 톡톡

B2B로 클라이언트 고민 해결

차트메트릭은 최근 실리콘밸리의 성공 창업 트렌드인 SaaS와 B2B가 결합된 대표적인 사례다. 소프트웨어 애스 어 서비스(SaaS)는 바꿔 말하자면 자체적으로 솔루션을 찾기 어려운 문제를 외부에서 솔루션을 빌려와서 해결하는 걸 말한다.

음반사가 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자체 개발하긴 어렵다. 차트메트릭의 솔루션을 빌려와서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음반사의 존재 목적은 데이터가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B2B는 창업자가 누구의 문제를 풀 것이냐와 관련이 있다. B2C는 불특정 다수 소비자가 느끼는 불편한 문제를 풀어준다. 음식 치타배달(빠른 배달 서비스)을 시켜준다거나 상품 새벽 배송을 해주는 식이다. 집에서 빨리 편리하게 음식을 먹고 쉬고 싶은 문제를 해결해준다.

반면 B2B는 특정 클라이언트가 가진 깊은 문제를 풀어준다. 우리 아티스트가 요즘 인기가 시들한 이유를 알고 싶다거나 전 세계 어느 도시에서 월드투어를 하는 게 효과적인지 알고 싶다는 구체적인 질문이다. 소비자의 일반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주는 B2C에 비해 클라이언트의 구체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주는 B2B는 특히 실리콘밸리의 한국계 창업자들의 주무대다.

미국 사회의 소비 트렌드를 알아야만 하는 B2C와 달리 B2B는 성실하고 치밀하게 고객사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계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갖고 있는 엔지니어링 능력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경쟁사보다 고객사의 문제에 빠르게 솔루션을 찾아내줄 수 있다. 차트메트릭은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한국계 성공사례다.  

조성문 대표는 게임빌을 나와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 MBA를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회사가 오라클이었다. 오라클은 대표적인 B2B SaaS 기업이다. 게임빌에서 매일 소비자들의 변덕에 시달렸던 조성문 대표한테 오라클의 B2B 비즈니스 모델은 신세계였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시니어 프로젝트 매니저와 프린시펄 프러덕트 매니저로 일했다.

블로그 통해 실리콘밸리 소식 전파

안정적인 수익창출을 기대할 수 있는데다가 워라밸도 꿈꿔 볼 수 있었다. 게임회사는 어디든 허슬 개발이 주무기다. 월화수목금금금 달리는 게 기본이다. 게임 소비자들한텐 주말도 낮밤도 없기 때문이다. 조성문 대표는 금을 캐러온 광부들한테 리바이스 청바지를 파는 일을 하겠다고 작정했다. 그렇게 찾아낸 청바지 사업이 음악매니지먼트사한테 데이터를 파는 비즈니스였다.

사실 조성문 대표는 엔지니어였지 음악에는 문외한이었다. 아무런 네트워크가 없었다. 당연히 클라이언트도 없었다. 창업했을 때만 해도 이게 사업이 될지 어떨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음악에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가설만 있었을 뿐이었다. 구글 검색에 몇 가지 검색어를 올려놓아봤다.

우연히 런던의 음반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연락이 왔다. 데이터 분석에 갈증을 느끼던 차였다. 이런 서비스가 없는지 관심이 있다가 차트메트릭을 찾아낸 것이었다. 런던 음반사 관계자는 조성문 대표의 설명을 듣더니 고객들을 모아주기 시작했다. 아무런 인연도 없던 사이였다. 자발적으로 차트메트릭의 홍보대사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걸 실리콘밸리에선 페이 잇 포워드라고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먼저 도와주는 문화다. 결국 그렇게 줬던 도움이 돌아오더라는 경험 덕분이다. 조성문 대표는 한국계 실리콘밸리 창업자들 사이에서 페이 잇 포워드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핵심 인물이다. 실리콘밸리 최대 한국인 네트워크인 베이 에어리어 K그룹의 공동대표를 오래 맡았다.

실리콘밸리 일대 빅테크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은 줄잡아 5000명 정도로 본다.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사람들만 놓고 봐도 1500명 가량이다. 이들을 하나로 묶고 서로 돕고 끌어주는 역할을 조성문 대표가 하고 있다. 차트메트릭 창업 과정에서 페이 잇 포워드의 도움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조성문 대표가 조성문의 실리콘밸리 이야기라는 유명 블로그를 통해 실리콘밸리 소식을 한국에 전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현지 소식이 갈급한 한국 예비 창업자들한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차트메트릭은 이미 안정적인 매출을 달성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음반사들은 이미 차트메트릭의 데이터 분석을 필수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연간 구독을 주로 하고 매년 갱신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특히 요즘처럼 스타트업 투자의 겨울에는 대박 투자를 받는 것보다 안정적 매출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게 가장 매력적이다.

데이터는 실리콘밸리에선 제2의 원유로 통한다. 다만 데이터 자체만으로는 가치가 없다. 그걸 가치 있는 인포메이션으로 정제해주고 다시 한눈에 보이는 대시보드로 정리해줄 때 비로소 상품이 된다. 차트메트릭이 모범사례다.

- 신기주 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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