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생태계는 울창한 숲과 같다. 한켠에선 스타트업이라는 어린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자라난다. 다른 쪽에선 장성한 유니콘과 대성한 데카콘들이 울창한 침엽수림을 이룬다. 때론 규제가 들어와서 숲이 밀림이 되는 걸 막는다. 때론 규제가 리스크가 돼서 자라나던 스타트업이 숭덩 잘려나간다.

때로는 인플레이션과 리세션 같은 거시경제 변화 때문에 앞서가던 스타트업이 주춤하거나 뒤처졌던 스타트업이 급성장한다. 연준과 한국은행 같은 중앙은행의 금리통화정책 때문에 유니콘의 IPO가 성공하거나 실패하면서 숲의 크기가 커지거나 작아진다.

숲에 투자라는 양분을 공급하는 건 VC들이다. 벤처캐피털들은 숲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될성부른 스타트업들을 찾아낸다. 성장하는 스타트업과 눈 밝은 벤처캐피털의 만남이 이뤄지면 숲이 더 울창해진다. 이것이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혁신의 숲 속 풍경이다.

 

스타트업 비전까지 제시

그런데 혁신의 숲에 없는 게 하나 있다. 지도다. 나침반이다. 내비게이션이다. 숲에 들어가면 길을 잃기 쉽다. 숲에 들어가야 산삼을 캘 수 있지만, 산삼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기가 너무 어렵다. 더 어려운 건 잘못 숲에 들어갔다간 길을 잃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이래선 나무를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격이다.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 스타트업 CEO들도 회사를 이끌어가는 스타트업 CEO들도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들을 찾아내려는 벤처캐피털 투자심사역들도 심각한 정보 비대칭에 시달리고 있다.

홍경표 마크앤컴퍼니 대표
홍경표 마크앤컴퍼니 대표

혁신의 숲이 가진 태생적 약점이다. 유가증권시장처럼 거래소에 정보가 모여있고 공시를 확인할 수 있는 투자의 장과는 다르다. 그래서 혁신의 숲에선 길을 찾는 데에만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마크앤컴퍼니의 홍경표 대표는 바로 이 부분에 주목했다.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처럼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도 숲에 산책로와 등산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미국엔 피치북과 CB인사이트나 크런치베이스 같은 인포메이션 비즈니스 기업들이 있다. 피치북과 CB인사이트 같은 기업들은 스스로 VC 역할과 업계 내비게이션 역할을 함께 한다.

피치북 뉴스레터는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현황을 파악하는 최선의 도구다. 피치북 같은 인포메이션 기업의 존재 여부는 결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성숙 단계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홍경표 대표는 한국의 피치북으로 혁신의 숲을 기획했다. 나무를 모아다가 숲을 보여주는 곳으로 혁신의 숲 서비스를 디자인했다. 혁신의 숲은 202110월 공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 남짓된 혁신의 숲엔 한국 스타트업 4500개 이상의 정보가 모여 있다. 투자 유치 이력, 고용 현황, 재무 정보, 소비자 거래액, 재방문율 같은 재무정보부터 소비자거래분석, 서비스 트래픽 현황,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한 평판분석 같은 성장지표에 보유특허 같은 지적재산정보까지 입체적인 정보를 모아뒀다.

단지 데이터만 보아놓은 것이 아니다. 데이터에서 인포메이션을 추출했다. 해당 스타트업에 대한 인사이트가 담겨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런 데이터와 인포메이션을 한눈에 보이도록 대시보드 형태의 인포그래픽으로 제공한다.

알 수 없는 통계 숫자만 난무하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트렌드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혁신의 숲을 통해 투자자 입장에선 스타트업의 내부 정보와 인더스트리의 트렌드를 알 수 있다. 투자 결정에 도움이 된다. 창업자는 최근 투자 시장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고 창업 트렌드도 한 눈에 알 수 있다. 숲의 어디에서 삽질을 할지 지금 파고 있는 지역에 정말 금맥이 있는지 아니라면 피봇팅을 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스타트업 CEO들은 본인 비즈니스에만 매몰되기 십상이다. 몰두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틈이 없기 때문이다.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는 격이다. 숲을 봐야 나무를 제대로 심는데 말이다.

 

큰 그림·디테일 한눈에 파악

혁신의 숲에 따르면 20227월 한 달 동안 이뤄진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12000억원 정도다. 시드 투자부터 인수합병 단계까지 149개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았다. 산업별로 보면 핀테크가 3180억원이고 콘텐츠가 3000억원이고 헬스케어바이오가 1500억원이다. 이렇게 스타트업 생태계 어디에서 얼만큼의 돈이 돌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창업과 투자의 기준이 될 수 있는 핵심 지표다.

7월에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들을 순위별로도 살펴볼 수 있다.

1위는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다. 토스는 3000억원을 투자 받았다. 누적 투자액은 12000억원이다. 2위는 아동 대상 온라인 교육 플랫폼인 글로랑으로 120억원을 투자받았다. 3위는 여행렌터카예약플랫폼인 찜카를 운영하는 네이버모빌리티로 100억원을 투자 받았다. 4위는 온라인동영상강의플랫폼인 큐리어슬리로 100억원을 투자 받았다. 5위는 전기차충전플랫폼인 플러그링크로 70억원을 투자 받았다.

1위부터 5위까지 투자규모만 놓고 보면 최근 벤처캐피털의 투자 트렌드가 드러난다. 결국 최근엔 돈이 핀테크와 모빌리티와 e에듀케이션으로 몰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이런 관련 정보들은 과거엔 개별 회사들이 알음알음 입소문을 수집해서 알아야만 했다. 언론보도를 스크랩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따지고 보면 각 회사들이 제공한 보도자료가 기사화된 걸 새삼 모아놓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4500여 벤처 입체적 정보 제공

통계 외 창업트렌드까지 분석

창업·투자자 간 핵심지표 제시


두나무 등과 투자 유치·협업

국민대 연구센터와도 업무협약

스몰엑시트 시장 진출 꿈꿔

혁신의 숲에서 정보를 모으는 일은 결국 이렇게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줍줍해서 모으는 식이었다. 혁신의 숲은 나뭇가지들과 나무들과 숲 모두들 보여준다. 혁신의 숲에 접속하면 큰 그림과 작은 디테일을 모두 알 수 있다.

사실 한국에서 이런 스타트업 인포메이션 서비스가 기획된 건 처음이 아니다. 2016년에 시작한 더브이씨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더브이씨를 창업한 변재극 대표는 스타트업 정보들을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듯이 모았다. 가내수공업 방식에 가까웠다. 이런 방식으로도 더브이씨엔 투자데이터가 15000건 이상이 쌓였다. 더브이씨의 월간 이용자수는 20만명 이상이다.

혁신의 숲은 더브이씨의 방식에 더해서 추가로 효율적인 정보 수집 방식을 활용한다. 카드사들과 제휴해서 스타트업 전용 법인카드를 발급하는 것도 방법이다. 법인카드 내역을 기반으로 지출현황과 고용현황과 매출현황까지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스타트업들한텐 카드사 혜택이 주어진다.

혁신의 숲은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다. 20225월 혁신의 숲은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 투자이면서 동시에 협업에 가깝다. 혁신의 숲에 투자한 나이스평가정보와 두나무 그리고 제트벤처캐피탈은 모두 스타트업 관련 정보들이 모이는 일종의 데이터 저수지다.

나이스평가정보는 스타트업이 VC한테 투자를 받기 위해서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투자등급을 제공하는 곳이다. 당연히 스타트업의 내부 정보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 두나무는 블록체인과 코인 관련한 스타트업이라면 당연히 상장을 추진하는 대형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다. 거래소만큼 정보가 모이는 곳도 없다. 제트벤처캐피털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의 합작사 Z홀딩스가 운영하는 CVC. 소프트뱅크와 네이버만큼 한국과 일본 그리고 글로벌 지향 스타트업 정보가 모이는 곳도 없다.

여기에 국민대학교 혁신기업연구센터와 업무협약까지 더했다. 데이트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구축하는 작업을 함께 한다. 혁신의 숲은 이런 정보망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한다. 숲을 보기 위해 나뭇가지도 줍지만 측량 회사들과 협력도 하고 항공촬영도 하는 셈이다.

 

혁신장터 꿈꾸는 혁신의 숲

홍경표 마크앤컴퍼니 대표는 온라인 결제와 모바일 광고 플랫폼을 창업해서 성공시킨 연쇄 창업가다. 2013년 한화생명 드림플러스 투자 총괄로 합류했다. CVC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을 주도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를 파악했다. 2017년 드림플러스 강남센터 개관에도 간여했다. 스타트업들한테 공간을 제공하면서 네트워크를 맺었다. 2019년 마크앤컴퍼니를 설립해서 스타트업 투자에 나섰다.

이때 혁신의 숲이라는 인포메이션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성화시키려면 누군가는 길을 내고 지도를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평소에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당장은 돈이 안 되더라도 말이다.

혁신의 숲은 스몰엑시트 시장에 관심이 있다. 지도를 만드는 일은 큰 돈이 안 되지만 지도가 보물지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스몰엑시트란 스타트업들의 비상장 주식을 거래하는 걸 말한다. 이미 카카오증권에서도 비상장 유니콘의 주식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토스나 당근마켓의 비상장 주식이 고가에 거래된다. 대부분 스톡옵션을 받은 직원들이 상장 이전에 현금화를 원하기 때문에 이뤄지는 거래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울창해질수록 이런 비상장 주식 거래 수요도 늘어나게 된다. 주식 시장만큼 크진 않지만 분명 공급과 수요가 있는 시장이다. 스몰엑시트 시장을 만들 수만 있다면 혁신의 숲에선 정보뿐만 아니라 지분도 거래된다. 정보가 돈이 되는 시장은 결국 투자 시장이다. 이렇게 되면 혁신의 숲은 혁신의 장터가 되는 셈이다.

나무가 숲이 되고 숲은 시장이 된다. 길이 나고 지도가 보이고 내비게이션에 생긴다. 사람이 모이고 정보가 모이고 돈이 모인다. 이것이 바로, 생태계의 진화다.

 

- 신기주 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홍경표 마크앤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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