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협동조합에 대한 감사 요청서가 서너 개나 접수됐다. 7, 8월에는 보통 무더위와 휴가철이 겹쳐 업무도 조용하고 사무실 전체가 잔잔한데, 좀 예외적인 분위기다. 감사 요청 이유는 조합의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들과 감사 선임 절차의 하자, 업무추진비나 활동비의 부당한 집행, 조합 운영비의 불투명한 지출, 절차를 지키지 않은 사적인 직원 채용, 조합재정의 사적인 이용 등이다.

감사업무를 몇 년째 하다 보니 굳이 내용을 읽지 않고도 대충 내용이 미뤄 짐작된다. 제목은 민원, 진정, 고발 등등 다양하고도 심각해 보이지만 내용은 엇비슷한 범주 내에 있다. 어떤 것은 잘못된 것을 조목조목 짚어 제시하는 객관적 입장을 견지해 설득력이 있다. 또 객관적인 문제점보다 감정이 먼저 개입돼 잘못하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부조리함을 강조하는데 중점을 둔 유형도 있다. 대개는 집행부나 특정인을 성토하는 것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내용과 형식에 상관없이 주변의 소소한 상황을 털어 내면, 문제의 시작은 사람 간의 갈등이다.

민원이 발생하면 먼저 현장에 가서 자료를 확인하고 사실관계를 따져본다. 민원인이 제기한 내용뿐만 아니라 민원을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객관적 정황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충분히 들어본다. 민원인은 단편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는 내용만 뽑아서 제시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문맥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의 단초는 사람사이 갈등

조합원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조합집행부의 균형감각 중요

현장을 확인하고 전후좌우 정황을 파악하다 보면 민원을 둘러싼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된다. 감사를 요청한 내용은 대체로 퍼즐처럼 단편적인 조각들로 분절돼 있다.

그래서 현장 조사는 분절된 조각들을 이어 붙여 큰 틀에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퍼즐 맞추기와 같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해당 조합의 분위기나 관행, 집행부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도 등등을 알 수 있다.

감사 내용에 대한 판단은 현장 조사에 기반하지만 조합 운영 관례를 반영하고, 다른 조합들의 운영사례도 참고해 문제의 경중을 가늠한다. 소소한 지침 위배사항이나 관행으로 굳어진 회색지대에 대한 가치판단으로 귀결되고, 현장 조치나 시정 권고 정도로 마무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민원인들이 생각하는 명약관화한 잘잘못의 판단이라든지 잘못된 관행에 대한 일벌백계의 처분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결론이다. 조합 감사는 조합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최소한으로 개입해 스스로 자정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의심이 들어도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해 입증할 권한이 없는 점도 감사의 한계이기도 하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민원은 조합 내부 사람 간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어떠한 이유든 이사장에 대한 불만이나 조합 집행부에 대한 불신이 그 발화점이다. 조합원들의 의견에 대한 충분한 수렴 없이 사업을 집행하는 불통에 대한 불만도 많다. 사소한 불만이라도 해소하지 않은 채 쌓이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폭발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격이다.

조합은 조합원들이 서로 필요에 의해 모여서 구성한 자율 조직이다. 조합을 대표하는 장과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서 수렴하고 조합원 전체의 편익에 합치하는 의사결정을 할 의무가 있다. 수렴된 내용들을 정관과 규정, 이사회와 예산서 등의 객관적 자료에 반영해 충돌이나 모순이 없도록 하는 것도 조합 집행부의 일이다. 이러한 절차를 도외시하는 일방통행식의 업무로 인해 조합의 자율성과 조합 집행부의 대표성은 약해지고, 다툼과 민원의 원인이 된다. 사람살이가 그러하듯 협동조합 운영도 소통이 만사다.

장경순
중소기업중앙회 상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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