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조선소의 다른 도크에서 중대재해사고가 발생하자 전체 조선소에 대한 작업중지 명령이 내려져 협력업체 근로자 2500명이 2주간 일손을 놔야 했다.” 지난 17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개최된 중소기업 규제개혁 대토론회에 참석한 대기업 사내 하청 중소기업인의 하소연이다. 이날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중소기업을 힘들게 하는 229건의 현장애로 규제를 담은 중소기업 규제개혁 과제집을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전달했다.

이어진 간담회에서는 한덕수 총리가 점심약속도 취소하면서까지 현장에서 나온 규제를 모두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여 예정된 시간을 훨씬 초과해 2시간 넘게 진행됐다.

한 총리는 대기업은 규제가 조금 있어도 이겨낼 수 있지만 규제로 가장 괴로운 것은 중소기업이라고 말했다. 이는 중소기업 규제의 특성인 역진성과 일맥상통한다. 매출액 대비 규제비용은 소기업 6.6%, 중기업 4.4%, 중견기업 2.3%로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규제부담이 더 크다. 인증심사 비용이나 의무적인 장치구입비용 등 직접적인 부담뿐만 아니라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투입하는 시간과 노력 등 무형적인 비용까지 더해진다면 대·중소기업 간 규제수용능력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기술발전과 급격한 산업변화도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미래에 일어날 변화를 사전예측해서 규제를 설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령, 입지분야에서 네거티브 규제 요구가 높아지자 2020년 정부는 산업단지 네거티브존 활성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지방 산업단지는 여전히 애로를 호소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부산의 미음산단에는 풍력 부품업체들이 입주해 있는데, 이들이 생산하는 풍력타워 플랜지는 지름이 7~8m가 넘어서 특수포장을 해야 한다. 그런데 미음 산단에는 특수포장을 하는 창고업체가 들어갈 수가 없어서, 8km 떨어진 녹산산단까지 이동해서 포장하고, 다시 수출항으로 운송하는 이중 불편을 겪고 있다. 이는 기존 산업구조의 틀에 맞춰 규제가 만들어진 탓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규제개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역대 모든 정부의 중점 추진과제였으나 우리나라의 규제 국제 경쟁력은 114개국 중 87위 수준이고, 지난 5년간 규제가 개선됐다고 응답한 중소기업이 약 17%에 불과할 만큼 체감도도 낮다. 규제개혁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일선 공무원들이 불필요한 규제를 스스로 발굴해 개선할 수 있도록 적극행정을 유도해야 한다.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아무리 규제개혁을 주문해도 일선 행정 현장에서 담당 공무원이 움직이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해결책으로 기업투자를 가로막거나 기업을 힘들게 하는 규제를 발굴해 개선하는 공무원에게는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규제관리 체계도 중앙정부 중심에서 중앙정부, 국회, 지방자치단체간 유기적 협력을 통한 범 국가적 규제관리시스템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날 행사에서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이 앞으로도 현장규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정부와 소통하겠다고 밝힌 만큼 정부도 중소기업계와 적극 협력해 신규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거나 중소기업을 힘들게 하는 규제를 발굴하고 이를 과감히 혁파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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