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대명절 추석이 가까워 오자 사회 곳곳에 활기가 돈다. 전국 각지를 오가는 물건 싣고 나르느라 택배원들은 일년 중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고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맞이하는 추석 대목 장사에 시장 상인들은 기대감을 내비추고 있다.

온오프라인 유통업계 역시 각종 명절 기획전을 앞다투어 선보이는 중이다. 추석을 앞두고 이렇게 모두가 분주한 이유는 바로 추석 선물에 있다.

명절에 가족이나 친척, 가까운 지인을 비롯해 회사 직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선물하는 문화는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이다. 전쟁이 벌어지던 때에도 역병이 창궐하던 때에도 명절에 선물을 건네는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한우·과일세트 여전한 단골

추석이나 설에 고마운 이들에게 선물하는 관습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지금의 명절 선물세트 개념이 정립된 건 1960년 대부터라 할 수 있다.

국내 한 백화점이 백화점 추석 선물 카탈로그와 판매실적 등을 토대로 시대별 인기 추석 선물을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1960년 대 백화점에서 추석 선물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백화점들이 하나 둘 신문에 추석 선물에 대한 광고를 내고 카탈로그를 배포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의 추석 선물세트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이 당시에는 기본적인 식생활이 중요했던 시기임에 따라 밀가루와 설탕 등의 조미료와 라면, 세탁비누 등 제품이 인기였다.

지금이야 선물이라기엔 다소 약소하게 느껴질 법 하지만 당시에는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고. 1967913일 매일경제 기사에서는 설탕을 두고 큰 선물은 힘겹고 그렇다고 추석 명절을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고 하는 사교적인 면에서 애용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1960년 대에는 밀가루, 설탕 등의 조미료를 명절 선물로 주고 받았다. 사진은 1965년 제일제당에서 출시한 선물용 설탕.
1960년 대에는 밀가루, 설탕 등의 조미료를 명절 선물로 주고 받았다. 사진은 1965년 제일제당에서 출시한 선물용 설탕.

산업화가 본격화되던 1970년 대부터는 추석 선물세트 품목이 이전보다 대폭 늘었다. 배 채우는 일이 우선시 되던 시기를 벗어나고 국내 경공업이 발전한 데 따른 현상이다. 면도기, 여성 스타킹, 속옷 등의 공산품부터 종합과자 선물세트와 같은 간식거리가 각광 받았다.

경공업이 발달한 1970년 대에는 공산품을 비롯해 커피 선물세트가 등장했다. 사진은 1970년 대 동서식품이 출시한 맥스웰하우스 커피.
경공업이 발달한 1970년 대에는 공산품을 비롯해 커피 선물세트가 등장했다. 사진은 1970년 대 동서식품이 출시한 맥스웰하우스 커피.

다방과 커피 문화의 확산에 따라 커피 선물세트가 등장했으며, 라디오나 믹서기 심지어는 흑백TV나 가스레인지 등의 가전제품을 선물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1970년대에 이어 1980년대에도 공산품을 인기는 여전하다 못해 넥타이, 지갑 등의 패션잡화로 그 품목이 확대됐다. 오늘날 가장 대중적으로 선물하는 참치, 통조림 햄 등의 가공식품을 선물세트로 꾸려 판매한 것도 이때부터다.

또 지금까지도 고급 선물로 인식하는 한우와 과일 바구니 등과 같이 고급스러운 포장에 질 좋은 제품을 엄선한 프리미엄 추석 선물세트가 나타난 때이기도 하다. 급격한 경제 성장 가도를 달리던 80년대에는 명절 선물로 부를 과시하기도 했다.

 

위스키·상품권 등 인기몰이

88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급격한 경제 성장이 이뤄진 1990년 대 초반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경제 호황기였다. 급기야는 1995, 1인당 국민소득 만불 시대가 열렸다.

추석 선물로 100만원이 넘는 고급 위스키가 심심치 않게 팔렸으며 1994년 상품권법 제정과 동시에 상품권 발행이 허용되며 명절에 식품이나 공산품 대신 상품권을 주고 받는 문화가 생겼다.

1980년 대에 들어서자 참치 캔, 통조림 햄 등의 가공식품이 인기를 끌었다. 사진은 매대에 늘어선 참치 캔을 구입하는 소비자의 모습.
1980년 대에 들어서자 참치 캔, 통조림 햄 등의 가공식품이 인기를 끌었다. 사진은 매대에 늘어선 참치 캔을 구입하는 소비자의 모습.

꿀과 인삼, 영지 버섯 등의 건강식품 선물 수요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유통업의 발전과 함께 선도 높은 지역농수산물로 구성한 선물세트 품목이 급증했다. 그러던 중 외환위기와 함께 사회·경제 분위기가 위축되자 명절 문화도 한층 간소해졌다. 너나 할 것 없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 속에서 실용성을 강조한 중저가 선물을 찾는 손길이 늘었다.
 

1990년대 CJ제일제당이 선보인 콩기름 선물세트. 외환위기 이후 식용유, 가공식품 등의 중저가 선물을 찾는 수요가 늘어났다.
1990년대 CJ제일제당이 선보인 콩기름 선물세트. 외환위기 이후 식용유, 가공식품 등의 중저가 선물을 찾는 수요가 늘어났다.

백화점 상품보다 할인마트에서 판매하는 스팸, 식용유 같은 가성비 높은 가공식품이 또 한번 주목받게 된다. 무너진 경제가 조금씩 회복되고 평범한 일상이 다시금 그려지던 2000년대는 무조건적인 부의 축적보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게 나타난 시기다.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2000년 대에 들어서자 건강기능식품이 많이 팔렸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정관장에서 출시한 홍삼 제품이다.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2000년 대에 들어서자 건강기능식품이 많이 팔렸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정관장에서 출시한 홍삼 제품이다.

웰빙 바람을 타고 건강식품이 추석 선물시장을 석권했다. 그 중에서도 홍삼 판매량이 눈에 띄게 증가했으며 식용유의 몇 배를 웃도는 가격이지만 몸에 좋다는 이유로 올리브유를 포함한 선물세트가 불티나게 팔렸다.

동시에 수입 과일과 굴비, 전복, 은갈치 등의 수산물을 비롯, 프리미엄급 한우 세트 등의 고급 선물 수요가 다시금 증가하며 경제 회복의 사인을 보냈다. 주류 품목에서는 위스키를 제치고 와인 세트가 인기를 끄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추석 선물도 스마트하게 전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식품교환권, 외식상품권, 영화관람권 등의 다양한 기프티콘이 모바일 기기를 통해 오갔다. 더불어 1~2인 가구가 증가하자 HMR(가정간편식) 제품이나 소포장제품을 선물로 구매하는 수요도 늘어났다.

 

코로나 속 건강기능식 급부상

그렇다면 2020년 대의 추석 선물 트렌드는 어떨까? 코로나19와 함께 시작한 2020년에는 이례적으로 비대면 명절 문화가 생겨났다.

이로 인해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모바일 기프티콘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했다 콧대 높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모바일 기프티콘 시장에 뛰어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2010년 대부터는 모바일 기기로 주고받는 기프티콘 선물이 보편화됐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2010년 대부터는 모바일 기기로 주고받는 기프티콘 선물이 보편화됐다.

찾아가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고가의 선물로 표현하는 분위기 가운데 호텔에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엄선하고 기획한 프리미엄 선물세트도 매진 행렬을 이어가는 추세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급증함에 따라 영양제, 각종 즙류 등과 같은 건강기능식품이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 2020, 한 이커머스 업체가 그해 추석 얼리버드 기획전을 분석한 결과 건강기능식품 판매율이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러스 퇴치에 효과적인 손소독제 및 세정제 등의 위생·청결 제품도 새롭게 떠올랐다.

올해 추석 선물 트렌드는 가족과 함께 근사한 한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구이용 한우, 랍스터 등이 인기다. 백화점과 호텔 식음료 매장에서는 앞다퉈 고급 한우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 추석 선물 트렌드는 가족과 함께 근사한 한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구이용 한우, 랍스터 등이 인기다. 백화점과 호텔 식음료 매장에서는 앞다퉈 고급 한우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작은 명절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으며 명절 상차림과 선물에도 나름의 변화가 생겼다. 지난 21일 한 백화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해당 백화점의 올해 추석 선물세트 예약 판매기간(81~20) 동안 구이용 한우 매출과 랍스터 매출 신장률이 찜갈비, 굴비보다 훨씬 높았다.

백화점 측은 이를 두고 입맛이 서구화된 30~40대 층이 명절 분위기를 주도하는 위치에 오른 것이 영향을 끼쳤다고 풀이했다. 이와 함께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사는)’이 부담스러운 샤인머스켓과 애플망고 등의 디저트 과일 판매량이 꾸준히 급등하는 현상도 최근 명절 선물시장의 또 다른 트렌드다.

- 신다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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