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김태완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원자재 사업과 헤지펀드 등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던 유대계 금융재벌 마크리치는 쿠바, 이란 등 제3국과의 석유 거래 등 총 300여년의 형량에 달하는 65개의 범죄 혐의로 미국 연방검찰의 수배를 받게 되고 스위스로 도피성 망명을 하게 된다.

그런데 2001년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의 퇴임일 당일 마크리치에 대한 사면 조치를 단행했고, 해당 사면은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민주당 선거자금 지원과 클린턴 기념도서관 건립 기부의 대가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마크리치 사면의 배후에는 이스라엘이 깊이 관여돼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게 됐지만 결국 미 연방검찰이 클린턴의 사면조치에 대해 특별한 혐의와 불법성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발표하면서 세간의 의혹은 종결된다. 클린턴 개인은 물론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비판이 제기된 유명 스캔들 중 하나로 남게 된다.

사면이란 형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소멸시키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을 말한다. 사면은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나뉘는데, 일반사면은 범죄의 종류를 지정해 이에 해당하는 모든 범죄인에 대한 형의 선고의 효과를 소멸시키거나 형의 선고를 받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는 공소권을 소멸시켜 일괄적으로 처벌을 면제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사면은 형이 확정된 특정인에 대해 형의 집행을 면해주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형벌권의 면제와 관련된 순수한 의미의 사면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행정법규 위반에 따른 범칙, 징계 등의 행정제재를 면제하는 조치도 행정사면이라는 별칭으로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되기도 한다.

사실 사면의 역사는 매우 길다. 중국의 경우 한나라 때 사면제도가 정착됐다고 하며, 새로운 황제가 옹립되거나 연호를 바꾸고 황후를 보하며 황태자를 정하는 경우에도 나라의 경사로 여겨 사면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면제도가 우리나라에도 도입됐고, 그 시초가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삼국시대 이래 고려와 조선에서도 사면을 실시했다는 것이 여러 문언에서 확인된다.

신라 252유리왕이 친히 종묘에 제사를 지내고 대사(大赦)하다라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남아 있으며, 문무왕 9년에는 통일의 성취를 기념해 반역을 포함한 모든 죄인에 대해 사면, 복권을 행하고 도적질한 자의 변상책임을 면제하며 집이 가난해 남의 곡식을 꾸어 먹은 자에 대해 채무를 면제한다는 내용의 대사령을 실시했다고 한다. 고려와 조선도 국가나 왕가의 경사, 천재지변이 있을 때에는 사면령을 내려 민심을 어루만지고 나라의 안녕을 꾀했다. 근대의 사면제도는 1948년에 제정된 제1공화국 헌법에 반영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면은 조달 규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2015년 광복절 특사에서는 건설사업, 소프트웨어사업 등 공공조달부문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특정업종에 대해 관련 기업이 받은 부정당업자 제재처분, 영업정지처분 및 과징금 등 제재에 대해 행정사면이 이뤄졌고, 20211231일자 특별사면에서는 건설시공업체, 건설용역업체 등의 건설관계자가 받은 부정당업자 제재처분, 영업정지 및 자격정지, 과징금, 입찰심사시의 감점 등 행정상 불이익을 사면 대상에 포함했다. 이 때문에 최근 정부가 광복절 특별사면을 검토하는 과정에서도 행정사면의 포함여부에 대해 다수 조달참여 기업들의 관심이 뜨거웠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입찰참가제한을 받거나 벌점 등의 불이익을 맞고 있는 업체, 소송을 통해 해당 제재의 적법 여부를 다투고 있는 업체 모두에게 사면은 긴 고통과 분쟁을 일소에 해소할 수 있는 특별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사면에 대한 비판과 반대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잘못에 대한 예외없는 단죄가 법치의 기본이라는 시각과 더불어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면서 기업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고 다중적이고 과도한 조달 규제가 경제활력을 저해하고 있다는 시각이 공존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사면이 우연히 떨어지는 과실이 아니며 담합, 뇌물, 불법하도급 등 정부의 논의 과정에서 면책이 제외되는 위반사유들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해당 조달업종의 현실과 구제의 필요성에 대한 많은 설득 노력과 정부기관의 공감이 사면권자에게 충실히 전해져야 하는 산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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