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까스를 먹고 있었다. 팀원들 모두 너무 지친 상태였다. 무슨 짓을 해도 J커브가 그려지지 않았다. 창업 멤버 일부도 회사를 떠난 상태였다. 홍승일 힐링페이퍼 대표는 2015년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원래는 개업하는게 정석이었다.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회사 이름은 힐링페이퍼였다.

창업아이템은 만성질환자를 관리해주는 서비스였다. 암환자들이 스스로 투약주기와 검진주기를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내용이었다. 좀처럼 이용자가 늘지 않았다. 질병 피봇팅을 해봤다. 피봇팅은 기존의 사업아이템을 포기하고 사업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사업 아이템을 갑상선 질환으로 바꿨다. 피봇팅을 또 했다. 이번엔 공황장애로 바꿨다. 힐링페이퍼의 2년반 동안 매출은 0원이었다. 돈까스 미팅을 할 때 즈음엔 현금도 거의 떨어진 상태였다. 창업 아이템의 힐링이 필요할 지경이었다.

 

가격 할인폭 등 깨알정보 제공

홍승일 대표는 소비자들의 문제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자체 진단을 내렸다. 의료서비스인데 제대로 된 페인킬러(진통제)가 되지 못했다. 결론은 급여영역 안에서는 페인포인트(소비자의 불만사항)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급여영역이란 보험으로 보장이 되는 의료시장이다. 이렇게 보험으로 보장이 되면 환자들 입장에선 가격이나 서비스를 비교할 필요를 덜 느낀다. 이제 비급여 영역에서 페인포인트를 찾아볼 때였다. 자연스럽게 성형미용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2015년 무렵이었다.

당시 카닥이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카닥은 소비자가 자동차 사진 3장을 찍어서 올리면 자동차 공업사가 수리 가격을 올려서 최저가로 낙찰하는 서비스였다. 카닥의 역경매 방식을 성형수술에 적용할 수 있겠다 싶었다.

고객들이 수술과 시술을 원하는 신체 부위 사진을 올리면 성형외과들이 역경매로 견적을 올려서 낙찰을 받아가는 방식을 구상했다. 우선 서비스 이름부터 정해야만 했다. 돈까스 먹다가 나온 이름이 강남언니였다.

강남언니 홍승일 대표
강남언니 홍승일 대표

성장이 배고픈 상황이었다. 강남언니는 성형미용 관련한 서비스가 필요한 소비자들한테 바로 꽂히고 바로 사랑받을 수 있는 이름이었다. 이름부터가 프로덕트 마켓 핏에 딱 맞아떨어졌다. 그렇지만 서비스를 제공할 성형외과와 피부과 병원들을 설득하는 건 쉽지 않았다. 맨땅에 헤딩하는 것 말고는 별수가 없었다. 압구정동 병원 하나하나를 찾아다녔다.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병원들을 돌고오면 멘탈이 나가버렸다.

금융치료가 답이었다. 강남언니팀은 처음으로 J커브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병원을 섭외해서 입점시키고 신규 소비자들을 유입시킬 때마다 그래프가 급상승하는 경험이었다. 3년만이었다. 힐링페이퍼는 강남언니 서비스를 통해 스타트업은 성장이 치료제라는걸 제대로 경험했다. 언니들이 힐링페이퍼를 힐링해준 셈이었다.

그런데 J커브는 또 다른 인사이트를 제공해줬다. 강남언니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면서 이제까지는 가설로만 추정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페인포인트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들이 정말 원하는 건 병원별 솔직평가와 가격비교였다.

이게 핵심 정보였다. 너무 핵심 정보여서 병원들은 공개하지 않으려는 내용이었다. 강남언니한텐 이걸 확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었다. 실제 환자들의 솔직 후기였다. 여기엔 정말 수술을 집도한 의사나 수술 가격의 할인폭 같은 깨알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강남언니는 2년 동안 비공개로 후기 정보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바야흐로 진짜 언니들 싸움이 시작될 참이었다.

 

성형시장 페인킬러 정조준

강남언니의 병원 비교 서비스는 2017년 본격 시작됐다. 소비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강남언니가 소비자들한테 받아서 올리는 후기는 전화상담평가와 내원상담평가와 수술평가 같은 세부평가들이 모아져 있었다. 수술 전후 사진을 통한 시각적 비교에 각각 수술과 시술의 세부 가격까지 모두 공개돼 있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서비스였다. 이제까지 성형수술 시장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가격비교를 원하면 소비자가 직접 병원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발품을 팔아야만 했다. 강남언니는 소비자를 위한 확실한 페인킬러였다.

강남언니는 국내 회원수만 380만명에 달하는 서비스로 급성장했다. 전국 성형외과와 피부과 1700곳이 가입됐다. 매출은 2020100억원에 육박하게 됐다. 강남언니와 같은 혁신적인 스타트업의 고속 성장은 필연적으로 기존 사업 영역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다.

강남언니도 결국 성형외과와 피부과들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성형외과와 피부과들 입장에선 가격을 비교하고 수술을 평가하고 심지어 CCTV 유무까지 보여주는 강남언니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달이 났다.

[성형정보 공유앱 강남언니’]

정부 비급여 진료비는 공개 가능

강남언니 날개의사협 강력 반발


병원측, 의료법 위반혐의로 고발

광고냐 정보냐 놓고 평행선 대립


수술사진·가격 비교 폭발적 반응

회원 380만 가입·매출도 고속성장


투자 유치, 시장 진출 급물살

강남언니는 20191월에 강남경찰서에 고발당했다. 의료법 제27조 위반 혐의였다. 현행 의료법상으론 제3자가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환자를 소개하고 알선하고 수수료를 받는 행위는 불법이다. 강남언니는 초창기엔 환자와 병원을 연결해주고 건당 수수료를 받는 수익모델을 만들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71개 병원에게 9215명 환자를 알선하고 17600만원 수수료를 받았다.

이게 문제가 됐다. 게다가 20195월 대법원은 의료 플랫폼 업체의 수수료 수익 모델은 불법이라고 최종 확정 판결을 내려버렸다. 결국 강남언니도 수수료 모델을 폐기했다. 그렇지만 홍승일 대표는 2022127일 의료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수수료를 받은 탓이었다.

강남언니는 대표적인 그레이 스타트업이다. 그레이 스타트업은 기술 발전의 속도와 시장 변화의 속도 그리고 관련 규제의 속도가 엇박자가 나는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사업을 영위한다. 우버나 에어비엔비가 대표적이다. 우버는 택시 영업 규제의 사각 지대에서 출발했다. 에어비엔비도 숙박 영업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강남언니 같은 헬스케어 관련 스타트업은 필연적으로 그레이 스타트업일 수밖에 없다. 기존 사업자들과 마찰이 발생하고 때론 법적인 분쟁에 휘말린다. 홍승일 대표처럼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

강남언니는 2019년부터 수수료 모델을 폐기하고 광고료 모델로 전환했다. 배달의 민족과 같은 방식이다. 배달의 민족 역시 수많은 음식점들이 입점해 있는 플랫폼이다. 소비자는 원하는 메뉴를 찾아들어가서 마음에 드는 식당을 선택하면 된다. 강남언니에서도 소비자는 코나 눈이나 지방흡입 같은 원하는 수술시술 부위를 선택한다. 그 안엔 여러 병원들이 뜬다. 클릭하면 해당 병원의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식이다.

강남언니는 환자와 병원을 연결해주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광고료만 받는 구조다. 솔직히 이것만으론 소비자들이 강남언니를 쓸 유인이 약하다. 여기서 후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비자들은 강남언니에만 있는 해당 병원의 후기를 보고 특정 병원의 홈페이지를 클릭하는 원리다.

 

일본판 강남언니인수

그런데 후기 때문에 강남언니는 다시 한번 회색 마찰을 빚게 됐다. 이번엔 의료법 제56조가 문제가 됐다. 의료법 56조는 의료기관 개설자, 의료기관의 장 또는 의료인이 아닌 자는 의료에 관한 광고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대한의사협회는 강남언니의 후기도 광고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후기는 수술에 대한 평가와 수술 가격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다. 광고성 콘텐츠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 강남언니는 2020년부터 성형수술에서 미용시술까지 후기 범위를 확장했다. 시술 후기는 수술보다도 더 자세한 설명이 들어가곤 한다.

강남언니와 기존 성형미용수술시술 업계가 마찰을 빚자 정부는 한걸음 모델로 중재에 나섰다. 한걸음 모델이란 신사업 영역에서 신구 사업 간 갈등을 이해관계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해결해보려는 사회적 타협 메커니즘이다. 언니와 병원의 밀당이 시작됐다. 쟁점은 후기가 광고냐 아니냐였다.

지난 95일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주관하는 경제규제 혁신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결론이 났다. 정부 TF팀은 강남언니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도 성형수술 같은 비급여 진료비의 정보 기재가 가능하다는 의료법령 유권해석이 담긴 경제규제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이제까진 비급여 진료비는 의료기관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표시해야 한다는 게 규정이었다.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규정은 없었다. 법이 만들어질 때 강남언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발표는 강남언니의 후기가 광고가 아니라 정보라는 의미였다. 의료법 56조에 저촉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자세한 성형수술 가격 관련 정보도 표기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강남언니한텐 날개가 달렸다. 그렇지만 대한의사협회와 성형외과의사회와 대한치과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 편익을 앞세우고 환자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거나 성형피부수술의 오남용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분명 문제가 있다. 의료수술은 가격이 가장 중요한 상품이 아니다. 쌀수록 좋은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칫 가격비교가 의료행위의 질적 저하를 가져올 수도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오직 저가 수술에만 몰리면 자연히 수술의 품질은 떨어진다. 가격 편익은 얻어도 건강 이익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게다가 수술 후기에는 실제로 광고성 콘텐츠도 많다. 일선 성형외과에 가면 수술 가격을 깎아주는 대신에 강남언니 같은 플랫폼에 좋은 후기를 써달라고 요구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이때 후기는 솔직 후기가 아니다. 돈을 받고 쓴 대가성 후기다. 이런 가짜 후기와 진짜 후기를 구분하기는 매우 어렵다.

강남언니도 성형 영수증을 첨부해야 후기를 쓸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고민할 정도다. 후기는 분명 광고와 정보 사이를 오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언니와 병원의 언니들 싸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강남언니는 20204월 레전드캐피탈 등으로부터 185억원의 시리즈B 투자를 받았다. 레전드캐피털은 중국 의료 플랫폼 겅메이와 파이스킨에 투자한 중국계 벤처캐피털이다. 강남언니는 이걸 발판으로 일본 시장을 개척하는 중이다. 연간 38만명 정도가 외국인 성형 관광 수요다. 자연히 강남언니도 해외에서 알아서 인기를 얻었다. 강남언니는 아예 일본판 강남언니라고 불리는 루쿠모를 인수하고 일본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강남언니는 의료시장의 고질적인 정보비대칭 문제를 해결해서 예비 유니콘이 됐다. 사실 창업자 홍승일 대표는 의전원을 다니던 시절부터 연쇄창업자였다. 이때도 집중한 건 시장의 정보비대칭 문제 해결이었다. 의학전문대학원 수험생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인 메드와이드와 의치전원 입시 교재 출판사인 와이드북스를 창업했다.

메드와이드는 3개월만에 2만명 이상 사용하는 사이트가 됐다. 이때부터 정보비대칭 문제를 해결하는 창업에 관심을 가졌다. 이때부터 비전은 하나였다.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누구나 누릴 수 있게.” 강남언니 역시 창업 정신은 같다. 이번엔 세계 시장이 반응하고 있다.

 

- : 신기주 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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