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사업비가 7800억원, 시설용지만 약 8000평에 달하지만 중소기업은 참여하지 못하는 공공사업이 있다. 공공 ESS라고도 불리는 계통안정화용 ESS 건설사업이다. 이 사업은 최근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고 금명간 발주에 들어갈 계획이다.

문제는 발주방식이다. 한전이 중복수주를 허용하고 통합발주로 입찰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소수의 대기업이 사업을 독점할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ESS 중소기업은 핵심기술을 보유하고도 대기업의 단순 하청업체로 전락할 상황이다. 중소기업들이 한전의 공공 ESS사업에 촉각을 기울이는 이유는 ESS시장의 급격한 위축과 궤를 같이 한다. 20183.7GWh였던 신규설비용량은 20191.8GWh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고, 신규설치사업장은 2018975개에서 올해 46개로 고사 직전인 상황까지 내몰렸다.

정부의 인센티브도 줄었다. ESS특례할인제도는 2020년 일몰된 이후 연장되지 않았고,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중치도 예고기간을 거쳐 올해부터 완전히 종료됐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ESS가 신재생에너지와 함께 중소기업의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각광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태양력,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는 특성상 날씨와 계절에 따라 출력이 들쭉날쭉해 피크완화와 계통안정화를 위해 전기에너지를 기계적·화학적 방식으로 저장하는 ESS가 전국각지에 빠르게 보급됐다. 그러나 2017년부터 2018년까지 ESS 화재가 잇따르면서 개별사업장에 설치되는 BTM(Below The Meter) 시장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대신 전력계통 안정화를 위해 대규모 공공설비에 설치되는 FTM(Front The Meter)ESS 시장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대표적 FTM 사업인 한전의 공공ESS 사업조차 대기업 위주로만 진행된다면, ESS 중소기업의 설자리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반면, 유럽 등 에너지 선진국에서는 ESS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유럽 내 ESS시장은 2015년부터 2019년 사이 가정용은 78.3%, 기업용은 99% 성장했으며, 2030년까지 누적배터리 용량은 57GW202210GW대비 500% 이상 급등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등 화석에너지 수급에 큰 차질이 빚어지면서 재생에너지와 ESS 관련 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지난달 말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실무안을 공개하며 신재생에너지설비를 202228.9GW, 203071.5GW, 2036107.4GW로 총 설비의 45.3%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가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전까지 살아남은 국산 ESS 중소기업이 없다면, 그 자리는 고스란히 자국 내 시장을 바탕으로 산업경쟁력을 확보한 외국산 ESS 기업에 돌아가게 될 것이다.

ESS는 현재진행형인 기술이다. 비록 화재로 인해 성장이 주춤하고 있으나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필수가 될 수밖에 없는 기술이기도 하다. 탄소중립을 외치면서 ESS 육성의지를 찾아볼 수 없는 정부에 대한 업계의 불만이 고조되는 이유다. 민간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은 지금, 공공ESS사업은 ESS 중소기업의 생존과 산업경쟁력 유지를 위한 마지막 동앗줄이다. 공공 ESS사업이 대기업만의 잔치가 아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사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관계 기관의 대책이 늦기 전에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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