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달호(편의점주·작가)
봉달호(편의점주·작가)

사장님 오셨네? 오늘은 도토리묵이 신선한데, 한번 드셔봐유. 내가 많이 담아 드릴게.” 우리 동네 두부가게 주인장은 나를 사장님이라 부른다. 구수한 사투리 섞어 그 말씨가 정겹다. 처음에는 ? 내가 편의점 사장인 걸 어떻게 아셨지?’라고 섬뜩 놀랐는데 이 가게 주인장은 모든 손님을 사장님이라 부른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젊든 늙었든, 사장이다. 가게를 찾는 모든 이를 사장처럼 깍듯이 모시겠다는 다정한 뜻으로 받아들인다.

어느 고깃집에서 손님이 종업원을 아가씨라고 불렀다고 시비가 붙었다는 사연이 최근 SNS에 화제였다. 구체적 사연이야 양쪽에게 들어봐야겠지만, 대체로 여론은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지?’ 쪽인 것 같다. ()중립적인 표현을 써야지 굳이 아가씨라고 칭한 것은 차별일 수 있다는 의견이 있고, 종업원이 불쾌하게 받아들인 걸 보니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나름의 해석을 내놓는 사람도 있었다. 한편 그런 시비 붙을까 봐 나는 그냥 저기요라고 부른다는 사람도 많았다. 문득 두부가게 주인장이 떠올랐다.

높임말이 존재하고 유난히 서열을 따지는 문화 환경 때문인지 호칭이나 표현 문제는 우리 사회에 이따금 등장하는 화제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손님을 사장님이라 부르는 현상은 최근 유독 확산되는 느낌이다.

얼마 전 어느 가전제품 전문점에 갔다가 거기서도 손님을 사장님이라 불러 놀랐다. 큰 회사라서 접객 용어도 표준화했을 텐데 이 회사는 앞으로 이렇게 하기로 한 건가 싶었다. 그 직원 나름의 높은 서비스 정신일 수 있지만 어쨌든 그냥 손님 혹은 고객님이라 불러도 충분한데 구태여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좀 과한 측면이 있다.

이중존칭이나 사물존칭도 흔하다. 예컨대 그냥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라고 하면 될 것을 확인하실 수 있으세요라고 높이는 어미 ‘--’를 중첩한다. 한치 빈틈없이 지극한 존중의 뜻을 밝히고 싶기 때문이리라. 국어 수업을 하자는 말이 아니다. 일상 언어에 또박또박 문법을 따지는 것은 어쩌면 지나친 일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식의 사물존칭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내가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아아님께서 존중받는 것 같다는 삐딱한 느낌이 든다.

지금 우리 편의점 직원들의 접객 용어도 가만히 들어보니 이상하다. “거스름돈 500원이십니다” “(신용카드가) 한도 초과이십니다등이 이어지는데, 주의를 주는데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하긴 더욱 친절하고 싶은 직원을 괜스레 기죽일 필요까진 없겠지. 그러면서도 그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매사에 고분고분하지 못한 내 유난한 성격 탓임이 분명하다.

근래 우리 사회에는 격식이나 호칭, 지나친 위계질서를 뛰어넘자는 이야기가 많다. 특히 기업 현장에 그렇다. 대리, 과장, 부장 하던 직급을 폐지하고 책임, 프로, 시니어 같은 신선한(?) 호칭으로 바꾼 회사가 있고, 직급을 모두 없애고 아예 으로 통일한 회사도 있다. 나아가 한국식 이름을 빼고 데이빗, 에밀리, 제인 같은 외국 이름으로 바꿔 부르는 회사까지 생겼다. 그럼에도 데이빗 수석님, 부족한 제 생각으로는 말입니다식의 괴이한 풍경이 보이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가 넘어야 할 벽이 많음을 보여준다.

109일은 한글날이다. 언론에는 우리 말글살이를 돌아보는 기획이 떠들썩할 것이다. 아예 돌아보지 않는 것보다는 그렇게라도 한 번씩 생각할 기회를 갖는 편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진짜 우리가 고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를 의심하곤 한다.

사회적 약자를 높이는 존경은 권장할 만하다. 만인이 어깨를 나란히 해 소통을 원활히 돕는 것도 썩 바람직하다. 하지만 일각의 과도한 존칭이 과연 무엇을 지향하는 것이며, 반대로 호칭을 파괴하라는 명령(!)이 대체 소통을 불러왔는지는 진지하게 돌아볼 일이다. 나랏 말씀이 어린 백성과 함께 고생이 많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