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반도체를 사람 심장에 비유하며 반도체 굴기를 선언했다. 최첨단 반도체를 자체 생산해 2025년까지 자급률을 70%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이었다. 2018년 시진핑 주석의 공식적인 반도체 굴기 선언 전, 이미 중국은 2014년부터 139조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반도체 성장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태였다.

중국은 이후 반도체 분야에서 큰 진척을 보이는 듯했다지만 실상은 달랐다. 올해 들어 8월까지 3500개에 가까운 중국 반도체 기업이 줄폐업했다. 중국 기업 발표와 중국 관영매체 보도, 지방정부 문서 등을 분석한 결과 중국에서 최근 3년간 적어도 6개 반도체 제조 프로젝트가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프로젝트에는 최소 23억달러가 투입됐는데 대부분 정부 지원금이었다. 이 같은 투자에도 일부 기업은 반도체 칩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중국 반도체 굴기는 실패한 것일까. 지금까지 상황과 분위기로 보면 부인하기 어렵다. 왜 중국 반도체 굴기는 실패했을까. 전문가들은 반도체는 후발주자가 성공하기 어려운 산업 분야라고 입을 모은다. 기술 고도화가 빠르고 신상품도 아니기 때문이다. 반도체 분야 선두 기업들의 기술 고도화가 계속 일어나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축적한 기술이 필수적이다. 자본의 투입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결정타는 미국에서 날렸다. 전문가들이 중국 반도체 굴기의 핵심 실패 원인으로 꼽는 건 미·중 갈등이다. 두 나라 사이 갈등이 격화될수록 미국의 반도체 산업 견제도 심화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견제는 생각 이상으로 적극적이다.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설비 신규 투자나 확장 때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반도체 지원법’, 한국·일본·대만과 안정적 공급망을 구축하는 반도체 동맹 4’ 등이 그 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89(현지시간) 미국 반도체 산업에 인센티브 520억달러를 지급하고 과학기술 분야에 2000억달러를 투자하는 등 총 2800억달러를 지원하는 반도체과학법’(반도체법)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에 신규 반도체 투자를 결정한 삼성전자(텍사스)와 미국 인텔(오하이오), 대만 TSMC(애리조나) 등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미국은 반도체 보조금을 받은 기업의 경우 앞으로 10년간 중국과 같은 우려 국가에 반도체 시설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가드레일(안전장치)을 설치했다.

미국은 대중 반도체 수출 제한을 강화하기도 했다. ‘반도체 설계자동화(EDA) 소프트웨어의 대중 수출을 제한했고, 인공지능(AI) 칩 대중 수출도 중단시켰다. 미국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유일하기 만드는 네덜란드 ASML의 중국 수출길을 막았다. 이에 따라 중국 파운드리 기업 SMIC가 생산했다는 7나노 칩은 EUV보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를 이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중국의 반도체 실패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중국 정부는 경제 개발 초기에 전통 제조업, 노동·자본 집약적 산업에 집중투자하며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선진국 단계로 가려면 첨단 산업 육성이 필수다. 당장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오랜 연구 개발과 시행착오를 인내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주의 정부의 관료적 선택과 집중 지원만으로는 이를 해내기 어렵다. 첨단 기술의 원동력은 민간 부문의 창의적 개발과 다양한 해외 교류, 시장 경제 활성화를 통한 지속적이고 자연스러운 혁신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지금처럼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대결의 길을 걷는 한 중국 반도체 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자유 시장 경제에서 자라난 경쟁력을 수동적 육성책으로 따라잡기란 어렵다. 한국도 이점을 다시 한번 아로새겨야 할 시점이다.

 

- 하제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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