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지인을 만났다. 오랜만임에도 근심이 가득했다. 사연은 비교적 간명했다. 공공기관 여러 곳에 제품을 납품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이 꼬이려고 했는지 각 기관에 서로 바뀐 제품을 납품하고 만 것이다. 일종의 배달 사고가 난 셈이다.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면서하면서 납품을 완료했지만 이 과정에서 납기 지연 문제가 발생했다. 교체 완료 문서를 각각의 공공기관에 보내고 이후 다시 검사와 검수하는 기간이 추가되다 보니 전체 지연 일수가 실제 지체 일수보다 몇 배나 늘어났다. 이로 인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불이익을 생각하면서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속앓이를 한 모양이다.

내용을 들어보니 답답한 심정이 이해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납기 지연에 따른 제재는 발주기관의 재량이나 규정 해석의 영역이다. 납품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거니와 대응할 뾰족한 방법마저 딱히 없다. 그래도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 계약조건과 유권해석, 관련 규정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이를 토대로 관계 규정을 다시 확인하고 선례도 찾아보고 하니 다행히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이 되서 웃으면서 헤어졌던 기억이 난다. 몇 년전에 있었던 일임에도 환한 미소가 아직도 생생하다.

공공 조달은 형식적으로 사적 자치에 기반해 공공기관과 납품중소기업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합의에 따라 계약을 이행한다. 입찰 유의서, 계약 일반조건이나 특수조건 등은 규정과 원칙의 기준이 되는 계약서다. 대부분의 공공 계약은 계약서에 맞게 순조로이 이행된다. 문제는 소소한 하자나 경미한 계약 내용 불일치가 발생하는 경우다. 이 경우에는 모든 계약이 완전할 수 없음에도 갑의 위치에 있는 발주기관에서 규정과 원칙을 내세워 일방적으로 납품중소기업을 제재한다.

소소한 하자·계약 불일치

입찰자격 박탈될까 전전긍긍

경직된 규정 유연 적용 필요

발주기관은 공공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점과 다른 기업들과의 형평성, 감사에 대한 부담 등을 명분 삼아 규정을 좁게 해석하고 경직되게 운영한다. 납품중소기업에게 유리하지 않은 방식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납품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위반 행위에 비해서 불이익이 지나치게 크고 일반 상식에 맞지 않는 처분이라 할지라도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물론 관계부처에 민원을 낸다든지 사법부의 판단을 구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물적, 인적 자원을 투입할 여력도 시간도 없는 중소기업은 차라리 그냥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다.

앞선 중소기업 사례도 문제의 시작은 사소한 실수에서 시작됐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은 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실수를 발견하자 마자 조치했으나,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오가고,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날짜가 미뤄지고 하다 보니 일이 점점 꼬인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하던가. 있지도 않을 미래의 불이익을 지레 짐작으로 근심한 것은 아마도 규정과 원칙을 내세운 발주기관의 일방적인 불이익 처분에 대한 트라우마의 발로인듯 하다. 오죽하면 발생하지도 않은 불이익을 당연시하며 스스로 불안감을 조성했을까 싶다. 사실 이런 불안감은 조달시장에서 흔히 볼수 있다고 중소기업인들은 전한다.

새 정부의 경제운용 방침은 민간 중심의 경제다. 그러나 공공 조달시장에서 규정과 원칙의 적용은 여전히 발주기관 중심이다. 규정과 원칙은 최소한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밀고 당기면서 적용할 때 공정성과 객관성이 담보된다. 중소기업이 공공기관에 납품할 때 사소한 실수에도 불이익에 대한 불안감을 주는 일방적인 규정의 경직적인 운용은 이제는 개선했으면 한다. 공공기관이 규정과 원칙을 적용함에 있어 중소기업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억울함 없도록 좀 더 넓게 해석하고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공공 조달시장에서 민간 중심의 경제를 실현하는 길이다.

 

장경순
중소기업중앙회 상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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