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커피 역사는 오래됐다. 대한제국 고종 시대에 이미 궁정에서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고종과 황후의 총애를 받았던 유럽인 손탁이 정동에 손탁호텔을 열고, 커피와 양식을 팔았다는 얘기도 전한다. 커피는 그 시대 유럽에서는 카페 문화의 핵심 음료였다.

커피는 대화, 휴식을 동반하는 음료였다가 이내 일상의 모습으로 바뀐다. 영국에서는 차가 필수품이 됐고, 유럽대륙 국가에서는 커피를 즐겼다. 전쟁 때 영국 군대는 장병에게 차를 보급했고 대륙의 군대는 커피를 공식적으로 지급했다. 무엇보다 미국 군대는 커피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담배와 커피가 보급품이 되면서 대중적인 기호품이 됐다.

쉰이 넘은 한국 남자들은 군대 가서 담배를 배우는 일이 많았는데, 이는 군인다움, 군인의 휴식에 어울린다는 관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군에게서 커피와 담배도 그랬다. 이미 1800년대 중반에 벌어진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 전투에서 미군에게 커피가 지급됐으니 커피 군용 보급의 역사가 긴 셈이다.

미국 커피는 2차대전까지만 해도 우려내 마시는 종류를 보급하다가 이내 인스턴트형으로 바뀐다. 한국전, 월남전 등 미군이 참여한 전쟁에서 맹활약한 건 가루커피였다. 물에 타기만 하면 마실 수 있는 커피는 야간전투를 치르고 긴장에 빠진 군대에 필수품이었다.

한국의 커피 역사는 일제강점기에 꽃을 피운다. 천재 소설가 이상이 제비등의 다방을 경영한 것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인데, 이때 커피와 궐련 담배가 다방의 핵심이었다. 종이에 말아 피우는 궐련 담배에 커피 한잔은 아주 잘 어울리는 개화된 사람을 의미했다. 당시 커피는 볶은 커피를 납품받아 내려서 마시는 종류였다.

이후 볶은 커피란 뜻의 배전두커피가 나왔다. 이 커피는 1980년대까지도 한국 다방에서 팔렸다. 다방에 들어가면, 주방 쪽에 커다란 포트가 있어서 거기에 검은 액체가 끓었다. 다방에서 배전두가 팔릴 동안 가정에선 가루커피, 즉 인스턴트커피를 마셨다.

1950, 60년대에는 속칭 도깨비시장, 암시장에 유통되는 미군 부대 유출품이었으며 맥스웰 등 상표가 유명했다. 이 커피에 설탕을 듬뿍 쳐서 마셨다. 크림은 시내 다방이나 호텔, 양식당이나 가야 나오는 사이드여서 가정에서 흔히 곁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경화유로 만든 하얀 가루의 크림맛 프리마상품이 나오면서 집에서도 곁들일 수 있게 됐다.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일회용 봉지커피는 커피에 설탕과 건조시킨 가루크림을 배합해 한 번에 간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개발된 것으로 1990년대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전에는 커피와 설탕, 크림의 황금비와 개인 기호가 따로 있었는데 그때 그 배합을 잘 맞추면 커피 잘 탄다고 칭찬을 들었다. 이후에는 일회용 봉지커피가 나오면서 그런 말이 사라져버렸다. 이 커피는 다방에도 그대로 유행이 돼 커피 잘 타는 다방의 명성이 사라졌고, 이내 현재와 같은 카페 문화가 생기면서 거의 멸절되다시피 했다.

내린 커피, 즉 업소용 드립기계나 사이폰 등을 쓰는 커피숍이 인기를 끈 것은 1980년대쯤이고, 1990년대에 대세가 된다. 당시엔 고급집의 이미지가 있어서 셀프가 아니라 테이블 서비스를 했고, 과자를 곁들여주곤 했다. 아메리카노라고 부르는 현재의 방식은 아니었고 드립기계를 썼다. 작은 용기에 담긴 우유크림을 주는 것도 당시의 고풍스러운 방식이었다.

지금 우리가 즐겨 마시는 아메리카노 문화는 2000년대 들어 가속화된다. 미국의 스타벅스가 촉발제가 됐다.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 머신을 써서 커피를 순간적으로 내려서 주는 이 방식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우유 거품, 시럽이 함께 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요즘은 새참으로도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여름의 표준 음료라고 불릴 정도다.

한국의 커피시장은 카페가 너무 많아서 영업에 어려움을 겪는 집도 많다는 말도 돈다. 창업을 해야 하는 청년군, 퇴직군의 선택지가 카페에 몰리는 것도 사실이다. 엄청나게 커진 커피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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