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파이터치연구원 연구실장)
김재현(파이터치연구원 연구실장)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원가상승으로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민수시장의 경우 원가상승의 가격 반영 속도가 비교적 빠른 편이다.

하지만 공공조달시장에서의 수요는 일반적으로 정부 부처가 연초 수립한 사업계획에 따른 구매에 해당하므로, 거시경제 환경이 변한다 해도 단가 인상에 일정 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공공조달시장에서의 가격은 독점적 수요자인 정부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크다. 따라서 공공조달시장의 가격은 민수시장보다 낮게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중소기업계는 최근 경영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공공조달시장 단가에 원가 인상분 반영이 지연되고, 공공조달시장 내 추가적인 가격 경쟁 제도 때문에 중소기업이 과당경쟁에 노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다수공급자계약(MAS) 2단계 경쟁제도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은 추가 가격 하락 시 단기 손실에도 불구, 적자를 감수하며 경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MAS 2단계 경쟁제도는 일정 금액 이상의 계약 시 납품 기업들의 추가적인 가격 경쟁을 유도하는 제도다. 만약 이미 MAS 단가가 기업들의 원가 수준에 근접한 상황이라면 MAS 2단계 경쟁제도에 따른 가격 인하는 공공조달시장에 참여한 중소기업으로 하여금 적자를 감수하며 경쟁에 참여하도록 강제하게 된다. 실제로 기업들은 적자가 발생하더라도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MAS 계약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라 말한다.

정부는 이와 같은 주장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조달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은행기업경영분석 자료를 기준으로 방적 및 가공사산업의 순제조비용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90.5%, ‘1차 금속산업의 순제조 비용의 비율은 91.6%이다. 이는 해당 업종들의 평균 제조원가가 총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90%를 넘는다는 의미다. 순제조 비용 비율이 90%를 넘는 기업에게 가격하한율이 90%MAS 2단계 경쟁제도를 적용하면 해당 기업은 적자를 감수하고 계약을 이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현재 MAS 2단계 경쟁제도에서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의 경우 가격하한율이 90%로 규정돼 있고, 일반 물품의 경우 가격하한율이 지정돼 있지 않다. 가격하한율이 90%인 경우 기업들이 제안하는 가격은 MAS 단가의 90%에 근접하게 되고, 가격하한율이 없는 경우는 이보다 더 낮은 가격을 제안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순제조 비용의 비율이 90% 이상인 업종의 경우 적자를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MAS 2단계 경쟁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업종별 원가분석을 실시하고 순제조 비용의 비율이 높은 업종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 MAS 2단계 경쟁에 참여하는 중소기업들의 세부 원가 분석을 실시해 실제로 가격경쟁을 통해 적자상태에 직면한 기업의 비중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는 거시경제 환경 변화에 따라 단가가 인상될 때 이를 MAS 단가에 신속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현재 MAS 단가를 인상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계약금액 조정을 위한 서류를 구비해 조달청에 신청하고, 조달청이 이를 승인해줘야 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올해 5117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47.9%MAS 계약 단가를 조정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조정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물가가 급격히 상승할 경우 신속한 단가 인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공공조달시장에 참여한 중소기업은 단가 조정 전까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MAS 계약 단가가 물가상승분을 자동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대상 공공조달 정책은 중소기업의 육성과 성장을 지원하는 정책 목표를 갖는다. 가격 경쟁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정부의 정책 목표는 예산 절감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중소기업의 육성 및 성장 지원이라는 정책 목표와 상충될 가능성이 있다. 공공조달시장에 참여하는 중소기업들이 저가 출혈경쟁을 벌이면 예산절감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편익보다 중소기업의 성장이 저해돼 나타나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클 수 있다.

정부는 공공조달시장에서 중소기업이 적정단가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합리적인 가격과 중소기업의 성장동력 제고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