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분이 문제였다.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지하 3층 전기실의 무정전전원장치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한 건 지난 1015일 토요일 오후 333분 경이었다. 전기실 CCTV에는 리튬이온 배터리 1개에서 불꽃이 튀고 화재가 발생하면서 하론 고압가스 진화 시스템이 작동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잡혔다.

그렇지만 화재는 이내 배터리 5개로 옮겨붙었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였다. 배터리는 불이 붙으면 열폭주 현상이 발생한다. 고열로 달궈진 배터리가 내부에서 연쇄 폭발하는 현상을 말한다. 배터리가 폭탄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초기 진화 시스템이 무력화된 이유다.

이제 물로 불을 꺼야만 했다. 물은 전기로 돌아가는 데이터센터와는 상극이다. 전원을 내려야만 했다. 전원 셧다운을 결정한 건 관할 소방서였다. 소방서로선 물불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미 데이터센터의 전원공급은 화재로 일부 중단된 상태였다.

화재 발생 7분 뒤인 1015일 오후 340분 판교 데이터센터의 전원이 완전 차단됐다. 동시에 카카오의 전체 서비스를 지탱하는 인프라인 9만개 서버 가운데 30%32000대가 일제히 가동을 멈췄다. 85시간 동안이나 지속된 카카오 먹통 사태의 시발이었다.

 

IT산업 전체에 닥친 불행

이번 사태는 카카오의 불행이지만 동시에 한국 IT산업 전체에 닥친 불행입니다.” 지난 1019일 오전 11시 카카오의 대국민 사과에서 남궁훈 카카오 각자대표는 결국 카카오 먹통 사태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난다고 말했다.

남궁훈 대표는 카카오 서비스를 책임지는 대표로서 어느 때보다 참담한 심정과 막중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이번 사태가 카카오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상 이번과 유사한 사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국내 IT기업은 없는 만큼 차라리 카카오가 소를 잃었어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겠다는 약속이다.

실제로 남궁훈 대표는 취임 7개월만에 CEO 자리에선 물러났지만 대신 카카오의 비상대책위원회 재난대책 소위원회를 맡게 된다. 앞으로 데이터센터 하나가 불에 데이고 물에 잠기면 사용자 4600만 카카오톡과 3800만 카카오페이와 3100만 카카오T1900만 카카오뱅크와 700만 멜론과 600만 카카오페이지가 먹통이 되는 사태를 막을 방법을 마련하겠다는 얘기다.

카카오가 잃은 소는 소비자다. 먹통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인 1014일 카카오톡의 사용자 수는 4112만명이었다. 먹통 사태가 계속되던 1016일 일요일엔 3905만명으로 급감했다. 무려 200만명이 넘게 줄어든 것이다. 숫자로서의 소비자만 잃은 게 아니다. 카카오는 가장 중요한 소비자의 신뢰를 잃었다.

지난 2010년에 출시된 카카오톡이 단숨에 국민메신저가 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기술적으로 편리했다거나 통신사 문자와 달리 무료였기 때문만이 아니다. 국민들이 네트워크 효과를 일으켜줬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전부 카카오톡에 있기 때문에 카카오톡이 온국민의 필수앱이 된 것이다. 카카오톡을 국민 메신저로 완성시킨 건 카카오가 아니라 소비자인 국민들이다. 소비자의 신뢰가 없었다면 지금의 카카오 제국은 불가능했다.

카카오의 외양간지기 남궁훈 전 카카오 CEO이자 새로운 재난대책 소위원회 리더의 미션은 바로 이것이다. 화재로 불에 타버린 카카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일단 고쳐야 할 외양간은 구체적으로 DR이다. Disaster Recovery의 약자인 DR은 재난복구를 의미한다. 천재지변과 사건 사고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비상 계획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어떤 재난에도 외양간이 소를 잃지 않도록 해주는 비단 주머니들이다. DR 개념은 최신 비즈니스 이론이다. 20019.11테러가 계기가 됐다. 9.11 테러는 블랙스완이었다. 검은 백조처럼 절대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9.11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엔 수백개 기업들이 입주해 있었다. 사람들이 죽은 건 테러 때문이었지만 기업 법인들이 죽은 건 기업의 고객 정보들이 담긴 전산 데이터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데이터센터 화재로 85시간 불통

온국민 필수앱, 일상 대혼란 야기


정보 이중보호망 미비, 신뢰 추락

구원투수 남궁훈, 대표직서 사퇴


소비자 믿음 상실땐 빅테크 위기

외양간 잘 고쳐 소 잃는 일 없어야

그런데 9.11테러에서도 살아남은 기업들이 있었다. 모건스탠리와 뱅크오브아메리카 그리고 메릴린치 같은 금융사들이었다. 금융사들은 규제 때문에 의무적으로 고객의 금융 정보를 이중화해서 보호해야 한다. 이중화란 데이터센터를 각기 다른 곳에 마련해서 데이터를 이중삼중으로 지키는 것을 말한다.

은행이 가진 고객 금융데이터가 사라지면 대공황급 금융붕괴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 것이라고 믿는 예금은 결국 은행의 장부상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장부가 사라지면 돈도 사라진다.

카카오처럼 국가 단위 시장을 운영하는 빅테크는 DR 체계 수립이 필수적이다. 나라에선 언제든 재해와 사고와 사건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블랙 스완은 더이상 검은색이 아니다. 그렇지만 카카오는 시장은 국가 단위였지만 경영은 판교 단위인 회사였다. 카카오가 초기에 데이터센터에 화재가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발언이야말로 카카오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글로벌 단위 재난대비책 필수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은 글로벌 단위 시장을 운영한다. 당연히 지구 단위 우주 단위의 재난에 대비하고 복구하는 DR이 필요하다. 특히 구글과 메타는 재해복구 시스템에 매우 진심이다. 카카오톡처럼 구글의 검색엔진이나 메타의 인스타그램도 서비스가 망가질 경우 전지구적 재해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카카오 먹통 사태에서도 카카오 플랫폼에 연동된 유료 서비스들 때문에 매우 복잡한 민사소송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카카오T 모빌리티와 연동된 택시 업계의 매출 손실이다.

카카오는 데이터센터를 이중화해놓긴 했다. 문제는 다른 데이터센터를 별도 운영하는 것이 이중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정 데이터센터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다른 데이터센터로 즉시 데이터가 이전되는 전송 시스템까지 필요하다. 이걸 페일 오버(Fail Over)라고 부른다. 정작 카카오는 SK C&C 판교 데이터센터에서 다른 데이터센터로 데이터를 페일 오버하는데 페일하고 말았다.

카카오는 20분 이내 서비스 복구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정작 카카오 먹통 사태에선 2시간 이내 복구를 장담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사흘이 넘게 걸리고 말았다. 페일 오버 과정을 간과한 탓이다. RT와 연결된 비즈니스 개념 가운데 하나가 RTO. Recovery Time Objective의 약자다.

목표 서비스 복구 시간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러자면 수차례 모의 훈련을 통해 실제로 RTO가 지켜지는지를 가늠해야 한다. 실리콘밸리 빅테크와 월스트리트 금융사들은 주기적으로 전사적 모의 훈련까지 치른다. 카카오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페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20분도 2시간도 탁상공론일 뿐이었다.

카카오는 이미 국가 기간산업이다. 공항이나 고속도로처럼 인프라라는 얘기다. 카카오 먹통 사태로 의료와 교통이 마비됐다는 사실부터가 카카오가 국가 인프라라는 걸 말해준다. 정치권도 카카오 먹통 사태와 관련해서 데이터 이중화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이것도 뒤늦은 외양간 고치기다. 빅테크를 규제하려는 유사한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수년 전 흐지부지됐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국가 단위 통신 서비스를 판교 단위 회사인 카카오한테 맡겨둔 데는 이유가 있다.

 

기업 데이터독점에 의문부호

카카오가 국민 서비스인 건 사용자가 많아서만이 아니다. 카카오는 국민 개개인의 디지털 데이터를 보유하고 관리하고 활용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카톡이 아니라 데이터가 국가 인프라다. 데이터는 미래 산업의 오일이라고 불린다. 메타만 해도 사용자의 개인 정보를 활용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타겟 광고를 한다. 95%가 넘어가는 메타의 디지털 광고 시장 점유율이 바로 데이터의 위력이다.

오일의 공급자는 산유국들이다. 오일을 상업화하는 건 정유사들이다. 결국 오일이 중심이 되는 과거 산업의 헤게모니는 오펙 플러스와 오일 회사들이 쥐게 된다. 데이터의 공급자는 개인소비자들이다. 데이터를 상업화하는 건 빅테크들이다. 사실 빅테크한텐 개인 데이터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권리가 없다.

지난해부터 애플은 앱 투명성 정책으로 이걸 막고 있다. 그런데도 국가의 기간 데이터를 민간 기업한테 맡긴 맥락이 있다. 그렇다고 국가와 정부한테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개인 정보를 정부가 독점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과거의 정치역사가 보여준다. 결국 전 세계적으로 기업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개인 데이터를 수집하는걸 인정해 왔다.

데이터센터 화재나 데이터 유출처럼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기업의 데이터 관련 크리티컬 이슈들은 여기에 의문부호를 붙이고 있다. 기업이 세상의 데이터를 독점할 권리가 있는지를 묻는 개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개인 정보 주권 개념이다.

이게 차세대 인터넷이라는 웹3의 핵심 개념이다. 개인 정보의 주인은 소비자 자신이라는 믿음이 들불처럼 퍼지면 카카오나 메타 같은 국내외 빅테크한텐 진정한 위기가 찾아온다. 빅테크는 소비자의 데이터를 잠시 맡아둔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번 데이터센터 화재 사건으로 카카오는 개인 데이터 보호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사실 카카오는 지난해 카카오 먹튀 사건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카카오 대표로 내정돼 있던 카카오페이 대표가 400억원 어치 주식을 한꺼번에 매각했다 도마에 올랐다. 남궁훈 대표가 카카오를 이끌게 됐던 배경이다. 카카오 먹튀 사건과 카카오 먹통 사태까지 계열사 194개의 기업 집단 카카오는 잇따라 재난 복구에 실패하고 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카카오의 외양간 고치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 신기주 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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