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김태완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매혹의 도시 이탈리아 베니스에는 안토니오라는 선한 상인이 있었다. 어느 날 둘도 없는 친구 바사니오로부터 포샤라는 아가씨에게 청혼하기 위해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모든 재산을 상선에 투자해 돈이 없었던 안토니오는 악독한 고리대금업자로 소문난 샤일록을 찾아가 필요한 금액을 빌려주면 항해 중인 상선이 돌아오는 즉시 갚겠다고 말한다.

샤일록은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 주지만 만약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안토니오의 살 1 파운드를 베겠다는 조건을 단다. 바사니오는 안토니오로부터 받은 돈으로 포샤와의 결혼에 성공하지만 상선의 침몰로 샤일록에게 빌린 돈을 기한 내에 갚지 못하게 된 안토니오는 1 파운드의 살이 베어질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칼라일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호언했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의 내용이다. 1596년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희극 베니스의 상인은 우정과 사랑 그리고 샤일록이라는 극단적인 캐릭터와 반전으로 역사에 남는 작품으로 손꼽히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사회가 가진 종교적, 인종적 문제가 함축돼있다.

16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서구사회에는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유대인에 대한 조롱과 증오의 뿌리가 매우 깊었고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셰익스피어가 샤일록이라는 인물을 창조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어찌되었건 돈을 갚지 않으면 살을 베겠다는 샤일록의 조건은 채무의 변제를 넘어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는 불합리한 약정이라는 점에서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잔혹한 부당특약으로 남게 된다.

계약체결돼도 효력 불인정

민간거래·공공계약 모두 적용

수급사업자에 부담 전가 쐐기

부당특약의 문제는 비단 희극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공공계약 실무에서도 법령의 규정과 다르거나 또는 법령에 근거를 가지지 않음에도 계약기간의 연장, 물가변동으로 인해 증가된 계약금액을 오로지 업체의 부담으로 삼거나 정산을 배제하고 지체상금의 기준금액 내지 손해배상범위를 부당하게 확대하는 조건 등을 포함하는 경우가 다수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계약이 체결된 이상 업체도 이에 동의한 것이 아니냐는 이유로 들어 제대로 다퉈 보지도 못한 채 불이익을 감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러한 불합리에 대한 비판과 제도 개선의 긴 과정을 거쳐 부당특약이 금지돼 있음을 그리고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마련돼 있음을 공공계약 참여업체들은 알아야 한다.

과거에는 현장설명서에 명기되지 않은 사항은 수급사업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거나 계약이행 중 발생한 민원은 수급사업자가 책임지고 처리한다는 특약으로 인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부담하던 부조리한 관행들이 건설 하도급분야에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한 비판을 계기로 부당특약 설정을 제한하는 입법이 가시화됐고 2013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개정을 통해 원사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하도급 계약시 부당특약을 설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부당특약 금지조항을 신설하게 된다.

부당특약의 금지는 민간거래 영역을 넘어 공공계약에도 반영되게 된다. 종래 계약예규, 국가계약법 시행령을 통해 다소 추상적으로 규정돼 있던 공공계약의 부당특약 금지는 2019년 법률로 상향 규정되면서 공공계약의 원칙 중 하나로 자리하게 된다.

즉 국가계약법 제5조는 계약담당공무원이 계약을 체결할 때 법령에 규정된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 내지 조건을 정해서는 아니 되며 이러한 부당특약은 무효로 한다고 명시하게 된 것이다.

다만 법률 개정 전 대법원이 국가계약법령상 의무 형태로 규정하고 있는 물가변동 계약금액조정조항을 배제하는 계약조건에 대해, 국가계약법령과 다른 내용으로 일부 불이익을 준다고 해 그 내용이나 효력을 반드시 부인할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판단을 해 부당특약 무효 조항의 의미가 반감된 바는 있으나, 대법원이 다소 불이익한 정도를 넘어, 계약상대자의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인 기대에 반해 형평에 어긋나는 특약을 함으로써 계약상대자에게 부당하게 불이익을 주는 것일 경우 국가계약법의 부당특약에 해당해 효력이 없다고 해 부당특약이 무효라는 점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법원이 던진 여러 법령의 미비를 보완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나 부당특약이라는 법률적 근거를 통해 안토니오를 위기에서 구해 낸 포샤의 판정을 끌어낼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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