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훈_칼럼니스트
김광훈_칼럼니스트

얼마 전 청계천 헌책방에 들러 수소문 끝에 김영곤 작가의 왕비 열전 20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필자가 고등학생일 때 아버지가 자주 읽으시던 책이다. 자리를 비우실 때마다 나도 궁금해 펼쳐 보곤 했다. 물론 내용은 작가적 상상력이 가미된 것이지만, 상당 부분은 사실에 기초하고 있어 유익했다.

태조 이성계가 변방 세력이었다가 상승장군으로 명망이 높아지며 건국하게 되는 과정, 불리한 출신을 뛰어넘어 정치적 꿈을 펼치려 했던 봉화백 정도전, 세종 시대의 인재 등용과 한글 창제 과정, 로맨틱한 야사가 많았던 성종, 이순신 장군의 전공과 삼전도의 치욕, 사도세자의 통한과 정조의 꿈 등 한 번 책을 잡으면 내려놓기 어려웠다.

사마천이 감내하기 힘든 궁형을 받고도 사기를 집필한 것도 대단하지만, 우리 사관들이 때로는 목숨을 거는 위험에 직면해서도 사명감과 역사의식으로 기록을 남긴 것은 경이롭기만 하다. 폭군 연산군조차도 사초를 볼 수 없었고 강력한 왕권의 상징이었던 태종도 사냥 나갔다가 실수로 말에서 떨어진 걸 사관이 모르게 하라고 지시했다가 그 말조차 기록에 남았다는 일화가 있다. 조선의 역사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원칙을 고수하던 조선의 품격이 느껴진다. 이번 국감에선 정치인들의 그런 품격과 원칙의 부재가 더욱 아쉬웠다.

백업 데이터 보관만으론 한계

복구시스템 늑장작동 치명적

대형 플랫폼 걸맞은 대책 시급

전란이나 화재 등 불의의 사건이 발생해도 이러한 기록을 보존하려 조선 전기에는 전국의 세 곳에, 후기엔 네 곳에 사고를 운영했었다. 아무리 기록을 잘해도 간수를 잘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십여 년 전 직장 후배의 권유로 메신저에 가입해 잘 사용해 왔다. 물론 역기능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필자 의견으론 브레게라는 당시 유명한 기술자가 분 단위까지 볼 수 있는 시계를 만든 이후로 인류가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메신저가 제2의 브레게 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통령까지 중대 사안으로 언급한 카카오톡 85시간 불통 사건은 세계적으로 까다롭기로 유명한 독일 연방의 IT 보안 인증을 준비하고 획득한 실무 책임자였던 필자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데이터 관리에 대한 요건은 날이 갈수록 강화돼 왔다. 초창기엔 각 상황별 원상회복 목표 시간인 RTO(Recovery Time Objective)와 데이터가 백업 시스템만 돼 있으면 합격이었지만, 상황 발생 시 이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자 실시간 백업을 요구했고 나중엔 아예 두 개의 시스템을 마치 평행우주나 대형 여객기의 복수 엔진처럼, 운영 중 하나에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가 없는 다른 시스템이 바로 작동하게 만들어야 했다. 데이터는 적어도 10 킬로미터 떨어진 안전한 장소에 별도로 보관돼야 했지만, 물론 이번 사건처럼 백업 데이터만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고 문제 발생 즉시 다른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어야 했다.

정부 기관의 전 국민에 대한 알림뿐만 아니고 각종 개인 맞춤형 통지도 카카오톡으로 받는 상황이다 보니 이번 국감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진 듯하다. 규모가 작은 기업이야 비용문제 상 나중에 백업한 것을 되살리는 정도만 가능해도 좋겠지만, 전 국민을 상대로 한 플랫폼 기업이 의외로 이런 취약한 부분이 있었다는 게 아쉬운 대목이다. 카카오톡 다운로드 횟수를 보면 알겠지만,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앱이 아니다. 실제로 필자도 동남아 고객들과 간단한 업무나 개인적 안부를 물을 때는 카카오톡을 자주 이용하곤 했다.

이번에 큰 수업료를 냈으니 심기일전해 한국을 넘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기업으로 재탄생하리라 믿는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해선 예컨대 RBA(세계 최대의 CSR 전담 글로벌 비즈니스 연합) 기준 대비 어느 수준에 도달해 있는지 스스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IT 기업에서 흔히 발견되는 초과 근무, 협력업체 관련 사회적 책임과 윤리, 공정거래 관련 사항은 대형 플랫폼에 입점해 있는 우리 중소기업과의 관계에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동안 집 평수를 늘리느라 숨 가쁘게 달려왔으니 지붕에 추가로 새는 곳은 없는지 숨을 고르며 살펴볼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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