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조달시장판 중대재해처벌법 ‘부정당제재’

시행 8년간 발주기관 적용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
담당공무원들, 기업봐주기로 비칠까봐 활용 꺼려

정부, 개별회원사 제재시 ‘조합도 제한’ 규정은 개선
현장에선 “부정당업자 제재 경중 따져야” 강력 촉구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대한 입찰참가 자격 제한 방식이 일부 개선된다. 현재는 중소기업협동조합의 이사장이 대표자로 있는 개별회원사가 부정당 제재를 받는 경우에 협동조합도 입찰 참가 자격이 제한됐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입찰 참가자격 제한 사유와 관련 없는 협동조합이 입찰에 참여할 경우에는 제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행정안전부는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개정안을 1219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지난 7일 밝혔다.

행안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구체적인 예시도 들었다. 행안부는 “61개 회원사로 구성된 OO공업협동조합에서, 조합장이 대표로 있는 업체 A사가 계약 이행 부실 등으로 부정당제재를 받는 경우 협동조합의 나머지 회원사들도 조합 명의로 입찰 참가가 불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행안부는 이에 대해 부정당제재 사유와 무관한 협동조합까지 입찰참가 자격 제한 효력이 미치는 것은 자기책임 원칙에 비춰 과도하다고 판단된다고 해석하며 협동조합 제한 대상 규정을 고치기로 한 것이다.

과도한 행정처분 개선 건의

중소기업계는 정부의 부정당제재 관련 일부 규제 개선을 환영하면서도 부정당제재 제도 개선의 본질적인 혁신을 위해 정부가 한발더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정부의 국가계약법, 지방계약법, 공공기관운영법 등에 근거해 부정당업자로 낙인될 경우 지나치게 과중한 행정처분을 받는 문제에 대한 개선을 줄기차게 건의해 왔다.

중기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민형사상의 책임 이후에도 가혹한 행정제재로 기업활동을 아예 접어야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제재 사유에 해당하면 단순하고 경미한 과실에 의한 문제도 부정당제재로 강제되는 게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중기중앙회는 지난 20208월 기획재정부의 계약제도혁신 TF’에 부정당제재 제도 완화를 세밀하게 건의했으나, 협동조합 이사장에 대한 양벌규정 개선 이외에는 미반영된 상태다.

이 때문에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지난 518일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중기중앙회를 찾아 중소기업 대표 등 20여명과 함께 윤석열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 방향을 논의하던 자리에서 정부의 과도한 부정당제재 조치의 폐해가 심각하다완화 조치가 시급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소기업계는 부정당제재 개선을 위해 과잉제재는 비례원칙에 맞게 완화 과징금 제도 활용 저조에 따른 획기적인 적용 범위 확대 입찰담합(들러리)를 유도한 수요기관을 제재할 입찰담합 방지법 제정 등을 손에 꼽았다.

무엇보다 중소기업계는 입찰자격 제한 사유에 따른 효력 범위를 구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어도 단순 불이행의 경우 제재 사유에서 제외하고 필요적 사유임의적 사유를 구분해 각각 전체기관·해당제품’, ‘해당기관·해당제품으로 구분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계약법령에 규정된 22개의 부정당업자 제재 사유 중 어느 하나에만 해당해도 최대 2년 동안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을 망라한 모든 공공조달에 참가할 수 없게 된다.

위반행위의 경중을 따지지도 않고 이를 대체할 규제도 없이 입찰 참여와 계약체결을 금지하는 부정당제재의 엄벌주의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는 공공조달시장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고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인다는 명분으로 낮은 처벌 수준을 탓하며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형사처벌(1년 이상 징역형 하한 규정) 형량을 적용하고 있다. 실제 현장에선 중대채해처벌법으로 검찰이 살인죄에 준하는 형량을 구형할 수 있기 때문에 한번의 재해 사고로 사업체가 존폐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협동조합 관계자는 현재 공공조달시장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의 비율은 전체의 80%를 넘을 만큼 공공조달시장은 절대적인 생존시장이라며 정말 큰 잘못을 저지르면 강하게 입찰을 제한하는 것이야 동의를 하지만 사소한 서류상 실수 등의 잘못은 과징금 같은 걸로 적극 대체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호소했다.

과징금 대체모르는 업자 다수

공공조달시장의 수요기관들이 부정당업자에게 과징금 제도를 대체하는 방안도 중소기업계가 요구하는 제도 개선의 핵심 사항이다.

앞서 지난 20136월 국가계약법 개정을 통해 입찰참가 자격 제한처분을 대체하는 과징금부과 제도가 처음 도입되기도 했다. 문제는 행정기관만 적용하고 수많은 공공기관 및 공기업은 과징금 부과 근거가 없고 입찰제한 처분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 막상 적용가능한 행정기관의 과징금 부과제도의 조항을 뜯어보면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의 모호성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실제 국가계약법에 담긴 과징금 대체 부과제도 조항을 살펴보면 책임이 경미한 경우의 인정기준을 천재지변, 국내외의 급격한 경제 여건 변화와 같이 매우 엄격한 사유로 설정했다더욱이 처분할 수 있는 관할청인 발주기관이 직접 기재부나 행안부의 심의위원회를 거쳐 과징금 대체 부과 여부를 결정하게 설계했다.

앞서 협동조합 관계자는 이처럼 까다로운 2단계의 행정처분 업무구조를 만들어 놓고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하면 과연 누가 적용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머리를 내저었다.

실제 해당 과징금 대체 제도 시행 후 7개월만인 지난 20141월 첫 과징금 대체 부과 사례가 나올 정도였다. 이후 2020년 기준으로 공공입찰 발주기관들이 부정당업자를 과징금으로 대체 부과한 사례는 고작 ‘35에 그쳤다.

또 다른 협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공공입찰을 하고 있는 회원사들 중에는 과징금 대체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막상 계약담당공무원에게 과징금 대체 부과를 간청해도 혹시 모를 기업 봐주기로 자신이 피해를 받을까 두려워하는 눈치라고 현장의 실태를 전했다.

여전히 정부는 부정당업자 제재를 위해 과징금 대체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중소기업계는 해당 제도가 얼마나 무용한지를 매일 겪는 실정이다. 협동조합의 관계자는 공공기관운영법 제392항을 개정해 공공기관과 공기업도 과징금 제도를 도입하게 하고 중앙정부가 이를 적극 활용토록 종용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中企, 법적 대응력 태부족

한편 장경순 전 중기중앙회 상임감사도 최근 <중소기업뉴스>공직유감’(公職遺憾)이라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위반인 듯 아닌 듯한 공공조달시장의 회색지대에서 무조건 불이익으로 처분하기 보다는 기업의 눈높이로 바라다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30년 넘게 조달청에서 근무한 장경순 전 감사는 칼럼에서 제재를 받은 중소기업 입장에서 집행정지와 본안소송, 직접생산 취소 처분과 부정당제재 처분, 계약해지 등 일련의 불이익 처분에 대해 일일이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청천벽력이라며 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아무리 억울하고 답답해도 생소한 소송이나 절차를 거쳐 행정처분을 무력화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날 공직생활을 돌아보자는 취지로 작성된 해당 칼럼에서 그는 회색지대에 놓여 있는 각종 사례에 대해 기업의 눈높이에서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 보고 억울함이나 부당함을 덜어주도록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을 후회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편 중기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공공조달시장이야 말로 강력한 규칙과 제도를 유지하면서도 중소기업 판로를 적극 지원하는 유연함이 공존해야 한다정부의 입장이 아니라 민간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공공조달 행정을 다시 살펴봐 주길 바라며 그 출발점이 바로 부정당제재 개선이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부정당제재 : 국가계약법 등에서 계약의 당사자가 계약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 입찰참가자격 제한(1~2) 또는 이에 갈음하는 과징금 부과의 제재를 말하며, 부정당업자란 경쟁의 공정한 집행 또는 계약의 적정한 이행을 해칠 염려가 있거나 그밖에 입찰에 참가시키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인정되는 계약당사자 또는 입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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