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와이어 투 와이어우승이 전부가 아니었다. SSG랜더스는 지난 118일 창단 2년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정상에서 맞붙은 키움 히어로즈를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42패로 압도했다. SSG랜더스는 422022년 정규시리즈가 시작되자마자 10연승을 이어갔다. 시즌 내내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출발선부터 1등이었다. 결승선도 맨 먼저 끊었다. 완벽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었다.

와이어 투 와이어는 원래 경마 용어다. 출발선에서 1등한 경주마가 결승선에서도 1등을 하는 압도적 경기를 뜻한다. 그런데 SSG랜더스한텐 무언가 특별한 1등이 하나 더 있었다.

SSG랜더스는 2022년 시즌 홈관중 수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프로야구팀은 1년 동안 144경기를 소화한다. 이 중 절반인 72경기가 홈경기다.

홈관중 수는 해당 야구팀의 인기와 마케팅력과 홍보력을 보여준다. 홈관중 수가 많아야 굿즈매출과 F&B 매출이 늘어나면서 구단 수익도 커진다. 홈관중 수는 투수의 평균자책점이나 타자의 타율만큼 프로구단 경영의 핵심 지표다. SSG랜더스가 72경기 동안 모은 홈관중 수는 981546명이다. 경기당 평균 13633명을 기록했다.

예외적인 기록이다. SSG랜더스의 연고지는 인천이다. 홈구장은 인천 문학구장이다. 경쟁 구단들에 비해 인구수도 구장 크기도 작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프로야구 흥행 상위는 늘 LG트윈스나 두산베어스나 롯데자이언츠의 몫이었다. LG트윈스와 두산베어스의 연고지는 서울이다. 홈구장은 잠실이다. 롯데자이언츠의 연고지는 야도라고 불리는 부산이다.

반면 SSG랜더스의 전신인 인천 연고의 삼미, 청보, 태평양, 현대, SK가 단 한 번도 홈관중 수 1등을 기록해보지 못했던 이유는 인구수 차이다. SSG랜더스는 같은 조건에 있던 전신 구단들이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일을 해냈고, 인구수에서 훨씬 조건이 나은 경쟁 구단들을 뛰어넘었다.

신세계 유니버스 정조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2년 전인 2021SK와이번스를 1352억원에 인수했다. SSG랜더스로 재창단했다. 당시만 해도 비판여론이 거셌다. 프로야구의 인기는 시들해져가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에 눈높이가 맞춰진 야구팬들은 국내 야구에 더 이상 열광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용진 부회장에 대한 의구심도 컸다. 정용진 부회장은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불렸다. 삐에로쇼핑이나 부츠처럼 손만 댔다 접은 비즈니스가 여럿이었다. 삐에로쇼핑은 일본의 돈키호테 같은 천원숍이다. 부츠는 뷰티편집매장이다. 이마트 안에 마련한 일렉트로마트도 확신보단 의심을 샀다. 아내와 가족과 이마트로 장을 보러 온 키덜트 남성 소비자를 잡겠다는 전략이었지만 큰 효과를 보진 못했다.

정용진 부회장 본인의 키덜트 취향만 드러냈을 뿐이었다. 그래서 야구단 인수 역시 정용진 부회장의 개인 취향이 아니냐는 의심부터 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달랐다. SSG랜더스는 신세계 그룹의 플랫폼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플랫폼은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중심축을 말한다. 원래 정용진 부회장한텐 신세계 유니버스라는 비즈니스 전략이 있었다. 이마트, 스타필드, 스타벅스, 이마트24, 쓱닷컴까지 온오프라인으로 연결된 신세계 유통망을 하나의 생태계로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SSG랜더스, 신세계 효자 플랫폼급부상

창단 2년 만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제패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으로 새역사 창조


각본없는 드라마로 짜릿한 스토리텔링
관중이 즐기는 음료 등 소비데이터 축적


신세계 계열사들, 협업마케팅 기획 분주

랜더스데이엔 이마트·쓱닷컴매출 급증


3.5조에 인수한 지마켓과 온라인통합 가속

정용진 부회장 인천상륙작전은 현재진행형

소비라는 측면에선 실현 가능한 구상이었다. 그렇지만 소비라는 키워드만으로는 부족했다. 신세계 유니버스를 완성하려면 신세계 세계관을 완성해야만 했다. 단지 돈을 쓰는 소비 왕국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직접 빠져들어서 즐길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했다. 그래야 신세계 세계관이 완성될 수 있었다.

디즈니의 마블 세계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관객들은 마블의 스토리텔링을 자발적으로 소비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면서 마블의 캐릭터들과 스토리들을 즐기고 결국 세계관의 일부를 소유하기 위해 돈을 쓴다. 마블과 비교했을 때 신세계 세계관에서 빠져 있는건 결국 캐릭터와 스토리였다.

사실 정용진 부회장은 그걸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일렉트로마트의 캐릭터들을 내세운 적도 있었다. 일렉트로맨이라는 만화주인공이었다. 이렇게 캐릭터만 그려넣는다고 주인공이 되는 게 아니었다. 마블처럼 무수한 스토리와 시간이 씨줄과 날줄처럼 연결돼야 세계관이 되는 것이었다.

SSG랜더스가 해법이었다. 삼미 슈퍼스타즈 때부터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의 야구 구단이었다. 야구는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주인공들의 승리와 패배 그리고 기쁨과 좌절 스토리가 그라운드 위에서 매일 같이 펼쳐지고 있었다. SSG랜더스는 이야기 없이 소비만 이뤄지던 신세계 유니버스에 마침내 스토리텔링을 입혀줬다.

무엇보다 신세계는 SSG랜더스로 어벤져스를 영입했다. 신세계 유니버스의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라고 할 수 있는 추신수와 김광현을 스카우트했다. 메이저리거 추신수의 연봉은 1년 동안 27억원에 달한다. 역시 메이저리거인 김광현은 4년 동안 151억원을 약속했다. 홈관중 수 100만명은 SSG랜더스의 스토리텔링이 관중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 없는 숫자다.

소비데이터 축적 산실

신세계는 데이터 야구를 넘어 데이터 마케팅 야구도 도입했다. 데이터 야구는 글로벌 프로야구의 대세다. 야구 통계학을 뜻하는 세이버매트릭스를 이용한 야구단 운용이 높은 성과로 이어진다는게 입증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측정치가 WAR이다. Win Above Replacement 그러니까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를 뜻하는 WAR은 선수 교체와 마운드 운용의 핵심 지표다. 그런데 정작 구단들은 야구장 운용에선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바꿔 말하면 선수들에 대한 데이터는 활용했지만 관중들에 대한 데이터는 적극 활용하지 못했다. 이유는 외주화 탓이었다. 대다수 구단들은 홈구장의 F&B 매장을 외주화시켜서 운영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모그룹의 주력 사업이 전자나 중공업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다르다. 스타벅스도 있고 노브랜드 햄버거도 있다. 솔직히 신세계엔 없는 것 빼곤 다 있다. 신세계는 SSG랜더스필드라고 불리는 인천 문학 홈구장을 실질적으로 경영한다.

SSG랜더스필드는 치킨보다 햄버거가 더 많이 팔리는 구장이다. 맥주보다 커피가 많이 팔리는 구장이다. 신세계엔 관중들이 몇 회에 어떤 음료와 굿즈를 많이 파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쌓여가고 있다. 관객한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야 더 많은 매출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해나가고 있단 뜻이다. 과거엔 그냥 외주화했고 알 수가 없던 값진 소비 데이터였다.

SSG랜더스는 신세계그룹 안에서 인기 계열사다. 프로야구단을 소유한 다른 그룹사들에선 상상하기 어렵다. 프로야구단은 적자에도 불구하고 홍보를 위해 지원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SSG랜더스는 다르다. 신세계 계열사들은 앞다퉈 SSG랜더스와 협업 프로모션을 기획한다.

실제로 계열사들의 매출 신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쓱닷컴데이나 랜더스데이 같은 이름이 붙은 프로모션들은 결국 SSG랜더스 야구를 보고 이벤트에 참여하면 이마트나 쓱닷컴의 상품을 할인해주는 방식이다. 랜더스데이엔 이마트나 쓱닷컴의 매출이 최대 20%씩 증가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야구도 보고 할인도 받으니 윈윈일 수밖에 없다. 정용진 오너가 아무리 야구단과 마케팅을 하라고 부채질을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무진들 입장에선 개인 실적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SSG랜더스가 계열사와 실무자 실적에 도움이 되는 선순환이 있기 때문이 가능한 일이다. 그룹사의 계열사만큼 복잡한 이해 관계도 없다. 적군보다 아군이 더 무섭단 얘기가 딱 맞다. 하지만 신세계그룹에선 SSG랜더스는 모두가 환영한다. 확실한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지마켓 매출도 고공행진

사실 신세계엔 SSG랜더스보다 우승이 필요한 인수팀이 따로 있다. 1년 전 2021111535591억원을 들여서 인수한 이베이코리아다. 신세계한테 인수된 뒤로 지마켓으로 이름을 바꿨다. 신세계 역사상 가장 큰 베팅이었다.

신세계는 지마켓 인수로 쿠팡과 네이버한테 밀렸던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을 3%에서 단숨에 15%로 늘렸다. 당시 정용진 부회장은 얼마가 아니라 얼마짜리로 만들 수 있느냐가 의사 결정의 기준이라면서 인수를 밀어붙였다.

특히 이베이코리아에서 이커머스에 잔뼈가 굵은 A급 인재 900명을 데려오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1년이 지난 현재 지마켓과 이마트 그리고 쓱닷컴으로 이어지는 온오프라인 통합 작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포인트를 통합하고 서비스를 통합하고 있다. 쓱닷컴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온라인 장보기가 지마켓을 통해서도 가능해졌다. 이용자가 폭증하면서 한달만에 거래액이 80억원을 돌파했다.

SSG랜더스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은 SSG랜더스의 플랫폼 기능을 강화시켜줬다. 우승팀만큼 관중을 많이 모으고 마케팅 효과가 큰 상품도 없다. 당연히 신세계 최대 역사인 지마켓과의 온라인 통합 작업에서도 SSG랜더스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SSG랜더스의 이름이 신세계 랜더스나 이마트 랜더스가 아니라 쓱 랜더스인 데는 이유가 있다. 결국 온라인 이커머스 시장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이끌 견인차라는 얘기다. SSG랜더스의 인천 상륙작전은 계속된다.

 

- 신기주 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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