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택 밀리의 서재 CEO
서영택 밀리의 서재 CEO

무리수였다. 지난 114일 밀리의 서재가 코스닥 상장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었을 때였다. 서영택 밀리의 서재 창업주이자 CEO는 차라리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처음부터 왜 지금 상장을 하려고 하느냐라는 투자자들의 반문을 들었다는 이야기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어차피 받을 질문이라면 툭 까놓고 시작하자는 작전이었다.

서영택 대표는 말했다. “밀리의 서재가 출판시장 변화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규모의 경제를 이루려면 기업공개를 해야 합니다.” 정작 왜 하필 꼭 지금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론 충분하지가 않았다. 핵심은 왜 상장을 해야만 하는지가 아니라 왜 하필 지금 꼭 상장을 해야만 하는지였다. 왜는 없었다.

상장 문턱 넘은 쏘카도 흥행 실패

최근 투자 시장의 분위기는 겨울을 넘어 빙하기다. 다른 기자회견에서 절대 상장 철회는 없다고 호언장담했던 원스토어도 결국 백기를 들었다. 원스토어는 통신 3사와 네이버가 합작한 앱스토어다. 2021년 연간 거래액 1조원을 돌파했다.

특히 콘텐츠 시장의 꽃인 게임 콘텐츠에서 입지가 탄탄하다. 그런데도 빙하기를 넘지 못했다. 연내 상장이 목표였던 컬리도 이미 시간 끌기에 들어갔다. 컬리는 최근 뷰티 제품 유통 플랫폼인 뷰티 컬리를 선보였다. 신선 식품 유통 플랫폼인 마켓컬리만으로는 상장의 벽을 넘을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장이 지금처럼 얼어붙기 직전에 상장 문턱을 넘는데 성공한 쏘카도 흥행에선 실패했다. 공모가 28000원에 시작한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역시나였다. 밀리의 서재는 지난 118일 결국 기업공개 철회 신고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 114일부터 7일까지 진행된 기업공개 공모주 수요 조사는 한마디로 낭패였다. 주당 21500원에서 25000원선까지 200만주 공모가 목표였다. 연기금과 공제회와 자산운용사 같은 기관투자자들은 하나 같이 손사래를 쳤다.

큰 손이 움직이지 않으면 개미들도 움직이지 않는다. 급기야 밀리의 서재는 공모 물량을 줄이고 유통 비율도 낮추는 품절주 전략까지 썼다. 소용이 없었다. 연준의 긴축과 증시의 불안으로 기업공개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밀리의 서재가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서영택 창업주의 말들이 무색해진 상황이었다. 여기서 당연하지 않은 건 밀리의 서재의 선택이었다. 불리한 상황인줄 알면서도 무리수를 뒀다.

원스토어 등도 IPO 접었는데

전자책 대표 플랫폼, 무리수 강행


KT 지니뮤직서 인수가 변곡점

투자자들, 풋옵션 등 상장 못박아


코스닥 입성 일단 철회, 귀추 주목

밀리의 서재는 구독형 전자책 서비스다. 9900원만 내면 12만권에 달하는 전자책을 모두 읽을 수 있다. 출판사 1500곳이 제휴했다. 매월 2000권 이상의 신간이 밀리의 서재에 쏟아져 들어온다. 3개월 이내에 출간되는 신규 도서의 40%가 밀리의 서재에 꽂힌다. 서점가 베스트셀러의 70% 이상은 무조건 밀리의 서재에서 찾을 수 있다.

한마디로 밀리의 서재는 물량의 서재다. 출판시장의 명실상부한 플랫폼이란 의미다. 그렇지만 상장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플랫폼이라는 측면에선 원스토어와 컬리의 닮은꼴이다. 규모가 다르다. 2021년 기준 원스토어 매출은 2142억원이었다. 컬리의 매출액은 9530억원이다. 컬리의 거래액은 20212조원을 넘어섰다. 반면 밀리의 서재의 매출액은 2021년도에 288억원을 조금 넘었다.

규모는 작지만 플랫폼 기업이 가진 약점에는 그대로 노출돼 있다. 밀리의 서재의 영업이익은 2022년 상반기에 104000만원으로 처음 흑자 전환했다. 아마존처럼 캐쉬카우를 찾아내서가 아니다. 상장을 위해 광고 마케팅비를 절감해서 재무구조를 일시적으로 개선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플랫폼을 구축하는 이른바 아마존 모델을 만들었다. 정작 아마존도 흑자 전환에 성공한 건 주력인 온라인 유통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AWS라는 클라우드 서비스 덕분이었다. AWS는 아마존한텐 로또였다. 아마존이 블랙프라이데이 같은 대목에 대비하느라 사들인 과잉 서버를 외부 업체에 대여한다는 아이디어가 인프라 애스 어 서비스산업으로까지 발전한 경우다. 밀리의 서재한텐 이런 로또가 아직 없다.

이병헌·조정석 등 스타마케팅

밀리의 서재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사실상 자본잠식상태였다. 2021년 밀리의 서재는 판관비로만 308억원을 지출했다. 2021년 매출액보다 많다. 덕분에 밀리의 서재는 전자책 후발주자인데도 단숨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밀리의 서재의 누적회원수는 550만명이 넘는다. 전자책 시장의 선발주자는 2009년 창업한 리디다. 밀리의 서재는 2016년에 창업했다. 이병헌과 변요한을 앞세운 스타TV광고로 단숨에 리디를 넘어섰다. 조정석의 CM송도 화제였다.

밀리의 서재의 스타 마케팅은 광고만이 아니었다. 밀리의 서재는 스타나 저자가 직접 책을 읽어주는 리딩북을 킬러 콘텐츠로 만들었다. 밀리의 서재는 스타의 서재였다. 이병헌이 600페이지 짜리 사피엔스30분 분량으로 요약해서 읽어주는 리딩북이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스타의 서재는 비용의 서재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마케팅비를 불태우게 될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이 돈을 불태울 때는 목표는 하나다. 오직 상장이다. 이때부턴 투자금이 바닥나는 게 빠른지 상장을 해서 대박이 나는 게 빠른지의 시간 싸움이 된다. 밀리의 서재는 시리즈B 투자까지 285억원 정도의 총알을 확보했다. HB인베스트먼트와 한국투자파트너스까지 유명 벤처캐피털들의 투자를 받았다.

투자엔 대가가 따른다. 투자사들한테 그만큼의 수익을 돌려줘야 한다. 밀리의 서재가 스타의 서재가 된 건 이때부터였다. 무엇보다 밀리의 서재의 투자사들은 대부분 전략적 투자자가 아니라 재무적 투자자였다. 최우선 목표가 상장을 통한 투자 이익금 회수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변수까지 겹친다. 밀리의 서재는 20219KT그룹 산하 지니뮤직에 인수된다. 인수대금은 464억원이었다. KT는 이른바 텔레코 기업에서 디지코 기업으로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었다. 텔레코는 유무선통신사업자다. 디지코는 미디어와 금융과 디지털이 결합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다. KT는 음원 시장에선 지니뮤직을 앞세운 것처럼 밀리의 서재를 통해 출판 콘텐츠 시장에서 새로운 그림을 그려볼 작정이었다.

사실 이때 새삼스러웠던 건 KT가 아니라 밀리의 서재의 선택이었다. 이때만 해도 밀리의 서재는 상장보단 인수를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스타트업이 대박 나는 길이 공개 시장 상장 뿐인 건 아니다. 대기업에 인수되는 길도 있다. 실리콘밸리라면 구글이나 애플 같은 빅테크에 인수되는 경우다. 실리콘밸리에선 오히려 상장 대박보다 인수 대박이 더 흔하다. 이때 스타트업 창업자와 투자자들은 중간 엑시트를 하게 된다. 밀리의 서재는 KT에 인수되는 중간 엑시트를 선택했다.

알고 보니 당시 지니뮤직의 밀리의 서재 인수계약서는 상당히 복잡한 구조였다. 계약서만 놓고 보면 밀리의 서재 투자자들은 KT가 밀리의 서재를 인수한 다음에 상장을 미루지 못하도록 수많은 장치를 만들어뒀다. 밀리의 서재 기존 투자자들은 지니뮤직은 3년 이내에 기업공개를 완료하도록 노력한다고 명기했다.

또 지니뮤직과 모회사인 KT그룹이 상장을 추진하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상장을 방해하거나 상장 심사를 철회하고 기한 내 상장을 못하면 재무적 투자자들이 풋옵션과 태그얼롱*과 드래그얼롱** 같은 방법을 동원해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못 박아뒀다. 풋옵션에 따르면 상장이 안 되면 투자자들은 KT한테 주당 25만원에 밀리의 서재 주식을 되팔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드래그 얼롱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늦어도 2024년까지 상장에 실패할 경우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을 새로운 매수인한테 매각할 수 있다. 이때 최대주주인 지니뮤직의 지분 38.63%도 동반 매각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그래야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챙길 수 있어서다. 요약하면 계약서는 밀리의 서재 상장 의무를 인수자인 KT가 짊어지도록 만들었다.

 

머니게임 서재가 된 밀리의 서재

지니뮤직에 인수된 이후 밀리의 서재한테 상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2022년 하반기가 아무리 투자의 빙하기여도 밀리의 서재는 애당초 내부적으로 정해진 상장 수순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됐단 얘기다.

지금은 최적기가 아니라고 상장을 보류하는 것보단 기업공개 절차를 밟았다가 공모에 실패하는 게 기존 투자자들을 설득시키기엔 차라리 나을 수 있다. 이번에 상장에 성공했다면 HB인베스트먼트와 스틱인베스트먼트 등 투자자들은 95억원 정도를 구주매출로 회수해나갈 예정이었다. 사실 이렇게 구주매출이 적지 않은 것도 기관투자자들이 꺼렸던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무엇보다 서영택 창업주도 상장까지만 CEO로서 함께 간다는 얘기가 있었다. 서영택 대표는 밀리의 서재가 지니뮤직에 인수될 때 중간 엑시트를 많이 못했다. 개인보유하고 있던 8000주 정도를 현금화했을 뿐이었다. 15억원 어치였다.

대신 서영택 대표의 특수관계인과 전·현직 임원이 각각 100억원과 230억원 어치를 현금화했다. 지니뮤직에 인수되면서 밀리의 서재에선 서영택 대표만 빼고는 다들 대박이 난 셈이다. 대신 서영택 대표는 밀리라는 개인회사를 통해 밀리의 서재 지분 9.95%를 보유하고 있었다. 지분가치는 대략 138억원 정도다.

상장 이후에 서영택 대표는 지니뮤직에 밀리의 지분을 사가라고 요구할 수 있다. 풋옵션을 걸었기 때문이다. 보호예수시간은 6개월 밖에 안 된다. 언제든 창업주 CEO가 회사를 떠날 수 있는 구조였다. 이러면 당연히 시장의 반응이 싸늘할 수밖에 없다. 투자자는 내리려고 하고 선장도 언제 바뀔지 모르는 배에 승선하려는 승객은 없는 법이다.

밀리의 서재는 머니게임의 서재가 됐다. 책을 펼치는 원래 목적은 잊혀졌다. 책갈피에 끼워둔 지폐를 찾기 위해 책장을 살피는 상황이 돼버린 셈이다. 사실 여기엔 구현모 KT그룹 대표이사의 연임도 여러모로 연결돼 있다.

2020년에 취임한 구현모 이사의 연임은 2022년 겨우내 9인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를 통해 결정된다. 밀리의 서재 인수는 디지코KT를 만들려는 구현모 대표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성과 가운데 하나다. 상장으로 대박이 난다면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였다. 밀리의 서재는 지금 상장을 시도해야만 했다. 밀리의 서재는 상장의 서재다.

 

태그얼롱(Tag Along) : 동반매도권이라고 부른다. 지배주주가 보유 지분을 매각할 때 그것이 좋은 조건이라고 판단되면 나머지 주요 주주들도 동일한 가격으로 보유 주식을 팔겠다고 1대 주주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드래그얼롱(Drag Along) : 동반매도청구권이라고 부른다. 소수 주주가 지배주주 지분까지 끌고와 제3자에게 매각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드래그얼롱은 콜옵션(우선 매수권)과 함께 붙어 다니는 경우가 많다.

- 신기주 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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