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김태완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내경은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운명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천재 관상가다. 아들과 산 속에 은둔하고 있던 그는 눈치로 관상을 보는 기생 연홍의 제안에 넘어가 한양으로 향한다. 연홍의 기방에서 사람들의 관상을 봐 주는 일을 하던 그는 관상으로 범인을 잡아 용한 관상쟁이로 한양 바닥에 소문을 날리게 되고 사헌부를 도와 인재를 등용하라는 명을 받게 되면서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수양대군이 역모를 꾀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위태로운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하지만 정작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에게 어떠한 위험이 돼 돌아올지는 알지 못한다. 영화 관상의 이야기이다.

미래를 본다는 것이 완벽할 수는 없는 듯하다. 천재 관상쟁이 내경 역시 바다를 보며 밀려오는 파도를 봤지 그 파도를 만드는 바람을 보지 못했으며 자신이 세상에 나옴으로 인해 아들이 절명할 것이라는 비극은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공공계약에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있는가. 국가 등을 상대방으로 하는 공공계약은 일반적으로 입찰공고, 낙찰자 결정, 계약체결 및 이행의 순으로 진행된다. 공고된 내용을 앞으로 펼쳐질 계약의 미래, 즉 계약의 운명이라고 한다면 이를 변경하거나 새로이 추가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궁금하다.

먼저 이미 체결된 계약의 경우를 살펴보자. 원칙적으로 기존 계약의 동일성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계약내용을 구성하는 납지, 납기, 규격과 수량 등을 변경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심지어 발주기관의 승인이 있을 경우 합병, 영업양도 등으로 인한 계약자의 변경도 허용되고 있다. 다만, 계약금액과 같은 중요 사항은 마치 사람의 운명처럼 그 변경이 자유롭지 않다. 경쟁입찰을 통해 체결된 계약의 주요 내용을 사후에 자유로이 변경할 수 있다면 경쟁은 무의미해지고 입찰은 특정인의 낙찰을 위한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할 수 있다. 즉 계약체결 당시 예측할 수 없었던 사정 변화가 있는 경우 즉, 물가가 급격히 변동하거나 설계변경으로 인해 기존의 계약금액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형평에 반하는 경우 법률과 계약조건의 규정에 따라 그 변경을 허용하고 있다. 공공계약 역시 사적 계약과 다르지 않다고 보면서도 사람의 운명처럼 그 변경이 쉽지만은 않다.

동일성유지범위내 변경 허용

금액 등 핵심내용 바꾸면 무효

계약직전 새 조건추가도 안돼

그렇다면 아직 계약에 이르지 않은 단계에서 공고된 내용을 변경하는 것은 어떨까. 발주기관 A는 그 소유 부동산에 대해 현 상태대로 매각한다는 내용으로 입찰공고를 했고 최고가로 입찰한 B가 낙찰자가 됐다. 그런데 A는 계약서를 작성할 시점에 이르러, 공고에는 없었던 조항, 곧 매각대상 토지 중 1필지를 일반인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내용을 계약에 포함하도록 요구했다. B가 공고와 다른 사항을 부당하게 추가한 것이라며 A의 요구에 응하지 않자 A는 해당 입찰을 무효로 했다.

이 사안에 대해 법원은 국가계약법에 따른 입찰절차에서 낙찰자의 결정으로는 아직 본 계약이 성립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계약의 목적물, 계약금액 등 계약의 주요한 내용과 조건은 입찰공고와 입찰자의 입찰에 의해 의사 합치가 되고 발주자가 낙찰자를 결정한 때에 이미 확정됐다고 할 것이므로, 발주자가 계약의 세부사항을 조정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계약의 주요한 내용을 입찰공고와 달리 변경하거나 새로운 조건을 추가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될 수 없다고 봤고 A의 입찰취소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공공계약의 주요 분쟁 중 하나는 계약체결 시점에 이르러 발주자가 임의로 입찰공고된 내용과 다른 조건이나 새로운 사항의 추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발주자의 요구를 거부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고, 만약 이를 거절했을 경우, 발주관서는 입찰을 취소하거나 해당 낙찰자에게 계약 미체결을 이유로 부정당업자 제재처분을 부과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법원의 판단에서 보듯이 정당성을 가지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수양대군은 시대의 운명에 맡겨진 파도이고, 김종서는 미동하지 않는 바다다. 이 둘은 대척점에 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운명을 마주하는 공동체였다는 것이다. 하나의 공공계약에서 발주자와 낙찰자는 계약의 원만한 완성이라는 운명을 마주하는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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