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아이거
밥 아이거

밥 아이거가 돌아왔다. 2020년 디즈니를 떠났던 전설적 CEO 밥 아이거는 지난 1120일 전격적으로 디즈니 사령탑으로 복귀했다. 왕의 귀환이었다.

밥 아이거는 지난 3년 동안 자신의 레거시가 후임자에 의해 무너져내리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밥 아이거는 디즈니의 전설적인 CEO였다. 지난 20202월 퇴임했을 때 창업자 월트 디즈니를 제외하면 디즈니에서 가장 중요한 경영자로 칭송받았을 정도였다.

밥 아이거는 2005년부터 15년 동안 디즈니를 이끌었다. 밥 아이거가 사장이지만 사실상 회장 역할을 하기 시작했던 때가 2000년 전후부터였던걸 고려하면 20년 가까이 디즈니의 수장이었다. 밥 아이거는 2020년 퇴임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모두가 밥 아이거가 정치에 투신할 거라고 예상했다.

밥 아이거는 오랜 민주당원이다. 2020년 당시엔 뚜렷한 민주당 대선 후보가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도 당시엔 잠룡일 뿐이었다. 디즈니를 왕국에서 제국으로 성장시킨 CEO 밥 아이거는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점쳐졌다. 정작 밥 아이거는 워싱턴으로 향하는 대신 은퇴를 선택했다.

전임자 시스템 뒤집은 체이팩CEO

문제는 밥 아이거의 후임자인 밥 체이팩이었다. 밥 체이팩은 30년 동안 테마파크와 소비자 제품부서와 홈엔터테인먼트 부서와 유통을 모두 거친 정통 디즈니맨이었다. 특히 밥 체이팩은 디즈니월드로 대변되는 테마파크 전문가였다. 디즈니가 경쟁 할리우드 메이저들보다 비교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건 디즈니월드 덕분이었다. 다른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극장 수익에만 의존했다.

디즈니는 디즈니월드를 통해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가 창출하는 부가가치를 만끽할 수 있었다. 디즈니 안에서 테마파크의 위상은 삼성그룹에서 삼성전자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삼성그룹에서도 역시 삼성전자와 삼성후자로 나뉜다고 얘기가 있을 정도로 삼성전자의 위상이 높다. 디즈니의 삼성전자는 바로 디즈니월드다.

밥 체이팩이 유력한 경쟁자였던 케빈 마이어를 누르고 CEO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배경이다. 케빈 마이어는 밥 아이거의 오른팔이었다. 마블과 20세기 폭스 같은 굵직한 인수합병을 성사시킨 실무자다. 그런데도 디즈니의 최종 선택은 밥 체이팩이었다.

정작 밥 체에팩은 전설적인 전임자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을 순식간에 뒤집어놓기 시작했다. 가장 중대한 변화가 DMED라는 중앙 컨트롤 타워를 만든 것이었다. DMED는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과 투자와 플랫폼 전략을 모두 아우르는 미디어앤엔터테인먼트 디스트리뷰션의 약자다. 디즈니는 2019년 말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를 런칭한 직후였다. 디즈니 플러스는 극장용 영화와 TV용 드라마까지 모든 디즈니 콘텐츠 전체가 하나로 모이는 플랫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엔 디즈니 산하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겐 극장이 메인 플랫폼이었다. 디즈니 산하 ABC 방송국의 메인 플랫폼은 TV였다. 디즈니 플러스는 이 모든 플랫폼의 상위 플랫폼이 될 터였다. 그것이 OTT의 역할이었다. 컨트롤 타워 DMED와 최상위 플랫폼 디즈니 플러스가 결합되자 디즈니 조직의 캐릭터가 바뀌기 시작했다. DMED는 과거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처럼 디즈니의 모든 콘텐츠 제작부서를 총괄하는 막강한 권력기관으로 변했다.

디즈니, 수직적 조직으로 탈바꿈

밥 체이팩이 취임한 20202월 직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다. 오프라인 테마파크 전문가였던 밥 체이팩은 온라인 디즈니 플러스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결국 밥 체이팩은 밥 아이거 시절엔 각각의 제작 파트에 일임됐던 예산과 유통 권한을 DMED가 독점하도록 만들었다. 디즈니 제국은 빠르게 수직적 조직으로 변했다.

밥 아이거는 밥 체이팩이 일으킨 이런 변화를 못 마땅해했다. 밥 아이거와 밥 체이팩의 관계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밥 아이거는 밥 체이팩이 자신의 레거시를 짓밟고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밥 아이거가 전설적인 디즈니 CEO가 된 건 임파워먼트를 통해서였다. 권한위임은 디즈니가 제일 잘하는 것이었다. 밥 아이거가 픽사와 마블과 루카스필름과 20세기 폭스 같은 굵직한 인수전에서 승리하고 화학적 조직통합까지 성공시킬 수 있었던 건 실무 권한을 하부 조직한테 위임하는 임파워먼트를 잘해서였다.

밥 아이거의 전임자는 마이클 아이즈너였다. 마이클 아이즈너 역시 밥 아이거처럼 20년 동안 디즈니를 경영했다. 처음 10년은 최고였다. 당시 디즈니가 선보인 대박작이 라이언킹이었다. 다음 10년은 최악이었다. 토이스토리를 앞세운 픽사한테 애니메이션 명가 자리를 빼앗긴게 이때였다. 마이클 아이즈너는 전형적인 독재자 CEO였다. 수직적이고 관료적이었다. 아이즈너의 리더쉽은 처음 10년은 통했지만 다음 10년엔 통하지 않았다.

마블 어벤져스시리즈 등 초대박 견인

15년동안 월트 디즈니 이끈 밥 아이거


위기에 빠진 제국 구하려 사령탑 복귀

할리우드 등돌리며 실적·주가 내리막


M&A달인, 넷플릭스·애플 인수설 솔솔

플랫폼으로 연착륙, ‘시즌2 신화쓸까

꽉 막힌 디즈니를 유연하고 개방적인 디즈니로 만든 게 바로 밥 아이거였다. 밥 아이거는 권한을 독점하지 않고 일선 제작부서에 예산권과 캐스팅권한을 위임했다. 마블을 인수하고 나서도 점령군처럼 굴지 않고 케빈 파이기 같은 인재를 내부 승진시켜서 과감하게 권한을 줬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마블의 어벤져스시리즈는 그야말로 초대박을 냈다. 밥 아이거는 디즈니를 콘텐츠 스튜디오에서 콘텐츠 IP 제국으로 변화시켰다. 20세기 폭스 같은 전통적인 경쟁자들은 디즈니의 지적재산을 부러워하다가 결국 통합을 결정했다. 넷플릭스 같은 신흥 경쟁자들조차 테마파크부터 이젠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이어지는 디즈니 밸류체인을 부러워했다. 넷플릭스가 오징어게임대박을 환호했던 또 다른 이유다.
 

출혈경쟁에 재무건전성 최악

밥 아이거는 그렇게 20년 가까이 쌓아 올린 자신의 공든 탑이 2년 만에 무너지는걸 지켜 봐야했다. 밥 체이팩은 일단 불운한 CEO였다. 코로나 팬데믹은 밥 체이팩도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다. 밥 체이팩은 신임 CEO로서 인정 받기 위해 디즈니 플러스의 양적 성장에 집착했다. 디즈니의 스트리밍 구독자는 역시 디즈니 소유인 ESPN플러스와 훌루의 구독자까지 더하면 23400만명에 달한다. 스트리밍 왕자인 넷플릭스의 구독자 22300만명을 넘어선다.

밥 체이팩은 전체 구독자에서 넷플릭스를 돌파한 것을 업적으로 삼았다. 상처 뿐인 영광이었다.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마케팅 출혈 지출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재무 건전성은 급격하게 악화됐다. 성장을 위한 성장이 만든 실패였다. 디즈니 플러스는 디즈니 마이너스였다.

밥 체이팩은 디즈니의 우군인 할리우드마저 적으로 돌렸다. 2021년 여름 마블의 블랙위도우개봉과 관련해서 스칼렛 요한슨과 법정소송까지 갔다. 디즈니가 블랙위도우를 극장과 디즈니 플러스에서 동시에 개봉한 게 문제였다. 스칼렛 요한슨은 디즈니의 온·오프라인 동시 개봉 전략 탓에 인센티브가 감소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때 밥 체이팩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스칼렛 요한슨과 맞소송을 했고 비난 성명까지 발표한다. 힘으로 찍어누르려고 한 것이다. 스칼렛 요한슨 한 사람이 아니라 할리우드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짓이었다.

밥 아이거는 부메랑 CEO. 사실 부메랑 CEO는 성공하기 어렵다. 적잖은 전설의 CEO가 과거의 영광을 꿈꾸며 복귀했지만 결과는 기대만 못했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가 대표적이다.

현재 디즈니의 실적은 최악이다. 지난 118일 발표된 디즈니의 3분기 실적은 그야말로 어닝 쇼크였다. 디즈니의 스트리밍 사업인 디즈니 플러스의 손실만 147000만달러에 달했다. 201911월 런칭 이후 디즈니 플러스에 누적된 손실 규모만 80억달러에 달했다. 디즈니의 주가는 하루만에 13%나 하락했다. 9.11테러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시즌1에서 밥 아이거는 디즈니를 IP왕국으로 만들었다. 시즌2에선 플랫폼으로 변화시켜야만 한다. 전혀 다른 과업이다. 플랫폼이 되려면 디즈니는 자신의 IP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디즈니와는 성격이 다른 콘텐츠들을 품어내야만 한다. 밥 아이거의 임파워먼트가 디즈니 바깥까지 확대돼야 한다는 뜻이다. 일단 밥 아이거는 장기인 인수합병 카드를 꺼낼 공산이 크다.

디즈니 산하 스트리밍이 서비스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은 건 디즈니 플러스가 아니다. 광고 기반의 훌루다. 성인용 콘텐츠가 즐비하다. 그런데 훌루는 절반만 디즈니 소유다. 나머지는 컴캐스트 것이다. 밥 아이거는 일단 컴캐스트로부터 훌루를 모두 사오는 협상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이건 디즈니의 기존 콘텐츠와는 결이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를 흡수하는 작업이다.

그리곤 더 큰 인수합병에 나설 공산이 크다. 가능성이 없지 않은 선택지는 애플이다. 하나는 넷플릭스 다른 하나는 애플이다. 밥 아이거를 디즈니 CEO 자리에 오르게 한 숨은 공신 가운데 하나가 스티브 잡스다. 그때부터 애플과 디즈니의 인수합병설은 늘 하나의 시나리오였다.

스티브 잡스한테 시간이 많지 않았다. 잡스가 애정한 아이거가 마무리할 과업일 수도 있다. 지난 1128일 밥 아이거는 캘리포니아 버뱅크 영화 스튜디오에서 디즈니 직원들과 타운홀 미팅을 가졌다. 밥 아이거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정말 위기다. 이 어려운 역할을 다시 맡게 됐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밥 아이거는 전임자이자 후임자인 밥 체이팩의 이름을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디즈니에서 밥은 오직 하나다. 밥 아이거다.

 

- 신기주 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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