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나 공공기관의 표준계약서에는 계약금액 조정 조항이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공급기업은 설계변경과 물가 변동 또는 계약 조건이 변경되는 경우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다. 공사의 경우 현장 시공이라는 특성상 금액조정의 대부분이 설계변경 때문이다.

반면 물품의 공급은 설계변경에 의한 금액조정 항목이 없다. 계약체결 전에 확정된 사양대로 납품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물가나 노임단가가 변동하는 경우는 계약금액을 조정해야 한다.

물가 변동에 의한 계약금액 조정20여 년 전 원자재가격 급등기에 공급기업의 계약 안정성을 확보해 주는 측면에서 도입했다. 조정 조건과 조정 방법이 규정에 구체적으로 반영돼 있고, 다양한 유권해석 사례도 공개하고 있어 분쟁의 소지가 거의 없다.

최근 납품단가 연동제 법제화가 경제계와 정치권의 화두다. ‘납품단가 연동제의 법적 뿌리는 2009년 도입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도이다. 그러나 지난 14년 동안 제도에 의한 실제 조정 사례는 거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정 협의라는 것은 대·중소기업 간 자율적인 협상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사실상 을인 중소기업이 거래중단을 각오하지 않으면 신청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조정 협의제도만으로는 대·중소기업 간 협상력의 간극을 메꿀 수 없다는 의미다.

이러한 어정쩡한 괴리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중소기업중앙회와 중소기업계는 지난 14년간 납품단가 연동제 법제화를 끊임없이 추진해 왔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계약 당시에 원자재가격 상승 등 단가 변동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금액조정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에 일부에서는 법제화가 시기상조라며 반대 성명을 낼 만큼 반발도 만만치 않다. 다른 한편에서는 납품단가 연동제에 공공조달 계약상의 물가 변동제를 벤치마킹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공공조달 계약상의 물가 변동에 의한 계약금액 조정이 민간 시장에서 납품단가 연동제라는 이름으로 논란을 불러온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원가상승분 공동분담은 당연

일부선 시장논리에 위배주장

성공적 시행·연착륙 귀추 주목

먼저 민간과 공공이라는 조직의 성격 차이 때문이다. 정부는 중소기업 육성과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의 공공조달 시장 참여 확대라는 뚜렷한 정책 목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물가 연동 계약금액 조정은 공공조달 시장에서 참여자인 중소기업이 가격 변동 리스크로부터 안전하게 기업활동을 영위토록 하는 정책이다.

반면 민간의 납품단가 연동제는 상생과 협력을 통한 윈-윈의 가치를 추구하지만 참여자의 자율성을 우선해 경직된 방식으로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다른 하나는 물가 변동으로 인한 추가 비용의 전달과 분배 구조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구매하는 물품의 최종 소비자다. 추가되는 비용은 예산에 반영해 처리하면 끝나는 아주 단순한 메커니즘이 따라 예외 없이 작동한다. 그러나 민간 기업의 경우 원자재 구매에서 조립·가공 후 완성품 판매에 이르기까지 매우 복잡다단한 공급망으로 엮여있다.

이러한 복잡성은 추가 비용에 대한 분배 구조를 정립하기 어렵고 전체적인 컨센서스를 형성하기조차 쉽지 않다. 공공조달 시장의 물가변동에 의한 계약금액 조정을 최근 회자되는 납품단가 연동제에 벤치마킹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납품단가 연동제 법제화를 반대하는 일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국내 중소기업은 기업 생태계상 가장 하단에 위치해 원자잿값과 환율 급등 같은 비용 상승 부담을 포함한 모든 리스크를 일방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실정에 놓여 있다. 이런 면에서 건전한 기업 생태계 조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일방적으로 비용과 리스크를 부담하는 구조보다 공급망 전체를 통해 분산되도록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중소기업이 비용 리스크를 일방적으로 떠안고 있는 지금의 희생적인 상황은 정상적인 시장 메커니즘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침 지난주 납품단가 연동제 법제화가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성공적인 시행과 안착을 기대해 본다.

장경순
한림대학교 글로벌협력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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