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훈 칼럼니스트
김광훈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16강 진출의 쾌거를 달성하고 온 국민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16강 진출에는 짜릿한 역전의 드라마가 있었다. 만만한 팀은 아니지만, 해볼 만한 상대였던 가나에게 조규성이 멀티골을 기록하고도 패배해, 실낱같은 희망만 남아있던 대한민국은 막판에 저력을 발휘해 포르투갈을 상대로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일궈냈다.

다 아는 대로 월드컵 축구의 위상은 남다르다. 한 종목이지만 규모 자체가 올림픽의 절반에 버금가는 데다 본선은 아무나 갈 수 없다. 인구 대국 중국, 인도는 물론 예전에 우리나라의 발목을 잡곤 했던 미얀마, 말레이시아는 이제 명함조차 내밀 수 없고 박항서 감독의 지도로 동남아시아를 평정했다는 베트남에게도 아직까지는 언감생심 넘사벽이다.

어느 원로 의학자의 말대로 폭발적인 질주와 순발력, 체력이 필수인 축구가 논농사를 주로 했던 아시아인들에겐 불리한 건 사실이다. 모든 스포츠를 다 못하면 신체구조 상 열등하다 할 수 있겠지만, 탁구, 배드민턴, 양궁 등 아시아인들이 독점하는 분야가 있는 걸 보면 축구가 독특한 종목인 건 맞는 것 같다.

월드컵의 묘미는 이변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선 토너먼트에선 확률의 법칙으로 회귀한 모양새였지만, 16강까지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전통적인 강호 독일, 벨기에, 우루과이가 결선 토너먼트 진출도 못하며 대거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런 이변을 직관한 적이 있다. 2002년 월드컵 개막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는 세네갈에 10으로 패배했다. 당시 현재의 호날두나 메시급 유명세를 누리던 지단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걸어 다니던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본 기억도 난다.

어린이 잡지에서나 보던 해외 축구 스타들은 이제 우리 축구 스타들과도 친구다. 아직 많은 수는 아니지만, 우리 선수들도 유럽 무대에 속속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팀이라 할 수 있는 16강 진출 팀 스위스를 호날두 없이도 6-1로 대파한 게 포르투갈이다. 그런 포르투갈을 2-1로 꺾은 것은 선수들과 전 국민의 눈물 나도록 간절함의 결과라고 해석하고 싶다.

인구도 비슷하고 여러 가지 환경이 비슷해 보이는 한국이 이토록 발전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최근 방문한 케냐의 영부인이 김건희 여사에게 물어봤다는 얘기가 들린다. 새마을 운동, 근면함, 교육열에 힘입은 바 크지만 그건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이고 진짜 비결은 본래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법이다. 또 정작 본인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축구 좀 한다는 나라치고 팬들이 없는 곳은 없지만, 영하의 날씨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각지에 모여 경기 현장도 아닌 거리 응원을 전국적인 규모로 이렇게 간절히 하는 나라는 매우 드문 것 같다. 한 가지 바람직한 것은 객관적인 전력 상 격차가 큰 팀과의 경기 때는 승패보다 게임 자체를 즐기는 축제 문화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노력과 국운이었다면 우리의 경제, 문화의 위상이 60년대 초 비슷한 수준이었던 현재의 가나나 케냐 수준이었겠지만, 비상한 노력과 간절함이 우리 세대에서 역사 상 유례가 없는 발전을 이뤘다. 대통령이 전용기도 없어 초라하게 얻어 타던 시절의 아픔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또 여기저기 돈을 융통해 그 먼 곳을 여러 차례 비행기를 갈아타며 경기 직전에 도착해 시차 적응은 꿈도 꾸지 못했던 우리 선수들의 그때 그 상황도 이제는 추억이 됐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세계 경기의 위축으로 유가가 내려 물가안정에 다소 도움이 되겠지만 체감 물가가 만만치 않다. 최근 우유값이 4000원대에서 7000원대로 올라 깜짝 놀랐다. 지난 1년간 대출금리가 2.25%가 올랐는데, 가계부채가 평균 1억원 정도 된다고 하니 추가 이자 부담만으로도 만만치 않다. 이러니 중소기업이 대출을 받아 장비를 사고 공장을 돌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순 없다. 어떻게든 이 불황을 견뎌내면 좋은 날이 오기 마련이다. 늘 그랬듯이 간절함으로 그날을 기다려 본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