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의 대표적인 큰손은 기관 투자자와 외국인 투자자다. 공공 조달시장에도 큰손이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같은 공공기관이다. 세계 각국에서 공공 조달 규모는 GDP10% 내외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1년 조달시장 규모는 184조원에 이른다.

공공 조달은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하는 차원에서 나아가 국가 정책을 이행하는 중요하고 직접적인 수단으로도 작용한다. 경제 환경이 좋지 않은 시기에는 재정을 조기 집행해 경기 순환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 기술 우수제품이나 혁신 제품을 우선 구매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기술 개발을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하기도 한다.

공공 조달시장의 두 번째 기능은 중소기업을 포함한 여성·장애인·사회적 기업과 같은 다양한 약자 기업들이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들을 위해 일정 물량을 유보(Set Aside)하고 있다.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의 지정이 대표적이다. 일정 금액 이상의 공사용 자재는 전체 도급계약에서 분리해 중소납품업체로부터 직접 구매함으로써 적정 이윤을 보장한다. 또한 조달시장 참여 목표 비율을 두어 여성 기업과 사회적 기업들이 소외되지 않고 일정 몫을 담당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한다.

사회적 책임에 충실한 기업이 공공 조달에 참여할 기회를 확대해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가치를 확산하는 것은 공공 조달의 세 번째 역할이다. 입찰과 공급자 선정 과정에서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평가하고, 우수기업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해 공급자로 선정될 확률을 높인다.

사회적 책임의 평가 지표는 환경 법규에 대한 순응도·청년과 장애인 고용 정도·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녹색 정책의 반영 정도·재활용 활성화 현황·산업 재해 수준 등이 있다. 이외에도 일학습 병행·가족친화·인적 자원개발을 위한 노력과 같은 평가 지표들을 활용하기도 한다.

사회적 가치 반영한 공공조달

시장경제 선순환 마중물 역할

中企 ESG경영 견인차 되길

몇 년 전에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공공 조달 학술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공공 조달의 가치라는 제목으로 20여개 나라의 조달 관련 전문가와 교수들이 모였다. 공공 조달이 반영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가치의 중요성과 이러한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방법론에 대해 열띤 토론의 장이 열렸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다. 사회경제적 가치를 과다하게 반영하는 것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현상으로 정의하고, 기본으로 돌아가서 품질·가격·조달 시간이라는 구매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좋은 품질의 물품이나 서비스를 필요한 시기에 가능한 한 낮은 가격으로 습득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구매의 목표라면, 정책의 수단으로서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고 사회적 후생을 높이는 것은 공공 조달이 가진 궁극의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공공 조달이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사고파는일반적인 구매와 일대 일로 비교할 수 없는 이유는 이처럼 서로 다른 평면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기업은 물론이고 지자체와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ESG 경영이 화두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지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환경에 대한 고려와 사회적 책임, 그리고 투명한 지배구조라는 비재무적 가치에 대한 투자와 활동이 필수적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공공 조달에는 그 정책 목표와 집행 과정에 ESG로 대표되는 사회적 가치를 반영해 오고 있다. 또한 그러한 가치체계가 잘 형성돼 있는 기업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줌으로써 기업의 ESG 경영을 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공 조달에 참여한 중소기업의 76.7%‘ESG 경영이 준비되지 않았다다고 응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SG 경영은 중소기업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부터는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공공 조달의 패러다임이 중소기업의 ESG 경영에 커다란 마중물이 되길 기원(祈願)해 본다.

장경순
한림대학교 글로벌협력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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