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HD현대 사장이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HD현대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미래 해양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HD현대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미래 해양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이제부턴 하늘 대신 바다다. 이지머니(easy money)의 상승기류가 끝나고 해양 물류의 바닷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사실 판데믹 기간 동안 모빌리티의 키워드는 UAM이었다. 도심항공교통은 전기자동차 이후 가장 중요한 교통 혁신으로 평가받았다. 꽉 막힌 도심 도로 대신 확 열린 도심 하늘을 통해 승객과 화물을 운송하는 에어택시가 주목을 받았다.

중국의 이항과 미국의 벨 그리고 한국의 한화와 현대차가 UAM에 출사표를 내밀었다. JP모건은 UAM의 잠재 시장 규모를 2040년까지 15000억 달러로 전망할 정도였다. 향후 30년 안에 전세계 인구의 70% 가까이가 도시로 이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상 운송만으로 도심의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도심항공교통은 시장의 기대만큼 빠르게 비상하진 못했다. UAM을 이륙시킬 상승기류였던 이지머니 시대가 끝장났기 때문이다.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를 0%에서 4.25%로 단숨에 올려버렸다. 4연속 0.75% 자이언트 스텝 금리 인상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덕분에 UAM 논의는 말 그대로 쏙 들어가버렸다. UAM의 기술적 기반은 자율주행이다. 그것도 레벨4 이상의 완전자율주행이다.

 

오션 트랜스포메이션이 핵심

그런데 자율주행 기술은 아직 지상을 달리는 자동차에서도 완벽하진 않다. 앞서간다는 테슬라가 레벨3 수준이다. 레벨3에선 고속도로 같은 제한적인 환경에서만 인간의 개입 없는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레벨4부터가 인간의 개입이 필요 없는 수준이다. UAM이 레벨4 이상의 자율주행 테크놀로지가 요구되는 이유는 하늘을 날기 때문이다.

훈련 받지 않은 일반인들이 도심에서 수직이착륙 비행을 하기란 안전상 불가능하다. 자율주행 비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래서 UAM은 자율주행의 먼 미래다. 자율주행은 아직 땅 위에서 제대로 달리지도 못한다. 하늘에서 날기를 바라려면 시간이 매우 많이 필요하다. 이지머니 시대가 먼 미래도 근 미래처럼 확대해버렸다. 이지머니 망원경이 사라지자 UAM은 다시 먼 미래로 멀어져버렸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마린테크다. 마린테크는 자율주행 선박 운항이 핵심이다. 마린테크의 대표주자가 바로 조선업의 대장주인 HD현대그룹이다. 현대중공업이 창립 50주년을 맞아서 HD현대그룹으로 이름을 바꿨다.

HD현대의 핵심 전략은 오션 트랜스포메이션이다. 단순히 배를 건조하는 조선업에서 벗어나서 바다에서 벌어지는 모든 생산 활동을 시장으로 삼겠다는 내용이다. 오션모빌리티, 오션에너지, 오션와이즈, 오션라이프가 골자다. 바다에서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고 그 에너지를 바다에서 육지로 안전하게 이송하고 운송 과정을 무인화하고 자동화하겠다는 비전이다.

오션 모빌리티는 고도화된 자율주행 기술을 선박운항에 적용하는 내용이다. 자율주행이 고도화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엔비디아와 테슬라는 각각 토르와 모조를 내세워서 자율주행 기술을 첨단화시키고 있다. 토르는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인공지능이다. 모조는 테슬라의 인공지능이다. 토르와 모조는 모두 자체 개발한 AI프로세서와 빅데이터를 통해 운전기량을 갈고 닦고 있다.

HD현대의 스마트 선박에는 디지털 트윈 기술이 적용된다. 컨테이너선이나 유조선의 항로를 디지털상으로 재현한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항로에 있을 리스크를 예측하고 대응한다. 이런 데이터가 입력된 인공지능은 최적화된 경로로 화물과 여객을 운송할 수 있다.

자율주행 기술의 핵심은 시뮬레이션이다. 테슬라가 자율주행 인공지능의 이름을 모조라고 지은 이유다. 모조는 일본어로 도장이라는 뜻이다. 한해 100만대씩 팔리는 테슬라의 승용차들이 모아오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도장에서 시뮬레이션 모의 주행을 무한대로 연습한다는 의미다.

HD현대의 스마트 선박도 같은 원리다. 디지털 트윈으로 항로를 시뮬레이션할 뿐만 아니라 실시간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바닷길을 학습한다.

스마트선박은 에너지 효율이 극대화된다. 해양 모빌리티에 쓰이는 에너지는 아직까지도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지상 모빌리티가 빠르게 내연기관에서 전기모터로 전환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형 선박의 파워트레인이 전면적으로 전기모터로 바뀌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스마트 선박은 이 문제를 해결해준다. 항로 최적화로 에너지 효율을 높여준다. 동시에 전기 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30% 가까이 끌어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지상모빌리티에선 전기모터가 먼저고 자율주행이 나중이었다. 해양모빌리티에선 자율주행이 전기에너지를 견인하게 된다.

 

그린수소사업도 추진

사실 바다는 전기 생산의 최적지다. 바다는 풍력 에너지와 수소 에너지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HD현대의 오션 에너지 프로젝트는 풍력터빈을 통해 안정적인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는 게 골자다. HD현대의 현대일렉트릭은 GE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초대형 풍력터빈을 공동 개발한다. 바닷바람을 이용한 풍력 발전은 해변가보단 넓고 깊은 바다에서 더욱 효율적이다.

해상풍력발전 잠재력의 80%가 심해에 있다. 심해에 풍력 터빈을 설치하려면 부유식 풍력발전이 필수다. 고정된 지지대 위에 풍력 터빈이 설치되는 게 아니라 바다 위에 떠 있는 형태여야 한다는 뜻이다. 고정식에 비해 부유식은 건설 비용이 2배 이상이다. 이렇게 생산된 전기에너지를 지상으로 운송하는 문제도 해결해야만 한다.

HD현대의 미래선박 목업(Mock-up·실물모형).
HD현대의 미래선박 목업(Mock-up·실물모형).

HD현대는 심해에서 생산한 전기에너지로 바닷물을 분해해서 수소를 생산하는 그린수소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수소에너지 역시 수소차처럼 지상 모빌리티의 에너지원으로 쓰일 수 있다. HD현대는 2050년까지 글로벌 에너지 수요의 7%를 바다에서 생산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동시에 바다에서 생산한 수소를 지상에서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오션 트랜스포메이션의 또 다른 축에는 스마트 선박과 결합되는 오션 와이즈가 있다. 오션와이즈는 일종의 글로벌 운송 최적화 플랫폼이다. 해상 물동량과 항만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종합해서 물류를 최적화한다.

HD현대는 선박에 대한 예측 유지보수 솔루션을 제공한다. 얼마나 운항을 하고 언제 수리해야하는지 미리 알려준다는 의미다. 여기에 선박별로 탄소배출량도 체크할 수 있다. 선박별로 최적 항로를 제공하고 해상 물동량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오션 와이즈 플랫폼 구축을 위해 HD현대는 팔란티어와 협업했다. 팔란티어는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티엘이 2004년 창업한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페이팔에서 부정사용자를 잡아내던 기술을 테러리스트 색출에 적용했다. 팔란티어 기술의 핵심은 데이터를 활용한 관리다. 오션 와이즈처럼 글로벌 선박 물동량 관리에는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CES 2023서 시선집중

HD현대는 기본적으로 B2B 기업이다. 오션 모빌리티의 선박과 오션 에너지의 전기와 오션 와이즈의 물류는 모두 해운사와 발전소를 상대로 한다. 그렇지만 HD현대는 자율주행을 기반으로 B2C 시장에도 도전할 작정이다.

이번에 열린 CES 2023에선 마린테크 관련한 기업들이 대거 등장했다. 미국의 해양선박업체 브런스윅은 전기 자율주행 요트를 선보였다. 전기모터에 자율주행 기술이 결합된 15억원 짜리 요트다.

HD현대는 레저용 B2C 해양 모빌리티 시장에도 출사표를 던졌다. 아비커스는 HD현대의 자율운항 전문자회사다. 아비커스가 개발한 누보트 기술을 활용하면 요트 주변 해저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최적의 일몰 장소를 찾는다거나 최고의 낚시터를 탐색하는 식이다. 누보트 테크놀로지의 피시파인더 기능을 활용하면 물고기가 많은 낚시터를 자동으로 찾아준다. 무엇보다 항구에서 항구를 오갈 때 최적의 항로도 찾아준다. 자율주행 모빌리티가 요트에 적용된 경우다. 바다는 자율주행의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하늘길이 자율주행 기술의 B2C 시장이라면 바닷길은 B2B 시장이라는 의미다. HD현대가 마린테크로 자율주행 모빌리티의 전면에 나선 건 그래서다. 바라던 바다.

- 신기주 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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