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세배를 드리고 떡국을 먹고 윷놀이를 하는 등의 행위는 모두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우리 민족 고유의 세시풍속이다.
설날 세배를 드리고 떡국을 먹고 윷놀이를 하는 등의 행위는 모두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우리 민족 고유의 세시풍속이다.

매년 음력 11(오는 122)은 우리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다.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가 점차로 퇴색하고 일상이 빠르게 디지털화 되고 있는 와중에도 설날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며 덕담을 나누고 떡국을 먹는 등의 풍습만큼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특정한 날이면 으레 행하는 행동 양식을 세시풍속이라고 한다. 일정한 시기에 되풀이하여 행해 온 전승적인 생활 습관으로 세배, 떡국, 덕담을 비롯해 설날하면 떠오르는 차례 지내기, 연날리기, 윷놀이 등도 모두 새해 첫날에 하는 세시풍속들이다. 이 세시풍속들은 저마다의 기원과 의미를 지닌다.

설날 아침이면 각 가정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깨끗이 단장하고 절을 올리고 받는다. 세배를 하는 것이다. 세배(歲拜)는 정월 초하룻날 웃어른에게 하는 새해 첫 인사이자 설날 치르는 세시풍속의 대표 격이다.

어른이 무사히 겨울을 넘기고 새해를 맞은 것을 기념하며 문안을 드리는 것에서 비롯됐으며 조부모, 부모와 더불어 형과 누나 등 손윗사람에게 절을 하는 순으로 행한다. 세배를 하기 전에는 설빔이라고 하는 새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관례인데 이는 세배에는 새해를 맞이해 심신을 일신하고 새출발을 다짐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가족 단위가 핵가족 구조로 이뤄진 요즘은 집안 어른들께만 세배를 하는 것이 통상적이나 과거에는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하고 설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일가친척과 이웃 어른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곤 했다.

그러면 세배하러 온 어른 손님에게는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아이들에게는 술 대신 약간의 돈이나 떡, 과일 등을 내어준다. 이때 아이들에게 술 대신 준 돈이 세뱃돈의 시초다. 또 세뱃돈을 종자로 여겨 일년동안 재물을 많이 불리라는 의미도 있다고 전해진다.

 

떡국 한그릇이 나이 한살

지역마다 설날에 먹는 음식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떡국만은 전국 공통이다.
지역마다 설날에 먹는 음식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떡국만은 전국 공통이다.

비대면 문화가 익숙해진 요즘은 영상통화로 세배를 올리거나 봉투에 넣은 빳빳한 새돈 대신 모바일 금융거래의 간편 송금을 이용해 세뱃돈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방법이야 어찌됐건 정초 어른들께 세배를 올려야 한다는 인식만큼은 아직 변함없는 듯하다.

세배를 올리고 난 이후에는 모여 앉아 새해 첫 아침 식사를 한다. 지역마다 설날에 먹는 음식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떡국만은 전국 공통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인스턴트 떡국을 해먹거나 식당에서 사먹을 지언정 떡국을 먹지 않고는 설다운 설을 보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설에 떡국을 먹는 일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너무도 당연한 문화다. 그렇다면 설날 떡국을 먹는 풍습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설에 떡국을 먹는 풍속이 언제부터 생겼났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서울의 세시풍속을 수록한 열양세시기(1819)와 조선 후기 세시풍속집인 동국세시기(1849)에도 설날이면 떡국을 먹는다는 기록이 있다.

시인이자 사학자인 최남선은 학술서인 조선상식(1948)에서 설날 떡국은 매우 오래된 풍속으로 상고시대의 신년축제시에 먹던 음복적 성격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내용만 미루어 보더라도 설날 떡국은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한가지 의문이 든다. 하고 많은 음식 중 왜 떡국일까? 여러 문헌을 종합해 볼 때, 설은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니 만큼 엄숙하고 청결해야 하므로 깨끗한 흰떡으로 떡국을 끓여 먹었다는 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세배는 어른이 무사히 겨울을 넘기고 새해를 맞은 것을 기념하며 문안을 드리는 것에서 세뱃돈은 세배를 하러 온 아이에게 약간의 용돈이나 떡, 과일 등을 내어주던 것에서 비롯됐다.
세배는 어른이 무사히 겨울을 넘기고 새해를 맞은 것을 기념하며 문안을 드리는 것에서 세뱃돈은 세배를 하러 온 아이에게 약간의 용돈이나 떡, 과일 등을 내어주던 것에서 비롯됐다.

하얀 국물에 하얀 떡을 넣어 만든 떡국을 먹으며 때 묻은 과거를 잊고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시작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긴 가래떡을 엽전 모양으로 동그랗게 잘라 넣음으로써 식구들의 무병장수, 풍요 및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로 떡국을 먹었다고 전한다.

한편, 설날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말은 옛 선조들이 나이를 물을 때 병탕(떡국) 몇 사발 먹었느냐고 하는 데서 유래했다. 태어나 몇 해의 설을 보냈는지를 통해 나이를 가늠하던 것이 설날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이 더해진다는 의미로 확장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윷말 옮기며 농사운 점쳐

윷놀이는 윷가락이 엎어지고 젖혀진 상태에 따라 윷판의 말을 움직여 목적지에 도달하는 놀이로, 농경사회에서는 풍년을 기원하는 소망이 담기도 했다.
윷놀이는 윷가락이 엎어지고 젖혀진 상태에 따라 윷판의 말을 움직여 목적지에 도달하는 놀이로, 농경사회에서는 풍년을 기원하는 소망이 담기도 했다.

세배를 마치고 떡국까지 다 먹고 나면 신나는 놀이 한 판이 벌어진다. 윷놀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앉아 윷놀이를 하는 모습은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설날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가족은 물론 마을 사람이 함께 모여 즐기는 윷놀이는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설날 놀이다.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대보름날까지 하는 것이 관례이며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윷놀이의 유래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 및 고려시대 문헌에서 윷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용어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나무로 만든 주사위를 던져 승패를 가르는 백제시대 놀이인 저포(樗蒲)’와 혼용해 지칭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윷놀이에 대한 기록은 조선 초기 문헌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 초기 윷놀이에 해당하는 사희(柶戱)’라는 용어가 등장했고 중·후기 들어서는 척사(擲柶)’라고 불리며 오늘날까지 놀이방식이 이어지고 있다.

윷놀이는 과거 농경사회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소망이 담긴 놀이이기도 했다. 앞밭, 뒷밭, 날밭, 쨀밭 등 4개의 밭으로 이뤄진 윷판은 농토를 의미한다. 말은 놀이꾼이 윷을 던져 나온 패에 따라 움직이는 계절의 변화를 상징한다. -돼지, -, -, -, -말 등 농경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재산으로 대표되는 윷을 던져 윷판 위 말을 이동시키며 한해 농사 운을 점쳤다.

이렇듯 윷놀이는 운()에 기대는 운놀이이면서도 승패가 단지 운으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경우의 수(끗수)를 활용해 갈릴 수 있다는 점에서 놀이적 재미와 상징성을 모두 갖춘 놀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풍년을 기원하는 소망의 의미는 사라졌지만 지금도 마을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 척사대회를 열 만큼 지속성이 높고 미래에도 활발하게 전승될 가능성이 충분하며, 윷판과 윷가락에 담긴 상징성 등이 학술 연구 주제로서 활용도가 높다는 점 등에 의거해 지난해 가을 국가무형문화재가 된 바 있다.

- 신다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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