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기업 대표들이 말하는 지역 인력난·R&D 실태]
R&D 전문인력들, 지방산단 외면
대기업 본사 75%가 수도권 포진

인구소멸도 가속, 투자 언감생심
지역 中企 위한 정부 지원책 시급

대한민국은 사권분립 국가입니다.” 지역 중소기업들에게 삼권분립(입법·사법·행정의 권력 분리) 이외에 한 가지 국가 권력이 더 존재한다. 바로 수도권’(首都權)이다. 대한민국 수도의 막강한 권력을 빗댄 말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도권(首都圈)은 해를 거듭할수록 경제·정치·행정의 집적화가 강력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과감한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이어진 수도권 중심의 성장 인프라 집중화로 인해 지역간 불균형 해소는 쉽지 않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비수도권의 인구절벽 가속화다. 지역 지자체의 50% 가까이가 심각한 인구소멸을 체감 중이다. 이 때문에 지역 중소기업들의 인력난 해소는 첩첩산중이고, R&D·설비투자는 언감생심이다. 대기업 본사의 75% 가량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전국의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지역경제의 마지막 버팀목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은 일할 사람이 없어 고사 직전에 내몰리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지역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곱씹어 봐야 한다.

<중소기업뉴스>는 올해 신년기획으로 중소기업 희망 100년 협동조합원사가 뛴다3주 연재한 바 있다. 비츠로넥스텍(경기), 주식회사 오대(대구), 화신볼트산업(부산), 터보윈(청주) 모두 중소기업협동조합원사로 대한민국의 미래산업인 우주항공·원전·방산은 물론 제조·뿌리까지 다양한 산업군에서 선두를 달리는 강소기업들이다.

한편으론 이들이야말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지역 간판 스타기업들이다. 4개 강소기업 대표와 나눈 인터뷰에서 인력난과 R&D’ 중심으로 지역 중소기업이 겪는 고충을 재조명했다.

첨단 산업을 계속 수행하기 위한 기술 개발, 전문인력 양성, 설비투자 등 기업에서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하지만, 중소기업이 가진 여건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사업의 초기 우주항공 사업과 핵융합, 가속기, 폐기물처리까지 다양한 사업의 확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직원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이병호 비츠로넥스텍 대표의 말이다. 지난해 6월 성공적으로 발사된 한국형 우주 발사체 누리호에 참여한 300여개의 중소기업 가운데 비츠로넥스텍은 엔진연소기와 가스발생기 개발을 담당했다.

비츠로넥스텍은 국내 최초로 액체로켓 엔진을 개발할 만큼 우주산업의 작은 거인이지만 이병호 대표에게 가장 큰 고민은 일반 중소기업이 흔하게 겪고 있는 인력과 R&D 고충이었다.

이병호 대표는 국가출연연구소를 통해 수주를 받아 사업을 수행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자체 연구개발 및 설비투자에 대해서는 정부 지원이 매우 적은 상황이라며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자체 자금을 짜내 설비 및 인력을 투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3년 업무계획보고에서 우주경제 가동을 위해 2032년까지 약 2조원을 투입해 차세대 발사체 개발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주항공산업의 숨은 주역들인 중소기업들에겐 여전히 녹록지 않은 시장 환경이다. 게다가 지역에 포진한 중소기업일수록 전문인력 채용에 큰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이병호 대표는 우리 사업 자체가 특수한 첨단사업이기 때문에 매번 전문인력 채용이 쉽지 않다특히 우주항공 관련 전공 학과들도 많지 않은 문제도 있고, 입사지원자들이 지역적으로 회사가 산업단지에 있다는 걸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한다고 설명했다.

비츠로넥스텍은 지난 2016년 창업 이후 현재까지 경기 안산 반월특수국가산업단지에 입지에 있다. 거대 과학응용기술 산업에 있어 전도유망한 전문기업이지만, 서울의 핵심지나 대전과 같은 과학기술 특화도시와 인접하지 않는다는 지리적인 입지 조건으로 우주항공 전문교육기관과의 채용 연계를 비롯해 전국의 우수 인력을 끌어들이는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 이외에 분당·용인 이남의 지역 중소기업은 R&D 인력을 뽑기 위해 1년 내내 채용 공고를 내는 일은 이제 일상화됐다. R&D 인력은 고사하고 생산직 인력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인 시대다.

 

지역에 장기근무할 환경조성 시급

현재 윤석열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의 핵심 전략으로 교육 인프라 확대를 중심으로 지자체와 대학이 지역 맞춤형 인재양성 정책을 추진 중에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의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지방대학 출신 인재가 해당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통합적인 경제 생태계 조성은 여전히 미흡한 형편이다. 이미 수도권에 대기업 집중청년들의 수도권 쏠림서울권 대학의 입학경쟁 심화지방 중소기업의 인력난지방의 인구감소와 기업소멸이라는 악순환이 고착되고 있다.

익명의 한 지역 중소기업 대표는 지방 대학 출신 인재와 지역 기업의 연계를 위해서는 자녀 교육여건(··) 투자부터 시작돼야 한다양질의 직장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기울어진 일자리 시장에서 청년들이 중장기적으로 지역에 머물며 결혼·출산·경제활동 등이 지속될 수 있도록 생애주기별 교육지원과 금융 및 세제 지원 등이 총망라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비단 첨단 산업군에 포진해 전문인력 수급에 애로를 겪는 중소기업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통 제조 중소기업들도 몸집을 키울수록 인력채용과 R&D 생태계에서 수도권과 경쟁을 하느냐, 아니면 수도권에 입성하느냐를 고민한다.

전문인력과 R&D 문제가 커져서 수도권으로의 본사 이전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대구에 위치한 주식회사 오대의 김창현 대표의 설명이다. 주식회사 오대는 대구 대표 뿌리 명가(名家).

지난해 산업부가 대를 이어 뿌리산업발전에 앞장서고 있는 기업에게 수여하는 ‘2022 뿌리기업 명가로 선정됐다. 더욱 눈에 띄는 점은 정밀가공 분야에서 축적된 뿌리산업의 기술력으로 자동차 부품, 모발이식기 등 다양한 업종으로의 무한 도전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뿌리기업의 업종 다변화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김창현 대표에게도 가장 큰 고충은 R&D 인력 충원이다.

김창현 대표는 “R&D 인력 보강이 절실한 시점이지만 전문인력들의 지방 근무의 회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주식회사 오대가 도전하는 의료기기와 2차전지 같은 신사업 분야는 전문인력이 대거 필요한데 절대적인 숫자의 전문인력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채용에 난항을 겪는 실정이다.그나마 주식회사 오대는 조합원사로 가입한 중소기업협동조합의 도움으로 초창기 어려움을 어느 정도 털어낼 수 있었다.

김창현 대표는 “R&D의 경우 초기에는 전문성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대구경북기계협동조합의 타당성 조사 컨설팅과 자금 지원을 받아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정부에서 지역 중소기업들의 인력 수급 및 R&D 지원과 관련해 더욱 힘써 많은 기업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이 지역 중소기업의 업종별 R&D 개발의 새로운 창구로 떠오르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벤처기업부와 시행 중인 성과공유형 공통기술 R&D 지원사업은 지역 중소기업들이 참고할 만한 튼실한 R&D 지원 시스템으로 부각되고 있다.

성과공유형 R&D 지원사업은 중기부가 지난해부터 3년간 시행하고 있는 3차 중소기업협동조합 활성화 계획의 일환으로 협동조합의 자립기반 마련과 새로운 공동사업 촉진을 위한 정부의 첫 협동조합 R&D 지원사업이다. 지난해 1단계 지원사업(40개 조합 선정) 시행 이후 현재 총 27개 중소기업협동조합이 2단계 사업에 최종 선정돼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단계 사업에는 2년간 국비 240억원이 투입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성과공유형 R&D 지원사업을 통해 개별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R&D를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으며, 협동조합이 개발한 기술을 중소기업들이 낮은 사용료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성장 없이 균형발전 없다

<중소기업뉴스>는 지난 116일자 지역경제 성장해법, 中企에서 찾아라제하의 사설(社說)을 통해 지역 중소기업의 성장 없이는 어느 정부도 지역균형 발전을 달성하기 어렵다이제라도 지역 중소기업을 지역경제의 중심에 놓고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의 주체로 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역 중소기업의 위기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소멸이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의 핵심 열쇠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일부 지역 중소기업이 현재 자구책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R&D 투자에 뛰어드는 사례들을 세심하게 살펴 정책지원을 더 보강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산에 있는 화신볼트산업은 정부의 재직자 지원사업을 적극 활용 중에 있다. 이 회사는 창업주로부터 3대를 이어오는 전통 있는 장수기업으로 원전·방산 산업 등에 널리 쓰이는 특수볼트 분야의 글로벌 강소기업이다.

정순원 화신볼트산업 대표는 인구는 계속 줄어드는데 제조기업에 청년층을 유입하려면 중소기업에 재직 후 인생의 목표를 계획할 기회를 줘야 한다결국 근무 및 복지환경 개선이 답일텐데 우리 회사는 정부의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 지원사업을 적극 이용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는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청년을 대상으로 기업, 정부가 적립금을 쌓아 목돈을 마련해주는 금융 상품이다. 중소기업의 활용도가 매우 큰 지원 사업이지만 올해 사업 예산은 대폭 쪼그라 들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지원 예산은 198억원으로 확정했다. 지난해 국회에 예산 통과 과정에서 해당 예산은 416억원에서 164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가 여야 합의를 거쳐 34억원을 그나마 늘린 것이다. 지원 규모가 절반 이상으로 축소된 것이다.

또 다른 지역 간판스타인 터보윈(청주 지역 소재)은 임직원 대부분을 주주(株主)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 지원제도에 의지하기 보다는 차라리 회사의 성장을 개인의 성장으로 동기부여하고 있는 대표적인 업체다.특히 터보윈은 지난해 말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 프로젝트’ MOU 가운데 제조업 분야에 참여하는 몇 안되는 한국 중소기업이 됐다.

김민수 터보윈 대표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회사 비전 아래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육성하고 있다결국 회사의 주인이 임직원 자신이 되는 방법이 주효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각 지역을 대표하는 중소기업 경영자들 조차도 제각각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촌각을 다투며 혜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만 봐도 전국에 포진한 다른 일반 지역 중소기업들의 각종 고충은 불보듯 뻔하다. 지역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정부의 통합적인 지원대책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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