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을 이기는 글로벌 기업 전략 ] (2) 삼성전자

올해 화두는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우려다. 한국경제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오히려 경기불황의 진원지인 미국·중국 등의 강대국 보다 더욱 위험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내외 복합경제위기로 내수는 크게 위축되고 있는데다 최근엔 믿었던 수출마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심한 경기불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성장페달을 돌리는 글로벌 기업들이 있다. 오히려 불황을 기회 삼아 평소보다 더 빠르게 경영성과를 거두고 있는 기업들도 수두룩하다.

경기침체 때문에 사업이 잘되는 불황형 산업이 아니라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특별한 전략을 구사하는 혁신기업도 있다. <중소기업뉴스>는 실리콘밸리 창업전문매거진 더 밀크(The Miilk)’의 한국법인 부대표 신기주 칼럼니스트가 기고하는 기업인사이트코너를 통해 불황 속에서도 웃는 혁신기업들의 속살을 들여다 본다. (이권진 기자)

감산은 없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 사장이 지난 21일 임직원 대상 설명회에서 확인한 말이다. “결론적으로 올해 케펙스(CAPEX)는 전년과 유사한 수준이 될 것이다.” 김재준 삼성전자 DS부문 부사장이 131일 삼성전자 20224분기 실적발표 자리에서 확인한 말이다.

케펙스는 미래 이윤 창출을 위해 지출하는 자본적 지출을 말하는 회계 용어다. 반도체처럼 천문학적 단위의 선행 설비투자비용이 기업의 승패를 가르는 산업에선 케펙스가 곧 승부처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삼성전자의 감산과 케펙스 축소를 예상했었던 게 사실이다. 반도체 불황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재고 사상 최대

2022년 하반기부터 PCD램 가격은 34% 넘게 줄어들었다. 낸드플래시도 11% 넘게 하락했다. 가격하락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리세션(Recession)이 포개졌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인플레이션 탓에 물건값이 비싸져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사기 어렵다. 동시에 리세션 탓에 물건값이 떨어질 거라 기대하게 된데다가 수입은 줄어서 쇼핑하기 더 어려워졌다.

여기에 2022년 내내 중국은 사실상 경제적 봉쇄 상태였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은 사실상 이혼 수속 중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주요 수요처였던 AWS 같은 데이터센터 시장도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서버 대여 수요가 커야 성장한다. 아마존이나 쿠팡이 서버를 대여해야할만큼 전자 상거래가 많이 일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은 정반대다. 반도체 시장한텐 악재만 가득한 상황이다. 자연히 반도체 가격도 하락일로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재고액이 20223분기 말까지만 놓고 봐도 26조원이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메모리 2SK하이닉스도 146000억원 어치 재고가 쌓여있다. 글로벌 반도체 재고는 사상 초유 수준이다. 스위스투자은행 UBS가 일 단위로 측정하는 반도체 재고 수준은 이미 재고일수 40일치를 넘어섰다. 40일 동안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아도 될만큼의 재고량이 쌓여있단 말이다.

삼성전자의 재고일수는 이보다도 더 긴 13주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는 40주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통상적인 반도체 재고일수는 6일 정도로 본다. 재고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제조사한테만 쌓여있는 게 아니다. 스마트폰 제조사나 TV업체나 미국 클라우드 업체들에도 반도체 재고량이 많다.

지난 131일 삼성전자의 20224분기 실적발표를 앞두고 업계 안에서 감산이 화두가 된 건 당연했다. 지금처럼 재고가 쌓이고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에선 감산 브레이크를 밟는 게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20223분기 실적발표에서도 이미 감산이 화두가 됐었다. 당시에도 삼성전자는 감산과는 선을 그었다. 메모리 경쟁자인 미국의 마이크론이 이미 감산을 선언한 직후였다. 그런데도 삼성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 테크데이 2022에서 감산 대신 공격적인 투자를 선언했었다. 필연적으로 재고가 쌓였다. 2022년 실적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삼성전자의 감산카드가 또다시 화두가 된 이유다.
 

불황 틈타 반도체 장비 싹쓸이

삼성전자는 이번에도 진격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를 제외한 다른 경쟁사들은 대부분 감산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SK하이닉스는 물론이고 미국의 마이크론과 일본 키옥시아는 지난해부터 생산량을 줄이고 케펙스도 감축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했다. 삼성전자의 진격은 결국 반도체 치킨 게임에 다시 불을 붙이겠다는 의미다.

2000년대 삼성전자는 대규모 설비 투자를 쉴새 없이 밀어붙여서 일본 반도체 경쟁사들을 무릎 꿇렸다. 유명한 반도체 치킨 게임이다. 반도체 치킨 게임이 가능했던 이유는 반도체 수요엔 분명한 사이클이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다. 불황에는 수요가 줄지만 경기 사이클이 다시 호황기에 접어들면 빠르게 수요가 증가한다. 지금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불황도 언젠간 끝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진격이 가능해진다.

이재용 삼성 회장
이재용 삼성 회장

삼성전자는 2022년에만 482000억원에 달하는 케펙스 투자를 단행했다. 90% 이상이 반도체 부문이었다. 2022년과 2023년은 반도체 기술변곡점이다. 3나노급 초미세 공정 반도체 생산 설비를 누가 많이 확실하게 갖추느냐가 승부처다.

초미세공정 반도체 설비를 갖추려면 극자외선 EUV 장비 확보가 필수다. 네덜란드 ASML이 독점 생산하는 장비다. EUV 장비 한 대를 구매하는데만 150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 대당 제작 기간도 수개월 이상이다. 지금 주문해도 수개월 이상 기다려야만 한다. 당연히 대형 고객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악재 산적에도 몸집 유지

실탄 충분치킨게임 불붙인 진격의 삼성

반도체 불황이라고 장비 구매를 미루는 업체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케펙스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건 불황기에 아예 이런 장비를 싹쓸이하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설비와 기술 격차를 단숨에 벌려서 초격차를 만들어버리겠다는 의지다.

관건은 맷집이다. 경쟁사들도 반도체 사이클을 알면서도 쫓아가지 못하는 건 재무적 맷집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22년 연매출 300조원을 최초로 돌파했다. 그렇지만 환호성을 지르지는 않았다.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8%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20224분기 실적만 놓고 보면 더 위태롭다. 매출은 7046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8% 넘게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431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65500억원이나 줄었다.

중국이 리오프닝됐다지만 아직 세계 경제는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연준은 긴축속도를 늦출 참이지만 그렇다고 금리인하로 돌아서려면 1년 이상은 기다려야만 한다. 삼성전자의 어닝쇼크는 20224분기로 끝날 이벤트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삼성전자가 치킨게임을 선택한 건 그만큼 초격차 승부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초격차는 최근 수년 동안 격차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SK하이닉스만 해도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기술 경쟁에서 삼성전자와 대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메모리 분야의 기술 격차가 과거 3년에서 1년 정도로 줄어들었다.

반면 삼성전자가 추격자인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선 선두 TSMC와 아직도 초격차 상태다. TSMC는 애플과 퀄컴 같은 대형 고객사를 확보한 덕분에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에서 여전히 5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파운드리는 고객사의 설계에 따라 반도체를 맞춤 위탁 생산하는 비즈니스다. 고객사와 파운드리사가 서로 핵심 지적 재산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거래 관계가 맺어지면 거래처 전환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삼성전자가 TSMC보다 3나노 초미세 공정 양산에 먼저 성공했지만 점유율 싸움에선 우세에 서지 못한 이유다.

게다가 반도체 불황기엔 특히 선두 업체로 거래가 쏠린다. 그게 TSMC. 2위 삼성전자를 포함해서 미국의 글로벌파운드리스와 중국의 SMIC가 모두 뒷걸음질치고 있지만 TMSC만 독야청청하는 이유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메모리에선 초격차가 격차가 됐고 파운드리에선 초격차가 초초격차가 된 형국이다.

 

파운드리 분야 추격 고삐 당겨

이번 반도체 불황기에 메모리 분야에서 다시 격차를 초격차로 벌려놓지 않으면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분야에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20224분기 실적에서 삼성전자의 전략이 이미 드러났다. 메모리는 불황이었지만 파운드리 매출은 판매와 생산능력 확대로 실적 개선이 뚜렷했다. 추격을 뿌리치면서 추격의 고삐를 당기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불황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모두가 감산을 예상할 때 삼성전자가 감산과 선을 그었다는 건 이미 승부수를 띄웠다는 의미다.

삼성전자한텐 아직 실탄이 충분하다. 2022년 말 기준 삼성전자의 순현금은 1058100억원에 달한다. 적어도 지난해까진 매년 65조원 이상의 현금이 순유입됐다. 20224분기 반도체 부문이 겨우 적자를 면한 상황에선 2023년은 현금을 써야하는 시기다.

반도체 불황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반도체 부문은 적자전환을 넘어서서 수조원대 적자를 감수해야할 수도 있다. 이걸 감수하고서라도 초격차를 복구하고 초격차를 줄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모두가 감산을 예상할 때 감산과 선을 그었다는 건 이미 승부수를 띄웠다는 의미다.

다만 여기엔 변수가 있다. 지금의 반도체 불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냐다. 지난 수년 동안 반도체 호황기를 이끌었던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센터 수요는 더이상 견인차가 되기 어렵다. 지금 같은 경기 불황이 끝난다고 해도 데이터 센터 교체 수요에만 기대해선 삼성전자가 원하는 초격차를 만들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새로운 IT수요는 챗GPT로 상징되는 인공지능 대중화다. GPT는 출시 40일 만에 1일 사용자 1000만명을 돌파했다. 인간이 자연어로 질문하면 마찬가지로 대화형태의 자연어로 대답을 해준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언어로 된 정보를 배우고 다시 도출된 답을 복습하면서 완벽한 답을 제시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결국 자연어 기반 인공지능의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져야만 한다. 얼리어답터나 소수 과학자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인공지능의 대중적 쓰임새를 찾아내는 일이다. 2023년은 이런 실험이 시장에서 이뤄지는 시기가 될 전망이다.

결국 2009년 스마트폰이 대중적 시장을 찾아냈던 것처럼 인공지능 PC와 스마트폰 그리고 서버 수요가 폭발하게 된다. 이건 반도체 호황 사이클을 앞당길 수 있다. 인공지능은 삼성전자한테 필요한 운이다.

물론 삼성전자도 어느 정도 기술적 감산을 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장비 교체 같은 생산라인 최적화 작업을 틈타서 자연스럽게 생산량이 감소되는 걸 뜻한다. 감산은 하지 않지만 감산이 되는 효과다. 일단 삼성전자 경영진은 이른바 인위적 감산과도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이번 불황을 작정하고 치킨게임의 기회로 삼겠다는 얘기다. 이제 진격의 삼성이다. 시간과 운에 승패가 달렸다.

 

- 신기주 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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