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 판사의 공정거래법 산책 (1)담합에 관여한 임직원의 회사에 대한 책임

최근 들어 공정거래법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중소기업 간 상생은 기본적으로 공정거래가 지켜져야 가능하다. 이 법의 목적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경제력 집중, 부당공동행위, 불공정 거래를 규제해 자유로운 시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이 어려워 중소기업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중소기업인의 공정거래법 이해를 돕고자 대법원 재판연구관 허승 판사가 쉽게 설명하는 공정거래법 사례 시리즈를 매월 소개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중기전자의 대표이사 전 대표는 김 과장에게 공공기관 시스템구축사업 입찰에 참여하라고 지시했다. 전 대표는 중기전자가 낙찰받기로 다른 회사 사장들과 합의했다며 실무자들과 구체적 방안을 논의하라고 했다. 김 과장은 다른 회사 실무자들과 협의 후 중기전자뿐 아니라 다른 회사의 입찰제안서까지 대신 작성해 입찰에 참여했고 결국 중기전자가 낙찰받았다.

몇 년 뒤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을 적발해 중기전자에 과징금 10억원을 부과했다. 새로 대표이사에 취임한 현대표는 김 과장 때문에 중기전자가 과징금 10억원을 납부하는 손해를 입었다며 중기전자 명의로 김 과장에게 10억원을 배상하라는 소를 제기했다.

 

판사 : 직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건이군요. 이유가 뭐죠?

現대표  : 김 과장의 위법행위로 중기전자가 큰 손해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손해는 훨씬 크지만, 그래도 직원인 점을 감안해 과징금만 청구하는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김과장 : 황당하네요. 저는 종전 대표이사 지시에 따른 것뿐입니다. 대표이사 지시에 따랐는데 손해배상을 하라고요?

現대표 :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월급은 회사가 주는 것이지 대표이사가 주는 게 아니에요. 대표이사가 회사 돈 횡령하라고 하면 횡령해도 되나요? 종전 대표이사한테도 손해배상청구를 할 예정이니, 그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김과장 : 횡령이랑 담합이 같나요? 그리고 중기전자가 입찰에 성공해 얻은 이익이 10억원보다 큽니다. 중기전자가 실제 입은 손해는 전혀 없습니다.

現대표 : 무슨 10억원의 이익을 봤습니까? 회계부서에 물어보니 손해만 보지 않은 정도라더군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담합 없이도 중기전자가 충분히 낙찰 받을 수 있었어요.

 

부당한 공동행위와 과징금

부당한 공동행위, 즉 담합은 공정거래법이 엄격하게 금지하는 위법행위입니다. 공정거래법은 시정조치, 과징금 부과, 형사처벌을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죠. 그중 대표적인 제재수단이 과징금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을 이유로 수백억원, 심지어는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뉴스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담합을 위한 협의, 가격 결정 등 구체적 행위는 임직원 개인이 합니다. 위 사례에서도 전 대표가 다른 회사 사장들과 합의하고, 김 과장이 다른 회사 실무자들과 협의를 했습니다. 전 대표와 김 과장이 그런 행위를 안했다면 중기전자가 과징금을 납부하지 않았겠죠. 그렇다면 회사는 전 대표와 김 과장을 상대로 당신들 때문에 1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임직원을 상대로 한 소송의 증가

과거에는 임직원의 손해배상책임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회사가 담합에 관여한 임직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사건이 없었습니다. 횡령과 달리 임직원 개인이 얻는 이익이 없고, 무엇보다 회사를 위한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상법에 주주대표소송이 도입되고, 소수주주가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기 위한 요건이 완화되면서 소수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담합에 관여한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건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최근에는 회사가 직원을 상대로 한 소송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영진이 변경된 경우, 새로운 경영진이 과거 경영진과 직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죠.

 

담합으로 인한 회사의 손해

상법은 이사가 법령을 위반해 회사에 대해 손해를 입힌 때에는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법 위반이 법령 위반에 해당함은 분명하기 때문에 회사의 손해가 무엇이냐, 회사가 담합으로 본 이익이 있는데, 회사가 납부한 과징금을 모두 손해로 볼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됐습니다. 담합으로 인한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과징금 전부를 손해로 본다면, 결과적으로 회사, 구체적으로는 오너만 이익을 본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회사는 담합을 통한 이익을 보유하면서, 이사에게 과징금을 전가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담합이 없었다면 50억원에 낙찰될 사업을 담합을 통해 100억원에 낙찰받았다고 가정해봅시다. 과징금 10억원이 부과되더라도 회사는 손해가 없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회사가 얻은 50억원의 이익은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를 하면 박탈됩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회사의 이익이 박탈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담합이 없었으면 얼마에 낙찰됐을지, 즉 피해자가 정당한 낙찰가격이 50억원이라고 증명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담합, 휘발유 가격 담합 등과 같은 경우에는 개별 소비자들이 손해배상청구를 하지 않죠. 현실적으로는 회사가 이익을 보지만, 법적으로는 회사가 담합을 통해 이익을 얻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대법원 역시 회사가 과징금 상당의 손해를 봤다고 볼 수 있지만 담합으로 인한 이익은 손해에서 공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손해배상책임의 제한

과징금을 회사의 손해로 볼 수 있다면, 다른 문제가 등장합니다. 담합으로 인한 과징금 액수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크죠. 수백억원 또는 수천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되는 사건도 있습니다. 법원은 책임감경을 통해 해결하고 있습니다. 직급, 급여, 관여 정도 등을 고려해 책임을 제한하죠. 통상 회사에 과징금이 100억원 부과된 경우, 법원은 1억원에서 60억원 사이에서 책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직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과징금을 납부한 회사가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는 판결이 선고되자 새로운 유형의 사건이 등장했습니다. 앞서 본 직원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입니다. 직원은 대표이사의 지시에 따라 담합행위를 한 것이라고 다퉜지만,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직원이 근로계약에 따라 충실의무를 부담하는 대상은 회사이지 대표이사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직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직원의 책임을 약 10% 정도로 제한했지만, 직원 개인에게는 그 10%도 큰 부담이었을 겁니다. 위 사례에 그대로 적용하면 김 과장은 1억원을 회사에 물어내야 하니까요.

 

공정거래법의 중요성

최근 대법원은 담합에 관여하지 않은 대표이사, 사내이사 및 사외이사도 다른 임직원의 담합을 막지 않고 방치한 경우에는 회사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22. 5. 12. 선고 2021279347 판결). 회사가 담합으로 인해 과징금을 납부한 경우, 그에 책임 있는 대표이사, 이사가 회사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일반 직원의 책임에 대해서는 아직 대법원 판단이 없어 불명확한 부분이 많습니다. 다만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를 한 임직원 개인의 책임을 인정하고 그 대상을 확대하는 경향만은 분명합니다.

최근 강조되는 ESG 경영을 위해서는 공정거래법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공정거래법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임직원 개인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공정거래법 연재가 독자 여러분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위 내용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허승 판사
허승 판사

허승 판사는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 중이며 공정거래법, 세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쓴 책으로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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