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진출시 형사법 기본상식 숙지 필수

미국에는 다민족 이민국가에 내재돼 있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 관습, 가치관의 충돌에 의해 빚어지는 여러 형태의 긴장과 대립, 갈등이 각 구성원들 간에 늘 존재한다. 따라서 국민윤리나 도덕이란 개념보다는 법과 논리가 공동체적 규범으로 자리 잡아 사회 정의, 평등, 질서유지의 필수 불가결한 잣대가 된다. 법이 무너진 미국 사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이런 배경으로 인해 미국 경찰의 공권력은 정치구조나 치안환경이 완연히 다른 한국사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한미 양국 간의 교류는 그 어느 때 보다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다양한 교류 속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나 봉변을 당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번에는 미국에서 기본적으로 알아 두면 좋은 형사법에 대한 법률 상식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미란다 원칙(Miranda)

이 권리는 경찰이나 연방 수사관이 범죄용의자를 체포할 때는 반드시 (1)피고에게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와 (2)피고가 발언을 하게 되면 재판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3)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 만약 변호인을 선임할 돈이 없다면, 국선변호인의 변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고지해야 된다는 원칙이다. 쉽게 말하면 자신의 이름이나 신분, 거주지, 비자 소지 여부 등의 신상정보 외에는 경찰의 어떠한 질문에도 묵비권을 행사함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얘기다. 체포영장 없이는 더 이상 경찰은 어떠한 질문도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경우 당황하지 말고 공손히 의사표시를 하되 경찰관의 이름표를 기억해 두거나 소속, 연락처를 정식으로 물어볼 수 있다. 이 원칙은 길거리 같은 공공장소나 사무실, 집에서든 장소에 관계없이 어디에서나 똑같이 적용된다.

 

무죄추정의 원칙

설사 체포가 돼 재판절차가 시작되더라도 피고에 대한 혐의는 (1)변호사와 검찰 간의 협상을 통해 죄목과 처벌수위에 관한 쌍방 간의 합의가 있어 재판을 거치지 않고 피고가 유죄를 인정하거나, (2)협상이 실패할 경우 재판에서 배심원들의 유죄평결이 내려질 때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거해 죄인으로 취급받지 않는다. 혐의가 중범일 경우에는 검찰은 대배심 기소 (Grand Jury Indictment)라는 절차를 통과해야만 사건을 진행시킬 수 있게 된다. 형사법상 대배심 기소라는 선결 조건은 중죄 사건에서 검·경의 무분별하거나 악의에 찬 공권력 남용으로부터 무고한 시민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안전장치인데 한국에선 이를 유죄평결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유죄 대 무죄

많은 사람들이 유·무죄를 단순히 죄가 있음과 없음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1994년에 발생한 유명한 흑인 전 미식축구 선수 O.J. 심슨(Simpson) 사건의 무죄평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무죄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사건 당시 자신의 처와 남자친구를 살해한 용의자로 심슨이 체포됐으나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고, 진범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건은 사건의 정황이나 검찰이 입수한 여러 증거 자료로 볼 때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심슨의 유죄를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핵심 증거물이라던 범행에서 끼었다는 심슨의 장갑은 되레 무죄 평결의 계기가 됐다. 장갑이 너무 작아 심슨의 엄지와 검지가 아예 들어가지도 않은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알아야 될 사실은 미국 검찰이 피고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헌법에서 요구하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뛰어넘는(Beyond a Reasonable Doubt)’ 높은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요구되는 합리적 의심의 산술적 정의는 오래 전 연방 대법원판사들이 응답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소 90% 이상의 증거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죄라는 의미는 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고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뛰어넘을 수 있는 증거를 배심원들에게 제시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12명의 배심원 중 9명이 흑인이었는데 결국 이들 중 일부는 검찰이 제시한 억지 장갑(?)을 포함한 여러 증거물들 전반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갖게 됐고, 평소 인종 차별적 언사를 남발하던 백인 형사가 이 사건의 현장에 투입된 점 등 경찰수사의 적법성과 신뢰성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 것이 무죄판결로 이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선 검찰에게 항소 기회가 주어지지만 인권을 중시하는 영미법 체계에서는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으면 검찰은 더 이상 항소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심슨은 무죄로 확정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이후 살인피해자 가족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심슨이 패소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배심원들은 심슨이 가해자로서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이유는 민사사건에서 원고에게 요구되는 증명부담의 높이는 단지 증거의 우월성(Preponderance of Evidence)’ 이란 기준으로, 원고는 확률적으로 50%이상만 피고의 책임 내지 귀책사유를 입증하면 배심원은 피고에게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위에 서술한 내용이 다소 개념적인 요소는 있으나 본인이 뉴욕 총영사관 자문 변호사로서 접하게 된 실제 사례들을 회고해볼 때 한국 기업들에게 도움이 될 듯해 정리해봤다.

정홍균 변호사는 미국 뉴욕에서 지난 25년간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과 관련된 다양한 형사·민사소송을 수행해왔다. 정 변호사는 뉴욕 브루클린 검찰청 검사, 뉴욕 총영사관·KOTRA 자문변호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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