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계의 유튜브 크록스가 헤이두드를 인수했다. 크록스는 전 세계 120개국에서 판매되며 누적 판매량이 3억 켤레가 넘어가는 글로벌 신발 브랜드다. 헤이두드는 2008년 이탈리아에서 창업한 신발 브랜드다. 가볍고 편하기는 크록스 못지 않다. 지금 아마존에서 제일 잘 팔리는 브랜드다. 연간 글로벌 판매량이 1000만 켤레가 넘는다. 지난 12월 크록스의 헤이두드 인수는 글로벌 슈즈 비즈니스에서 벌어진 초대형 인수합병이었다. 크록스의 헤이두드 인수가는 무려 3조원이 넘었다.

당시 크록스 주가는 10% 넘게 폭락했다. 원래 대형인수 건이 터지면 인수주체가 되는 기업의 주가는 하락하기 마련이다. 투자자들은 기업의 현금이 인수대금으로 빠져나가는 걸 싫어한다. 재무제표상으론 당연히 주당순이익이 낮아지고 그게 주가를 하락시키는 악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크록스는 헤이두드 인수를 밀어붙였다.

크록스가 신발계의 유튜브라면 헤이두드는 틱톡이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Z세대 소비자들을 틱톡한테 빼앗기면서 고전하고 있듯이 1020 신발 소비자들도 크록스보단 헤이두드에 열광하고 있다. 최근 구글 트렌드 검색량만 놓고 봐도 1020 사이에선 크록스보단 헤이두드가 월등하다.

크록스한테 헤이두드는 미래 시장을 빼앗아갈 가장 두려운 잠재적 경쟁자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경쟁자를 돈을 주고 사버리는 것이다. 페이스북이 과거 인스타그램을 인수했던 것과 같다. 어도비가 피그마를 인수했던 것과도 같다. 크록스도 헤이두드는 그렇게 인수했다.

 

특유의 시그니처 디자인 완성

2002년 크록스의 창업자 3인방이 새로운 신발을 만든 건 물에서도 뭍에서도 잘 다니는 신발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크록스를 창업한 린든 핸슨, 스콧 시먼스, 조지 베데커는 콜로라도 볼더 출신의 고향 친구들이다. 세 사람은 모두 파도에 미친 서퍼들이었다. 사실 콜로라도엔 바다가 없다. 산맥뿐이다. 그래서 세 사람은 고향을 떠나 플로리다로 놀러와서 살다시피했다. 미국 남부의 플로리다는 서퍼들의 천국이다. 뉴 서머나 비치나 코코아 비치는 큰 파도를 좇는 서퍼들의 파라다이스다.

세 친구들은 서핑을 즐기다 신발이 너무 불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물이 가득하고 모래는 더 가득한 신발 탓에 매번 서핑을 즐기기가 어려웠다. 불편함은 발명의 어머니다. 고무 재질의 신발등에 구멍이 13개가 나 있는 크록스 특유의 시그너처 디자인이 이때 완성됐다. 크록스 브랜드 중에서 클로그라고 불리는 가장 대표적인 제품이다.

서핑 절친’3인방 창업 합작

전문경영인 선택 신의 한수

공정혁신 극대화, 흑자 전환

하이힐 손대다 적자로 전락

그레그 리밧 구원투수등단

서퍼는 찰나의 파도를 쫓는 사람들이다. 파도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서퍼들은 흐름을 타는 사람들이지 흐름을 만드는 사람들은 아니다. 서퍼의 기질과 사업가적 기질은 다르다는 말이다.

크록스 3인방도 자신들의 기질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세 사람한텐 크록스를 사업화할 전략이나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들 대신 크록스를 사업화할 사람을 곧바로 찾기 시작했다. 크록스의 진정한 파운더라고 불리는 론 스나이더다.

론 스나이더는 플렌트로닉스의 해외 사업 담당으로 일하고 있었다. 플렌트로닉스는 애플 에어팟이나 삼성 갤럭시 버즈가 히트를 치기 전까지만 해도 무선이어폰 시장의 최강자였던 가전제품 회사다. 귀에 꽂으면 뺨까지 내려오는 마이크가 특징이었다.

론 스나이더는 2004년 크록스에 경영 컨설턴트 자격으로 합류했다. 2005년 아예 CEO가 됐다. 크록스가 이렇게 처음부터 전문 경영진 체제를 선택한 건 신의 한 수였다.

크록스는 첫 번째 모델이 판매 3일만에 1000켤레가 완판될 정도로 잘 나갔다. B2C 시장에서 대박이 나려면 제품이 출시됐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소비자가 반응을 해줘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제품이 틀렸거나 마케팅이 틀렸거나 아니면 둘 다 틀린 경우다.

론 스나이더는 크록스가 대박이 난 원인을 정확하게 간파했다. 바로 소재였다. 크록스는 폴리우레탄계 합성수지로 만든다. 쉽게 말해 고무신이다. 소비자 체온에 따라 신발 모양이 조금씩 변해서 신을수록 착화감이 개선된다. 체중도 분산시켜서 근육 피로도 역시 60% 이상 감소시켜준다.

그럼에도 무게는 0.17킬로그램 밖에 안 된다. 론 스나이더는 크록스의 원료 제조사인 폼 크리에이션부터 인수했다. 소재부터 독점한 것이다. 론 스나이더는 각종 특허를 출원해서 특허 장벽까지 쌓았다. 소재의 이름도 크록스라이트라고 명명했다.

론 스나이더는 SCM(Supply Chain Management) 전문가였다. 원재료부터 생산과 판매의 전체 과정을 꿰뚫고 있었다. 크록스의 사업적 경쟁력은 공정이 단순해서 생산비용이 적게 든다는 데 있다는 걸 간파했다. 보통의 신발은 인솔과 아웃솔로 구분된다. 인솔은 사람 발에 닿는 밑창이다. 아웃솔은 지면에 닿는 바닥이다. 보통은 인솔과 아웃솔을 따로 따로 제조해서 조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억지로 멋부리기 지양하고

구멍에 매듭장식으로 대박

2030소비자들과 찰떡궁합

팬데믹 속 집콕, 오히려 호재

하이패션 브랜드와도 협업

반면 크록스는 크록스라이트 원재료를 기계에 넣어서 찍어내는 사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조립 과정이 없다. 봉제도 접착도 없다. 크록스의 본질은 신발 공정 혁신이었다. 론 스나이더는 이걸 극대화했다. 덕분에 창업 4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다. 2002년 창업한 크록스는 2006년 나스닥 상장에 조기 성공한다.

 

문어발 브랜드 확장 탓 적자 반전

나스닥 상장은 대박이었지만 동시에 독이 됐다. 상장 직후 주가를 지키려고 론 스나이더는 무리를 하기 시작한다. 바이트 풋웨어, 오션 마인디드, 엑소 이탈리아처럼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온갖 패션 브랜드들을 인수하기 시작한다. 상장 직후 주가를 키우는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M&A. 일종의 치트키인 셈이다.

매출은 커진다. 대신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 있다. 크록스는 급기야 하이힐에까지 손을 댄다. 서퍼들의 고무신이 하이힐 시장에까지 진출한 것이다. 결국 크록스는 너무 사업 전선을 벌리고 수요 예측에도 실패하면서 적자투성이로 전락한다. 여전히 크록스의 대표 신발인 클로그는 인기몰이 중이었는데도 말이다. 2013년 크록스는 연간 매출 12억달러를 달성한다. 영업이익은 1000만달러에 불과했다. 여기까지가 론 스나이더의 한계였다.

크록스의 새로운 구원투수는 2015CEO로 취임한 그레그 리밧이었다. 그레그 리밧 CEO가 내세운 건 백투베이직이었다. 제품 종류를 절반 이하로 줄였다. 유통 점포도 정리했다. 마케팅 조직도 통폐합했다. 소비자들이 크록스한테 기대하는 건 하이힐이 아니라 편안한 신발이라는걸 리밧은 알고 있었다.

리밧의 할아버지는 구두 인솔을 제작하는 기술자였다. 리밧 자신은 MBA를 졸업한 이후 10년 넘게 신발 관련 회사에서만 일했다. 크록스 직전엔 기능성 속옷 전문 회사인 스팽스의 CEO였지만 사실 리밧이야말로 신발 전문 경영인이었다. 그래서 크록스의 베이직을 꿰뚫어볼 수 있었다.

리밧은 지비츠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지비츠는 크록스의 구멍에다 매다는 단추나 매듭 같은 장식을 뜻한다. 미국인 슈멜저 부부가 아이들한테 크록스를 신겨주다 이걸 꾸며주는 액세서리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슈멜저 부부는 아예 크록스 전용 액세서리 회사를 창업했다. 크록스가 이 회사를 사들였다. 지비츠는 인브랜딩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크록스라는 브랜드 안에서 지비츠라는 새로운 브랜드가 생겨난 것이다. 나중엔 지비츠 때문에 크록스가 팔려나갈 정도가 됐다.

리밧은 이것이 새로운 세대의 소비자들과 찰떡궁합이라는 걸 깨달았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려는 2030 소비자들에게 신발 꾸미기는 단순한 즐거움 이상이었다. 마치 다이어리를 꾸미는 이른바 다꾸에 열광하는 학생들처럼 말이다. 지비츠와 결합된 크록스는 커스터마이징의 대명사가 됐다.

소비자는 지비츠 덕분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신발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게다가 크록스 자체는 못생겼다는 것도 오히려 장점이 됐다. 미국의 유명 방송 앵커는 크록스가 너무 투박하다면서 유치원생들이나 신고 다닐 신발이라고 혹평했다.

실제로 크록스는 사출 방식으로 제작되는 고무신인 탓이 기능성에 집중한 투박한 모습이다. 리밧은 이걸 아예 정체성으로 밀고 나갔다. 억지로 멋을 부리기보단 못생긴 크록스를 지비츠로 예쁘게 꾸며서 나만의 제품을 만드는 마케팅을 전개했다. 크록스의 마케팅 문구는 이랬다.

“Come as you are.”

 

셀럽 마케팅도 인기 한몫

덕분에 크록스는 나와 개성을 중시하는 2030 세대들한테 가장 사랑받는 신발이 됐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그리고 유튜브가 성장한 이유가 같았다. 당신 자신이 되게 해주는 신발이야말로 사랑 받는 제품일 수밖에 없다. 여기엔 셀럽과 인플루언서 마케팅도 한몫 했다. 2015년 윌리엄 왕세자와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비의 아들 조지 왕자가 크록스를 신고 있는 모습이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잡혔다.

이때부터 크록스는 유명인들의 신발로 등극했다. 저스틴 비버와 제니가 크록스를 신고 인스타그램을 하기 시작했다. 하이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도 시작됐다. 패션계에서 어글리 패션 트렌드를 만들어낸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즈바살리아가 크록스와 협업을 했다. 하이 패션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다.

역시나 헤이두드 인수는 크록스 주가에 단기적인 악재일 뿐이었다. 최근 발표된 20224분기 실적에서 크록스는 이름처럼 수륙양용성을 보여줬다. 매출과 주당순이익이 모두 월가전망치를 상회했다. 리세션이 우려되고 소비자들이 씀씀이를 줄이는 상황이지만 크록스는 저렴한 가격 덕분에 오히려 수요가 늘었다.

인플레이션이 한창일 때도 크록스는 강한 수요 덕분에 판매가 증가했었다. 코로나 판데믹도 사실 크록스한텐 호재였다. 집콕 생활자들이 편안한 크록스를 선호한 덕분이었다. 크록스는 팬데믹과 인플레이션과 리세션에 모두에 강하다. 크록스는 크로커다일(악어)의 줄임말이다. 악어는 물 안에서도 밖에서 강하다. 크록스의 힘이다.

- 신기주 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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