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서강대학교 경영학과 명예교수)
임채운(서강대학교 경영학과 명예교수)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은 6836억달러, 중소기업 수출은 1175억달러로 각각 역대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이처럼 수출 실적은 사상 최대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수출기업은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무역협회가 지난해 12월 수출기업 400개사를 대상으로 금융애로 실태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업체의 42%이자 부담액이 영업이익과 비슷하거나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인상 추세로 인해 수출기업의 이자비용 부담이 커진 것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수출기업의 이익창출력이 미흡하다는 사실은 다른 통계로도 확인된다.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하기 이전인 2019년 기준으로 통계청의 기업활동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조사대상 50인 이상 제조기업 중 한계기업은 476개인데 이중 수출기업은 359개로 75%에 달했다.

수출로 성장해온 한국에서 수출기업이 한계기업이라는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수출을 지상과제로 간주하는 우리나라에서 많은 기업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무리하게 수출시장에 뛰어들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경제학자들은 수출 한계기업들은 거시적 경제 관점에서 수출 총량을 늘리는 역할을 하지만 미시적 산업 관점에서는 퇴출돼야할 좀비기업들이라고까지 평한다.

수출물량 늘릴때 리스크 급증

단기지원으론 위기극복 한계

파격우대해야 데스밸리 탈출

왜 수출기업이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본질적으로 수출은 고비용·고위험·저수익의 모험사업이기 때문이다. 수출에는 품질인증, 물류, 보험, 환전, 통관 등의 수많은 비용이 추가되며, 이에 더해 환율변동, 인허가 규제, 외교적 분쟁과 같은 리스크도 감당해야 한다. 수출시장은 가격경쟁이 치열해 수출가격은 내수가격보다 낮아진다. 수출에 따른 비용과 리스크는 증가하지만, 가격은 하락하고 마진이 작아지니 수출채산성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초기에 소량으로 수출해 해외시장을 타진하는 단계에서는 큰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수출물량을 늘릴 때 비용과 리스크가 급증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 봉착한다. 벤처기업이 양산을 위한 투자 과정에서 자금난에 직면하는 죽음의 계곡이 수출성장 단계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수출 적자를 흡수하거나 다른 사업을 통해 보전할 여력이 없다. 수출물량을 늘리다가 영업이익이 감소하면 곧바로 한계기업으로 전락한다.

외화내빈의 질곡에 허덕이는 수출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지원은 단편적이며 단기적이다. 최근 중소기업의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정부는 중소기업의 수출 비중을 높이기 위해 올해 수출지원 9개 사업에 2292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여전히 총량 중심의 수출지원 정책이며 수출기업에게 일회성 지원만 제공할 따름이다.

중소기업 수출증대는 수출성장을 가로막는 죽음의 계곡을 얼마나 잘 건너도록 지원해 주느냐에 달려 있다. 수출 대기업도 한때는 출혈 수출로 고전했지만 이를 정부 지원 덕분에 극복해 오늘날의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수출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을 무사히 통과하려면 파격적 지원이 필요하다. 단편적 비용 지원이나 단기 금융만으로는 중소기업의 고질적인 수출 적자를 해소해 줄 수 없다. 수출금융을 단기융자에서 장기융자로 전환해 안정적으로 유동성을 보충해 줘야 한다. 정책금융, 신용보증, 공공조달, R&D지원, 국책과제 등에서도 수출성장 중소기업을 우대해 수출 적자를 보전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수출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을 건너야 좀비기업이라는 오명을 벗고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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