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사 화이자( Pfizer)가 암 치료제 개발사 시젠(Seagen)을 430억달러(약 56조원)에 인수한다고 지난 13일(현지 시각) 밝혔다. 이번 인수는 그동안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에 집중했던 화이자가 주류 제약사로 돌아가는 길을 닦은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평가했다.

화이자는 코로나19 백신 수요 감소에 대비해 새 수익원을 찾기 위해 시젠을 인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30년까지 특허 만료에 따라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170억달러가량의 매출을 상쇄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화이자는 시젠 주식을 전 거래일 종가보다 3분의 1가량 높은 가격인 주당 229달러에 매수하기로 했다. 양사 합병 절차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마무리될 전망이다.

미국 워싱턴에 본사를 둔 시젠은 생명공학 신약 개발업체다. 종양세포의 표면에 결합해 건강한 조직을 보존하면서 암 치료제를 전달하는 ‘항체-약물 접합체(ADCs)’ 타입 치료제 개발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현재 FDA 승인돼 시판되고 있는 ADCs 12개 중 4개가 시젠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시젠의 포트폴리오에는 고형암 및 혈액암 적응증에 대해 동종 계열 최초 또는 최고 의약제품 4개가 포함돼 있다.

화이자는 시젠을 인수해 초기 단계 암 치료 제품군을 크게 강화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화이자 회장 겸 CEO인 알버트 부를라 박사는 “시젠의 항체-약물 접합체(ADCs) 기술과 화이자의 역량 및 전문성을 결합해 차세대 암 치료 혁신을 가속화하고 환자에게 새로운 솔루션을 제공하고자 한다”며 “이번 인수는 이 중요한 분야에서 화이자의 입지를 강화함과 동시에 장단기 재무 목표 달성에 의미 있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화이자는 시젠이 가진 풍부한 파이프라인을 기반으로 2030년까지 연간 100억달러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으로 화이자는 시젠이 가진 ADCs 기술과 화이자의 능력 및 전문지식을 결합해 차세대 암 치료제 개발을 가속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행보에 따라 화이자는 2030년까지 비코로나바이러스 제품군에서 700~84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목표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됐다.

항암제 시장은 지난해 1930억달러(한화 243조9906억원)를 기록했으며 연평균 13~16% 증가세를 기록, 2027년에는 3770억달러(한화 476조6034억원)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조사기관 아이큐비아는 향후 5년간 100개 이상의 항암신약이 출시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ADCs 항암제가 주목받으면서 많은 제약사가 앞다퉈 개발 중이다. 종근당에 따르면 글로벌 ADCs 항암제시장은 2022년 약 8조원 규모였으며 연평균 22%의 성장률을 기록, 2026년에는 약 17조9000억원 규모의 성장이 예측된다. 세계 추세에 발맞춰 국내기업도 ADC 개발이 한창이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가 연 매출 10억달러 이상의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확보하기 위한 바이오업체 인수전에 나서면서 국내 업계도 이를 눈여겨보며 합병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화이자, 머크, BMS 등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가 자사가 보유했던 블록버스터급 의약품 특허 만료에 놓여있다. 특허가 만료될 경우 당장 매출 손실이 크다. 하지만 신약 개발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들기 때문에 최근 바이오기업과의 인수합병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확보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는 국내 바이오업계에게는 희소식이 될 수 있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임상을 추진할 예산이 없던 중소기업들에게 동아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회를 잡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국내 기업들이 나서야 할 때다.

-하제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