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금리 줄인상이 파산 부채질
리먼브라더스와 다른 해결책 선택

美정부, SVB예금 전액 보증 약속
바이든 대통령도 나서 공포 진화

블랙먼데이 없이 은행주만 폭락
‘연준금리 다시 낮추나’귀추 주목

실리콘밸리은행(SVB)은 리만 브라더스가 아니다. 지난 310일 금요일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했을 때 실리콘밸리 내부의 시각은 이랬다. 실리콘밸리은행을 시스템 위기의 화근으로 의심하는 워싱턴 금융 당국이나 금융 위기의 전조로 두려워하는 뉴욕 월스트리트 투자자들과는 전혀 다른 입장이었다.

실리콘밸리은행은 역할 측면에서만 보자면 실리콘밸리의 산업은행이다. 산업은행의 주요 고객이 기업이듯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주요 고객이다. 투자 유치에 성공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투자금을 예치해놓는 주거래 은행이다. 이렇게 기업금융을 주된 무기로 하는 은행인 탓에 예금자도 많지 않다. 37000여명이 불과하다. 물론 대부분 실리콘밸리 주요 스타트업들의 C레벨들이다.

지난 1983년에 설립된 실리콘밸리은행은 아직은 은행 문턱을 두드리기 어려운 스타트업들에게 각종 대출 서비스를 해줬다. 스타트업들에 대한 대출은 리스크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은행은 실리콘밸리 VC들에게 지분투자나 자금 대출을 해준 다음 관련 스타트업들에 대한 기업 정보를 제공 받았다.

투자 대상인 스타트업들에 대한 자체적인 신용분석력을 키워서 리스크를 헷지한 것이다. 실리콘밸리은행이 지분 투자한 841개 스타트업 가운데 38.6%가 인수합병되거나 상장됐다. 투자금을 성공적으로 회수했다. 실리콘밸리의 평균 투자 회수율이 10% 남짓이다. 미국 전체 테크와 바이오 섹터 스타트업의 절반 이상이 실리콘밸리 은행의 고객이다. 실리콘밸리은행은 실리콘밸리의 돈줄인 셈이다.

 

SVB 구하기 나선 실리콘밸리

실리콘밸리은행이 갑작스럽게 파산하자 실리콘밸리 스스로 실리콘밸리 구하기에 나선 이유다. 실리콘밸리의 혁신 사관학교로 통하는 Y컴비네이터는 앞장서서 미국 금융 당국에 완전한 예금자 보호를 요청했다. 원래 예금자 보호 상한선은 25만달러다. 한화로 3억원 남짓이다.

스타트업들이 VC로부터 받은 투자금을 예치해뒀는데 3억원 이하 예금이 있을 리가 없다. 개리 탄 Y컴비네이터 CEO“1만개 이상 스타트업이 급여를 주지 못하거나 무급 휴직 심지어 직장 폐쇄될 수 있는 위기라며 미국 금융 당국에 실리콘밸리 은행에 한해선 완전한 예금자 보호인 백스톱을 거듭 요청했다.

만일 이번 사태를 다른 은행 파산과 똑같이 처리한다면 스타트업 멸종 위기가 찾아오고 혁신이 10년 이상 후퇴하고 결국 미래의 구글과 페이스북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미국 금융 당국은 예외적으로 실리콘밸리은행 예금은 무제한적으로 보장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실리콘밸리 주요 VC들도 직접 구제금융에 나섰다. 유명 VC인 코슬라벤처스는 100여개 스타트업들에게 긴급사업자금을 융통해주는 논의를 시작했다. 그린옥스 캐피탈 파트너스, 멘로 벤처스, 로어카본 캐피탈도 동참했다.

특히 탄탄한 고객을 확보해놓고 유동성 위기 때문에 파산할 수도 있는 SaaS 스타트업들한테 지원이 집중됐다. 200개 이상 스타트업이 100만달러 이상의 실리콘밸리 자체 구제금융을 받았다. 실리콘밸리은행은 실책을 저질렀을지 모르지만 실리콘밸리은행을 믿고 돈을 맡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은 잘못이 없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가 집단 인출 조장

게다가 지금 실리콘밸리는 돈가뭄 상황이다. 20224분기 기준 VC거래 규모는 362억달러에 불과하다. 20214분기 939억달러에 달했던 VC투자가 반토막이 난 것이다.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은 자칫 실리콘밸리에 돈맥경화를 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실리콘밸리은행 사태와 리만 브라더스가 사태가 다른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만 브라더스 사태는 월스트리트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가 원인이었다.

월스트리트 IB들은 비우량 주택저당증권인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유동화시켜서 투자 가능한 우량 채권으로 둔갑시켰다.

이걸 다시 선량한 투자자들한테 떠넘겨서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결국 무너진 건 리만 브라더스와 베어스턴스였지만 살아남은 골드만삭스와 JP모건도 도덕적 해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반면 실리콘밸리은행 사태에서 실리콘밸리는 피해자일 뿐이다.

구태여 무리한 점을 찾자면 스마트폰 뱅크런이다. 실리콘밸리은행 사태를 악화시킨 건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이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은 실리콘밸리은행에서 9일 동안 420억달러를 인출해갔다. 한화로 55조원에 달한다. 아무리 뱅크런이 일어나더라도 은행 단일 지점에서 55조원의 현금이 인출되는건 쉽지 않다. 스마트폰 뱅킹 탓에 가능한 일이었다.

디지털 뱅킹의 발달로 뱅크런의 규모와 속도가 전대미문이 된 것이다. 여기에 소셜미디어를 통한 공포 확산의 속도 역시 전대미문이었다. 실리콘밸리은행에 위기 조짐이 나타나자 조밀하게 연결된 실리콘밸리에선 VC에서 스타트업으로 뱅크런 압력이 높아졌다. 스타트업들이 스마트폰 뱅크런을 벌인 건 당장 투자금을 이체하라는 VC들의 요구가 빗발쳤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실리콘밸리 은행 자체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아무 문제도 없을 수 있었다. 실리콘밸리는 잘못이 없지만 실리콘밸리은행에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라는 측면에선 리만 브라더스와 닮은꼴이다. 실리콘밸리은행은 스타트업에 대한 정교한 신용평가모델로 승승장구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예금잔고도 2000억달러에 달했다. 원래 실리콘밸리은행은 이 돈을 다시 스타트업들에 대출해주고 이자수익을 거두거나 투자해주고 지분수익을 얻었다.

그런데 2022년 상반기부터 실리콘밸리 생태계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미국 연준이 금리인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투자도 줄었지만 스타트업들의 대출 수요도 줄었다.

이때 실리콘밸리은행은 계속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기 위해 실리콘밸리은행답지 않은 선택을 했다. 미국 장기 국채와 모기지 채권 같은 만기보유증권에 1000억달러 가까이를 투자한 것이다. 이건 월스트리트 은행들의 전형적인 투자 방식이었다. 문제는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이 공격적이고 장기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이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점의 보안요원들이 예금주들을 입장시키고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점의 보안요원들이 예금주들을 입장시키고 있다.

 

부실한 내부 통제가 위기 초래

실리콘밸리은행 입장에선 예금자들에게 줄 이자부담을 늘고 보유한 국채와 채권의 가치는 하락한 꼴이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1년 가까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재무제표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만기보유증권은 해당 자산의 만기가 도래하지 않으면 자산 손실이 대차대조표에 기록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보이지 않는 시한폭탄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잠재적 위험을 평가하고 대비할 최고리스크책임자는 무려 8개월 이상 공석이었다.

무엇보다 실리콘밸리은행의 CEO 그렉 베커는 이런 상황을 방치하다시피 했다. 오히려 미국 금융당국의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로비에 집중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도드-프랭크법의 예외 대상이 되기 위해서였다.

도드-프랭크법 규제에 입각했다면 실리콘밸리은행 같은 시한폭탄 리스크는 미연에 방지될 수 있었다. 그렉 베커 CEO의 로비에 따라 규제 대상 은행의 자산 기준이 500억달러에서 2500억달러로 상향 조정된 게 화근이었다. 실리콘밸리은행의 자산 규모가 딱 2000억달러 남짓이다. 누가 봐도 로비에 의한 맞춤 규제 완화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실리콘밸리은행 사태는 리만 브라더스 사태와 다르지만 리만 브라더스 사태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이유다.

2008년 금융위기 시절 각각 연준 부의장과 연준 위원이었던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이번 실리콘밸리은행 사태를 예의주시했다. 시한폭탄이 터지고 스마트 뱅크런이 일어나자 지체 없이 은행 파산을 선언해버렸다. 실리콘밸리 은행 사태가 미국 금융 시스템 전체로 전염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실리콘밸리은행 사태가 실리콘밸리 생태계로 옮겨붙지 않게 내부 방화벽도 설치했다. JP모건 등을 상대로 한 실리콘밸리은행 매각 협상에 진전이 없자 바이든 대통령까지 동원해서 공포 진화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미국 금융 당국의 실리콘밸리은행 사태 진압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우려됐던 블랙먼데이도 없었다. 은행주 폭락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위기는 끝난 게 아니다. 근본적으로 실리콘밸리은행 사태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과 싸우는 연준의 장기적인 금리 인상이 불러온 여파인 탓이다. 현재 금융 시스템은 저금리 상황에서 장기 고금리 상황에 새롭게 적응해나가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316일에는 스위스 은행 크레딧스위스에서 문제가 터졌다. 사실 크레딧스위스는 2021년 아케고스 파산 사태로 큰 손실을 본 이후 계속 흔들려왔다.

최근 연례보고서에서 “2021년과 2022년 회계연도 내부 통제에서 중대한 약점이 발견됐다고 밝히면서 주가가 30%나 폭락했다. 급기야 크레딧스위스의 최대주주인 사우디국립은행도 추가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렸다. 결국 스위스 금융당국까지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어쩌면 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지난 10년 이상 쉽게 돈을 버는 저금리 시대에 형성된 금융 시스템의 균열이 실리콘밸리은행 이상의 충격으로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래리 핑크는 연례서한에서 이렇게 전망했다. “금융 시스템은 느리지만 계속되는 위기를 겪을 것이다. 그동안 은행들이 쉽게 돈을 벌었던 것에 대한 대가를 이제 지불하는 것이다. 도미노가 무너지기 시작했을까?”

신기주 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