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법령, 절차법적 성격 강해
계약담당자 ‘획일적 답변’일쑤
기업인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공공 조달 대표 플랫폼인 나라장터 질의응답 사이트에는 조달기업들의 수많은 질문이 등록돼 있다. 입찰보증금부터 입찰의 유무효, 설계 변경과 검사검수, 지체상금과 계약해지 등등 방대한 내용이다. 질문의 형식은 다양하지만 대강의 줄기는 ‘규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해당 규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라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조달기업들이 등록한 질문의 다양성에 비해 조달기관의 답변은 대체로 획일적이다. 답변의 내용을 재구성해보면 대략 이렇다. 먼저 첫 문장에서 ‘관련 법규는 이렇게 돼 있다’라는 규정 명시로 시작된다. 이어지는 답변에서는 ‘개개의 사안은 해당 계약 담당자가 계약문서, 관련 법령과 사업의 성격을 고려해 결정한 것이다’라는 안내가 뒤따른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는 ‘이 답변은 법적인 효력을 갖지 않으며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법령해석의 제약이 있음을 이해해 달라’라고 마무리된다.

다시말해 ‘질문한 내용은 규정과 계약조건이 이렇지만, 구체적인 사안은 계약 담당자가 결정할 사항이고, 답변은 법적 효력이 없으니 참고만 하기 바란다’는 얘기다. 질문한 기업인의 간절함에 비해 참 건조한 답변이다.  

국가계약법 등 조달 법령의 대부분은 절차법적인 성격이 강하다. 즉 법령이 계약 담당자가 지켜야 할 절차와 기준으로 내부 규정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규정 자체로 계약 상대자와의 계약조건을 직접 구속할 수 없다. 또한 계약 상대자가 관련 규정을 들어 계약의 내용을 변경하거나 효력을 주장할 수 없다. 이는 조달 계약 법규의 특성상 법령에 위배된 계약이더라도 원인무효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외적으로 유효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조달 관련 질의응답에서 ‘계약 담당자가 관련 규정, 계약문서와 사업의 성격 등을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라는 획일적인 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공공 조달 계약문서는 오랜 기간 개정과 수정을 거치면서 불평등한 조항을 개선하고, 산업계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반영해 왔다. 작게는 수백만 원에서 크게는 수백억 원에 이르는 조달사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계약조건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공공 입찰에 참여하는 것은 이러한 공신력을 믿기 때문이다.

물론 극히 일부 발주기관에서 입찰 조건이나 계약조건을 수정하거나 왜곡 적용해 법령의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도 있지만, 판례에 의하면 이러한 불평등 계약조건은 원천 무효이다. 

중소기업 대표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얘기가 있다. ‘왜 공공기관은 관련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지키지 않는지?’라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왜 공공기관은 계약조건에 명시된 내용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지?’라는 하소연이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면 규정을 잘못 적용했다든지, 관련이 없는 규정임에도 연관을 시킨다든지 하는 오류가 보인다. 

공공 조달 관련 법과 규정은 매우 방대하고, 경제 상황이나 산업계의 요청에 따라 한 해에도 몇 번씩 개정되기도 한다. 같은 용어라도 규정에 따라 그 적용 범위나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고,  특정 기관의 규정이 모든 공공기관에 적용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오랫동안 조달 시장 참여 경험이 있다 해도 경영에 바쁜 기업인들이 공공 조달의 계약조건이나 세세한 규정의 의미나 배경, 적용 범위까지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

하지만 공공 조달계약에서 ‘계약 담당자’들은 계약의 주체이며 규정을 적용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최일선에 있다. 그러니 절차와 기준에 하자가 없다 하더라도 일선의 ‘계약 담당자’들은 기업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역지사지의 자세로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다면 플랫폼 게시판에 불필요한 질의응답도 줄고, 분쟁이나 갈등이 아닌 신뢰 기반에서 효율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장경순
한림대학교 글로벌협력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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