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중대재해처벌법 재고 필요
영세기업 30%는 위험성평가 미실시
대기업과 협업이 안전제고 지름길

매년 4월 28일은 ‘세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매년 수많은 근로자가 산업재해로 인해 사망하고 있는 점을 기리고 산업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됐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매년 일터에서 2400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고 5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과로사로 목숨을 잃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음에도 여전히 중대재해는 반복되고 있다. 관련 통계를 보면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중대재해 사망자는 지난해 256명으로 법 시행 전인 2021년 248명에 대해 오히려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연출됐다. 그럼에도 기소된 기업은 14곳에 불과하다. 기준이 되는 안전 책임에 대한 규정이 모호한 영향이다.

실제 중대재해법은 중대 산업재해로 1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이 발생할 경우,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물리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현재까지 처벌받은 사업주는 전무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꽤 지났지만, 법조문이 애매모호하고 처벌 중심이어서 현장의 안전 불감증 개선에 도움이 안 되는 등 그 효과에 의문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며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란에도 법안의 개정은 진행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을 맞아 정부가 법률·시행령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논의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전히 답보상태다.

이 가운데 내년 1월 27일부터 상시근로자가 5인 이상 50인 미만이거나 공사금액이 50억원 미만인 경우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바가 있을지 미지수라는 게 산업계 안팎의 우려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여전히 산재에 대한 인식이 미미한 상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달 발표한 국내 기업 359개사를 대상으로 한 ‘위험성평가 실시 현황 및 제도개선 방향 실태조사’ 결과 50인 미만 기업 3곳 중 1곳은 위험성평가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 조사대상 기업 중 50인 이상 기업은 97%가 위험성평가를 실시한다고 답했지만 50인 미만 기업은 69.9%만이 위험성평가를 실시한다고 응답했다. 50인 미만 기업 3곳 중 1곳은 여전히 산재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이 미흡한 형국이다.

위험성평가를 실시한다고 답한 기업 중 복수응답을 통해 선정된 위험성평가 실시자의 57%는 ‘안전관리자 등 안전보건관계자’가 손꼽혔다. ‘현장의 관리감독자’는 49%다. 반면 ‘해당 작업 근로자’가 위험성평가를 실시한다고 응답한 기업은 24%에 불과했다.

이는 현장 근로자의 안전에 대한 관심 부족, 평가수행으로 인한 업무 부담 증가, 참여 유인 결여 등이 원인이 돼 사업주의 노력만으로는 근로자 참여 유도에 한계가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위험성평가 제도가 산업현장의 자기 규율 예방체계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자발적 참여를 유인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울러 응답 기업의 67%가 위험성평가 제도가 산재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답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응답한 기업은 11.6%에 그쳤다. 그러나 응답 기업들은 ‘전문인력의 부족(32.5%)’과 ‘근로자의 관심과 참여 미흡(32.2%)’ 등이 위험성평가 실시에 있어 힘든 부분이라고 성토했다.

전승태 경총 산업안전팀장은 “실태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듯이 사업주의 노력만으로는 근로자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위험성평가 제도가 산업현장의 자기 규율 예방체계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위험성평가 시 근로자의 자발적 참여를 유인할 수 있는 방안을 정부가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다양한 방안 마련을 통해 중소기업의 산재 예방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전체 산재 사망사고의 80%가 중소기업에서 발생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안전보건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들 기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대기업과의 협업 사례도 적극 늘리고 있다.

이에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최근 대·중소기업 안전보건 상생협력 사업에 참여할 모기업 84곳과 협력업체 1501곳을 선정했다. 모기업으로 선정된 대기업과 협력업체는 공동으로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등 산업재해 감축 활동을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비용은 정부와 대기업이 각각 50%씩 부담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추가로 오는 11일까지 안전보건 상생 협력사업 2차 신청을 받는다.

이와 함께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은 2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중소사업장에 인공지능, 로봇공학, 정보통신, 사물인터넷 등 신기술을 활용해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스마트 안전장비 도입 비용을 지원한다. 기업당 도입 비용의 최대 80%를 3000만원까지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연재난의 경우 사람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하지만 사회재난은 예방을 통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기업 및 근로자의 자발적 노력에 정부의 지원까지 더해지며 더 이상 산업재해로 고통받는 피해자가 없길 기대해본다.

- 김진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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