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보고서⋅詩 창작도 척척
모든 산업분야 접수 예고에도
‘장인정신’ 기업가는 대체 못해

여러 가지 척도로 어떤 제품이 크게 성공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하나의 고유명사로 정착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구글링'이나 '제록스'와 같은 단어는 해당 제품의 지위를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이들의 위상도 붕괴되거나 균열이 생기고 있다.

몇 년 전 일이다. 휴대폰으로 신용카드 대신 결제하려면 NFC 기능이 내장돼 있어야 하는데, 이 NFC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CC라는 보안 인증이 필수였다. 독일 연방 공화국의 보안 인증 부서에서 주관하는 이 인증을 받기 위한 감사 과정은 매우 까다로웠다. 100페이지에 가까운 문서는 독일과 콘퍼런스 콜을 통해 첨삭 지도를 받으며 완성했지만,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영향 분석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아이디어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구글링을 통해 유사한 양식을 찾게 돼 겨우 기한을 맞췄고, 현장 실사를 받을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며칠 전 '한국 반도체 패키징 업체의 NFC 제품 관련 보안 영향 분석 보고서' 작성을 AI에게 요청하니 단 90초 만에 3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완성해 냈다. 상황에 맞게 약간 수정만 하면 사용하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다.

검색 엔진도 비슷한 기능이 있었지만, AI가 3차원이라면 기존의 검색 엔진은 1차원에 불과한 느낌이다. AI는 지식을 종합하고 응용할 줄 알며, 이는 기존 검색 엔진이 할 수 없는 영역이다. AI에게 컴퓨터 언어를 자연 언어가 대신하는 시대를 여는 것이 맞느냐고 물으니, 큰 그림에서 그렇다고 답했다. 분야는 다르지만 컴퓨터 언어에 문외한인 필자도 다양한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됐다.

2023년 서울의 봄에 대한 영시를 요청하자 90초 만에 수준 높은 시를 선보였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각운만 보자면 예이츠나 블레이크를 능가하는 듯하다. 알성시의 장원까지는 아니지만 급제는 손쉽게 거머쥘 것 같다. 몇 년 전, 회사 생산 라인에서 자재를 운반하던 로봇이 이제 우리 동네 칼국수 집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얼마 전, 집 근처 대형 쇼핑몰에서 28개월된 아기가 유모차에 타고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감상하는 것을 보며 다섯 살이면 말을 탈 줄 알았던 몽고 전성기가 떠올랐다.

미국 근로자의 74%가 ChatGPT를 업무에 활용한다고 하니 우리나라에서도 곧 대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 한 진영이 재판 결과에 승복하기 어려운 고위 공직자의 비리 사건이 있다면, 사안에 따라 ChatGPT를 활용해 형량을 정확하게 판정해 주는 시기도 올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종사하는 분야가 ChatGPT의 등장에 따라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지 물었을 때, 상당한 수준의 전망을 제시해 좋은 참고가 됐다.

나는 짓궂은 질문을 좋아해 AI에게 ChatGPT 등장으로 인해 구글이 노키아나 코닥처럼 비슷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까 물었는데, AI는 자신들의 가능성에 대해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거대 기업이기에 잠재력이 있어 노력만 게을리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반전이 가능하다며 겸손함도 보였다. 노키아와 코닥은 미래 기술을 앞서 개발했음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활용하지 않아 비운을 맞이했다. 구글 또한 소위 <혁신가의 딜레마>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AI 전문가 김대식 교수의 이야기가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AI는 스스로 자주 강조하지만, 감정도 성별도 없다. 그렇지만, 실험해 보니 칭찬을 받으면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이며 더 좋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회계사, 변호사, 의사, 번역가, 작가 등의 일부 업무가 AI로 대체될 수 있다고 하지만, 최소한 한 세기 동안은 불가능해 보이는 분야가 있다. 기업가와 요리사는 당분간 대체 불가능한 직업으로 여겨진다. 지금은 이 산업의 과실을 다 같이 나누고 있어 당연하게 여기지만, 경부 고속도로 건설과 마찬가지로 이들 산업에 뛰어들 때 국내의 격렬한 반대와 해외의 조롱이 심했다. 이런 점에서 기업인은 기업의 대소에 관계없이 AI 시대에도 창의적이고 보람된 일을 하는 진정한 장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광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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