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첫 회의가 한 공익위원에 대한 사퇴를 요구하는 노동계의 기습시위로 무산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그간 최저임금 결정과정에서 항의의 의미로 참석을 거부해 회의가 개최되지 않았던 사례는 있었지만, 과도한 피케팅과 구호 등 회의 방해에 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화와 협상이 우선돼도 최저임금 심의과정은 험난하고 현격한 입장차이로 합리적인 타협안이 나올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양대 노총의 실력행사로 회의 무산을 초래했다는 것은 매우 개탄스러운 일이다. 양대 노총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어려운 경영여건 속에서 최저임금의 향배를 마음 졸이며 지켜보고 있었을 중소기업‧소상공인 입장에서도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회의장 내 법치주의가 작동하지 않았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해야 할 회의가 시작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와 유사한 일이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저임금 결정구조에 기인한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현행 ‘노‧사‧공 위원회’ 방식은 노사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해 적정한 최저임금 수준을 정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대립적 노사 관계와 강성 노조의 투쟁적 문화가 팽배한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과연 적합한 제도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실제로도 일방의 중도 퇴장, 참석 거부로 회의가 중단되거나 연기되거나 서로의 입장만을 고수해 논의가 평행선을 이루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결국 노사의 대립으로 교착상태에 빠지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공익위원에 의해 최저임금이 결정돼 왔다. 그간 36번의 최저임금 결정 중에서 노‧사‧공의 합의에 의한 것은 7번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최근 10년 내에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보통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안을 표결로 정하기 일쑤였다. 결정기준에 기업의 지불능력 반영이나 업종별 차이를 감안한 구분 적용처럼 반드시 필요한 제안도 노동계의 반대와 소극적인 공익위원들로 인해 경영계의 외로운 외침에 그치곤 했다.

이제는 세계의 다른 국가들처럼 노사와 전문가 의견을 참고하되 결정은 정부(네덜란드, 프랑스 등)나 국회(미국, 브라질 등)가 해야 한다. 최저임금의 결정이 산업과 경제 전반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대립적일 수밖에 없는 결정체계보다는 전체를 아우르고 결정에 책임질 수 있는 정부나 국회가 결정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아울러 매년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사회적 갈등도 극심해지고 있다. 이번처럼 노동계가 최저임금이 아닌 문제를 협상테이블에 풀어놓기도 하고, 다른 문제와 결부시키면서 정치적 이득을 우선하는 경향마저도 나타난다.

최저임금의 결정주기가 1년으로 짧다보니 직전 최저임금의 효과를 제대로 분석할 수 없고, 단기적 경제상황 변화에 큰 영향을 받아 정확한 판단도 어렵다.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쳐 결정할 수 있도록 매년에서 2~3년 주기로 바꾸는 것도 고민할 시기가 됐다.

이번 일이 재발방지를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차원의 대책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원점부터 다시 검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권한과 책임이 조화를 이루고, 최저임금의 당사자인 중소기업‧소상공인이 심의의 중심이 되는 제도를 하루 빨리 만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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