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를 베껴갔다고 할 때 그 증거는 다 가해기업이 갖고 있는데, 책임 자체는 피해기업이  입증하도록 돼 있다.”(A업체 대표)

“유명무실한 부정경쟁방지법과 공정거래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을 현실적으로 개선해야 한다.”(B업체 대표)

지난 18일 재단법인 경청이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주최한 기술탈취 피해기업 기자회견에서는 억울하게 대기업에 아이디어와 기술을 빼앗긴 중소기업 대표들의 하소연이 쏟아졌다.

이 같은 기술탈취 사례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조사된 중소기업 기술유출 및 탈취 피해건수는 280건에 이르며, 피해금액은 282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침해를 당하고도 거래가 끊길까봐 신고조차 못해 기사화·사건화되지 않은 사례가 훨씬 많다는 점이다.

그간 정부도 정권을 가리지 않고 기술탈취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중소기업 기술침해에 대한 제재 강화 정책을 마련해왔다. 그러나 정부의 제도적 노력에도 대기업의 기술탈취 행위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과 손해배상제도의 낮은 실효성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손해배상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먼저 법원으로부터 기술침해라는 사실을 인정받아야 하고 두 번째로, 기술침해에 따른 손해액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기술탈취를 입증하는 것은 자료가 부족한 중소기업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어렵사리 기술침해를 인정받았더라도 고도로 전문화된 기술침해 사건에 있어 구체적 손해액을 입증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중소기업으로부터 필요한 기술자료를 확보한 뒤 거래선을 다른 업체로 돌리는 대기업의 횡포가 가장 큰 문제지만, 정부도 적절한 제도를 도입‧운용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피해기업의 실질적 손해 회복과 가해기업에 대한 징벌적 의미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형량 강화와 손해배상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먼저 형량 강화를 위한 양형기준 개선이다. 우리나라의 기술유출에 대한 처벌규정 수위는 최대 15년으로 주요국과 비교해 낮지 않으나 양형기준에 따르면 최대 3년 6월까지로 줄어든다. 그러다 보니 실제 선고형량은 법정형에 비해 매우 낮은 평균 1년에 그친다. 기술유출사범에 15년 8월의 실형을 선고한 미국의 사례를 고려해 본다면 우리나라도 양형기준을 현실화해 기술유출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위반행위의 존재에 대한 입증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행정청의 조사자료를 민사소송에 실질적으로 연계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 법원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자료 일체를 송부하도록 요구할 수 있으나, 공정위는 법원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자료제출명령제도를 개선해 명령의 대상을 행정청으로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손해배상액 현실화와 관련해 지난 3월 중기부가 중소기업 기술침해 손해액 산정 지원사업을 새로 도입한 것은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업으로 기술가치평가 전문기관이 적정 피해액을 산정한다면 법원의 현실적인 손해배상액 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기술탈취는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함께 대기업의 대표적인 갑질 횡포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기술탈취는 금전피해를 넘어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의지를 약화시키고 성장사다리를 끊어놓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현 정부가 기술탈취 관련 손해배상 제도개선을 통해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이라는 국정과제를 차질없이 이행해 상생의 시대를 앞당길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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