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 판사의 공정거래법 산책(4) 유찰방지를 위한 입찰담합의 위법성

최근 들어 공정거래법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은 기본적으로 공정거래가 지켜져야 가능하다. 이 법의 목적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경제력 집중, 부당공동행위, 불공정 거래를 규제해 자유로운 시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이 어려워 중소기업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중소기업인의 공정거래법 이해를 돕고자 대법원 재판연구관 허승 판사가 쉽게 설명하는 공정거래법 사례 시리즈를 매월 소개한다.   

판사 : 중소교육이 입찰담합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중소교육은 어떤 이유로 공정위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인가요?
중소교육 : 중소교육 외에는 이 사건 사업을 수행할 업체가 없었습니다. 이 부분은 한국대학교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수의계약으로 이 사건 사업이 진행됐어도 중소교육이 이 사건 사업을 맡았을 것입니다. 또한 저희가 낙찰받은 금액은 수의계약을 통한 경우보다 높지 않습니다. 즉 들러리 입찰은 이 사건 사업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공정위 : 부당한 주장입니다. 수의계약을 통해 진행했을 때에도 중소교육이 계약을 체결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중소교육 : 판사님, 입찰담합이 입찰에 영향을 줬다는 점은 공정위가 입증해야 하는데, 공정위는 입증을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는 한국대학교 담당자의 요구에 협조한 것뿐인데, 그에 따른 책임을 모두 저희에게만 부담시키는 것은 부당합니다.

 

입찰담합이란

입찰담합이란 국가, 공공기관, 민간 등이 발주하는 입찰에서 입찰참가자 사이에 낙찰자나 낙찰가격 등을 합의로 정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입찰담합은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공동행위 사건 가운데 발생 빈도와 과징금 부과액수 측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공정위가 적발한 담합 중 입찰담합은 2014년 이후에는 그 비중이 평균 60%를 상회하고 있고, 2017년부터는 약 70%를 넘어서고 있을 정도죠.

입찰담합은 입찰제도 및 경쟁질서를 교란하는 대표적인 반시장적 행위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특히 대규모 건설공사 등 공공분야에서 이뤄지는 입찰담합은 사업자 사이에 경쟁을 왜곡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고에 막대한 손실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현행법은 입찰담합을 한 사업자에 시정조치, 과징금 또는 부정당업자제재처분 등 다양한 행정제재를 부과하는 동시에 담합에 참여한 임직원 개인에게 형사처벌을 가하고 있죠.

공공분야 입찰담합의 발생원인

입찰은 기본적으로 가격 대비 더 좋은 급부를 제공하는 사업자를 발주처가 선정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입니다. 경쟁을 통해 참가자들이 가격을 낮추게 되는 입찰의 구조상 입찰에 참가하는 사업자들 사이에 경쟁을 하지 않기로 합의하면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적발된 입찰담합은 건수 면에서 민간입찰에 비해 조달청 등이 주도하는 공공입찰이 더 많습니다. 공공입찰에서 입찰담합이 더 빈번하게 벌어지는 원인에 대해 제한된 수의 사업자, 민간입찰 대비 높은 진입장벽, 사업자단체를 통한 잦은 회합 등을 그 이유로 들기는 하지만 아직 충분한 연구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발주처의 승인 내지 방조

다만 실무상 민간입찰과 달리 공공입찰에서 담합을 한 사업자들이 발주처의 승인 내지 방조가 입찰담합의 주요한 원인이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재판에서 발주처의 승인, 방조가 있었다고 인정되는 사례는 드물지만, 발주처의 승인이 있었다고 인정된 사례도 있습니다. 앞서 본 사례와 같은 경우입니다.

통상 공공경쟁입찰에서는 입찰에 참가하는 복수의 사업자들이 독립된 입찰행위가 없으면 그 입찰은 유찰이 되고, 다시 재입찰을 하거나 수의계약으로 계약 방법을 변경하게 됩니다. 그런데 유찰이 반복될 경우 사업이 상당히 지연될 수 있고, 무엇보다 수의계약으로 계약 방법을 변경할 경우 담당자는 차후 수의계약의 내용 등에 대해 감사에 대응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게 됩니다. 그 때문에 발주처 담당자는 유찰이 반복되지 않도록 유력 업체가 소위 들러리 업체를 섭외해 경쟁입찰의 외형을 만드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죠.

유찰방지를 위한 입찰담합의 위법성

과거 유찰방지를 위한 입찰담합이 공정거래법상 금지되는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공정거래법은 모든 입찰담합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입찰담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안과 같이 중소교육 외에 입찰에 참여하려는 사업자가 없는 경우에는 처음부터 제한될 수 있는 ‘경쟁’ 자체가 없었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중소교육이 들러리 업체를 데려온 행위가 국가계약법 등을 위반했다고 볼 수는 있지만, 적어도 공정거래법을 위반하지는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나아가 중소교육의 행위가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했다는 점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유찰이 됐다면, 중소교육 외에 다른 업체가 경쟁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을 공정위가 증명해야 하는데, 공정위가 그러한 증명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실제 중소교육의 위와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공정위의 처분을 취소한 하급심 판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입찰담합에 관한 공정거래법 규정은 입찰 자체의 경쟁뿐만 아니라 입찰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경쟁도 함께 보호하려는 데 그 취지가 있다.”며 위 하급심 판결을 파기했습니다(대법원 2015. 7. 9. 선고 2013두30493 판결). 즉 대법원은 낙찰예정자를 사전에 결정한 입찰담합은 입찰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로 별도의 경제분석 없이도 경쟁제한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 것이죠. 위 대법원 판결 이후 유찰을 막기 위한 입찰담합 역시 거의 예외 없이 위법성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임직원의 입찰담합 관여행위의 영향

그렇다면 발주처 임직원이 입찰담합 행위를 승인 내지 방조한 사실은 입찰담합의 위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발주처 임직원의 지시를 이유로 면책받기 위해서는 그 지시가 법령에 근거한 적법한 행위여야 하는데, 임직원이 입찰담합을 지시할 수 있다는 법률 규정이 없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위 사례에서 한국대학교 담당자는 감사 등을 피하기 위한 부당한 목적에서 입찰담합을 승인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이유로 면책받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실무상 과징금 액수, 입찰참가자격제한 기간 등에 있어 발주처의 관여가 있었다는 사실이 고려되고는 있습니다.

현재 공정위 역시 발주처 임직원이 유찰방지를 위해 들러리를 독려하는 행위가 있음을 인지하고 그에 따라 공공기관 임직원의 입찰담합 관여행위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입찰담합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개선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위 내용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허승 부장판사는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 중이며 공정거래법, 세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쓴 책으로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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