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의 경영권 보장을 위한 복수의결권 제도가 3년만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지난달 27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벤처기업특별조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앞으로 벤처기업 창업주는 지분이 30% 이하로 떨어질 경우, 1주당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갖는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게 된다.

복수의결권 도입은 벤처업계의 오랜 숙원 중 하나였다. 제대로 수익모델이 갖춰지지 못한 벤처기업은 성장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창업주의 지분을 팔아 자금을 조달하게 된다. 수억원 단위의 시드(Seed) 투자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수백억원에 달하는 시리즈(Series) B나 C단계가 되면 지분율 희석으로 인한 경영권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많다. 창업주의 역할이 절대적인 벤처기업 특성상, 창업주의 지분이 적은 ‘주인 없는 기업’에는 추가투자를 꺼린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동안 벤처기업계에서는 창업주의 경영권을 보장하기 위한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을 벤처생태계 성장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삼아왔고, 정치권에서도 이견이 없던 과제 중 하나였다. 민주당에서는 2020년 총선공약 중 하나로 발표했고, 윤석열 정부도 당선 이후 국정과제로 추진키로 했었다.

그럼에도 법 통과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 지지부진한 상황에 중소기업중앙회에서도 작년 12월, 벤처기업협회 등 15개 중소기업단체와 함께 복수의결권 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반대 측의 주된 주장은 복수의결권이 상법상의 주주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상법은 이미 2011년, 재산적 권리와 의결권을 분리, 보통주의 경우에는 25% 한도 내에서 의결권의 배제나 제한을 허용하도록 개정됐다. 또 하나의 반대이유는 재벌기업의 편법승계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개정안에 복수의결권 발행기업이 대기업에 편입되거나 주식을 상속·양도하는 경우 보통주로 전환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개정안이 오랜 진통을 거쳐 촘촘하게 보완·설계된 만큼, 제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벤처기업의 특성을 고려, 경영권 보호를 위한 폭넓은 장치가 마련돼 있다. 대표적 자본시장 선진국인 미국은 이미 20여년전 구글의 기업공개를 앞두고 복수의결권 제도를 인정했고, 구글은 경영권 안정에 힘입어 유튜브, 안드로이드 등 모험적이었던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궤도에 올릴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 2008년, 10주를 1단원(單元)으로 묶는 단원주 제도를 도입했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도 2019년 가중의결권제도를 도입해 벤처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뒤늦게나마 투자 활성화를 위한 복수의결권 제도가 도입된 것은 환영할만할 일이나, 얼어붙은 벤처투자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글로벌 스탠다드와 달리, 2025년 일몰이 예정된 벤처투자 과세특례와 소득공제 연장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해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주식을 5년 이상 보유시 자본이득세를 영구감면하고 있고, 중국도 벤처캐피털 투자액의 70%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벤처지원의 모태가 되는 벤처기업법 역시 2027년에 일몰이 예정돼 있는데, 제2의 벤처붐을 위한 상시법으로의 전환이 시급한 실정이다.

벤처는 투자 없이 생존할 수 없고, 경제는 벤처 없이 성장할 수 없다. 올해 1분기 벤처투자는 9000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전년 동기 투자액이 2조2000억원에 달했던 것을 고려하면, 무려 60.3%가 감소한 수치다.

복수의결권 제도로 물꼬를 튼 벤처기업 지원대책이 공염불에 그치지 않도록 벤처기업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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