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무터는 돈벌이에만 집착
캐릭터 진가 몰라 쪼개 매각
텃세 확대 노린 알론소 감독
CG경험 적은 신인 위주 발탁
반 아이거, 걸림돌 2인 축출
백투베이직이 마블 ‘가디언’

지난 5월 3일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볼륨3〉의 사정권 안에 400만 관객 돌파가 들어왔다. 마블로서는 오랜만에 경험하는 흥행이다.
지난 5월 3일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볼륨3〉의 사정권 안에 400만 관객 돌파가 들어왔다. 마블로서는 오랜만에 경험하는 흥행이다.

32번째가 아니었다. 3번째였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볼륨3〉는 2008년 <아이언맨〉에서 시작된 마블 사가의 33번째 에피소드가 아니었다. 2014년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세번째 영화이자 완결편이었다.

관객들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즐기기 위해서 양자역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여러 세상에 또 다른 내가 있다는 멀티버스라는 개념도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 죽여도 죽여도 자꾸만 나타난다는 미래에서 온 정복자의 의도를 추리할 필요도 없었다. 알아야 할 건 한 줄의 스토리 라인 뿐이었다. 이젠 친구라기보단 가족이 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죽어가는 친구 로켓을 구하기 위해 다시 뭉친다. 더 이상 어떠한 설명도 필요 없었다.

펄무터 소유 10년간 고난의 행군

지난 5월 3일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볼륨3〉의 사정권 안에 400만 관객 돌파가 들어왔다. 마블로서는 오랜만에 경험하는 흥행이다. 2019년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신화적 흥행 이후 마블 영화들은 흥행에서 연거푸 기대치에 못 미쳤다. 2021년 9월 개봉한 <샹치와 텐링즈의 전설〉은 174만명을 모으는 것에 그쳤다.

마동석의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터널스>는 300만명을 겨우 넘는데 그쳤다. 반년 뒤에 개봉한 <범죄도시2>의 4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배우 마동석이 <범죄도시>시리즈에 나온 건 알아도 마블 시리즈에 나온 건 모르는 관객들이 적잖다.

결정타는 2023년 2월 17일 <앤트맨과 와스프 : 콴텀매니아>였다. <어벤져스 : 엔드게임>이후 가장 중요한 영화라고 홍보했지만 불과 150만명을 모으는데 그쳤다. <앤트맨과 와스프 : 콴텀매니아>가 <어벤져스 : 엔드게임>이후 가장 폭망한 영화가 된 건 분명해졌다.

이렇게 마블의 흥행 제조 능력이 앤트맨의 초능력처럼 축소돼 버린 원인이 있었다. 마블은 시빌워(Civil War) 상태였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는 2016년에 개봉한 영화다. 마블이 잘 나가던 때를 상징하는 대박작품이다. 마블의 양대 히어로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양편으로 갈려서 내전을 벌이는 스토리다. 실제로 마블 안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마블에는 2명의 빌런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명은 마블 외부에 있었다. 한 명은 마블 내부에 있었다.

마블 외부의 빌런은 아이작 펄무터 마블 엔터테인먼트 회장이었다. 마블은 모회사인 디즈니에서 마블 엔터테인먼트와 마블 스튜디오와 마블 코믹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디즈니는 2009년 마블을 40억달러에 인수했다. 한화로 5조원 정도였다. 이때 디즈니가 인수한건 엄밀하게 말하자면 영화를 만드는 마블 스튜디오만이 아니었다.

영화사인 마블 스튜디오와 만화회사인 마블 코믹스를 거느린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것이었다. 계약 당사자는 1990년대부터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회장이자 대주주였던 아이작 펄무터였다.

아이작 펄무터는 마블팬도 영화팬도 아니었다. 돈을 사랑하는 사업가일 뿐이었다. 펄무터는 이스라엘 출신의 이민자다. 아동용 장난감 사업으로 자수성가했다. 펄무터는 자신이 만드는 장난감의 지적재산권을 소유한 마블 코믹스를 오랫동안 노려왔다. 장난감에 붙는 저작권료가 아까워서였다.

마침 기업 사냥꾼인 칼 아이칸과 로널드 패럴만이 마블 코믹스를 놓고 아귀다툼을 벌였다. 양측 어느 쪽도 마블 코믹스를 인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장난감 사업을 하면서 마블 코믹스와 연이 닿았던 펄무터가 인수자로 나섰다. 결국 단돈 4억 달러에 마블 코믹스를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한화로 4700억원에 불과했다. 펄무터는 10여년 뒤 10배 넘는 가격으로 마블을 디즈니에 매각하는데 성공한다.

그렇지만 펄무터가 마블을 소유했던 10년 동안 마블은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야만 했다. 펄무터는 마블의 캐릭터를 전혀 이해할 수도 이해할 생각도 없는 인물이었다. 펄무터에게 마블이 80년 넘게 만들어온 8000여개 캐릭터들은 필요할 때 팔아먹을 자산일 뿐이었다. 당연히 펄무터는 마블에 한 푼의 추가 투자도 하지 않았다. 마블 코믹스 만화 작가들이 쓰는 종이가 아까워서 포스트잇 뒷면을 재활용하라고 잔소리를 했을 정도였다. 급기야 펄무터는 마블 코믹스 캐릭터들을 찢어서 입양 보내기 시작했다. 스파이더맨은 소니에게 팔았다. 엑스맨은 20세기 폭스에 팔았다. 헐크는 유니버설 픽쳐스에 팔았다. 마블 코믹스 유니버스를 이산가족으로 만든 건 다름 아닌 펄무터였다.

아이언맨도 끼워팔기 신세

1998년 소니가 스파이더맨을 사러 마블 코믹스를 찾아왔을 때였다. 소니는 1000만달러에 스파이더맨의 영화화 권리를 사고 싶어했다. 펄무터는 1500만달러만 더 주면 스파이더맨에 아이언맨과 토르와 앤트맨과 블랙팬서까지 주겠다고 역제안을 했다. 전형적인 끼워팔기였다. 지금이야 마블의 영화 세계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창업공신으로 불리는 아이언맨은 당시만 해도 스파이더맨한테 끼워팔기 당하는 신세였다. 당시 펄무터는 아이언맨의 진가를 몰랐다. 진가를 몰랐던 건 펄무터만이 아니었다. 소니 역시 펄무터의 제안을 일언지하 거절한다. 당시 소니가 펄무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디즈니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없었다. 소니가 지금처럼 스파이더맨 1개 캐릭터만으로 스파이더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됐다.

소니가 스파이더맨으로 만든 영화 <스파이더맨>은 2002년 개봉해서 대박을 낸다. 감독은 샘 레이미였다. 샘 레이미는 거장 감독이 아동용 히어로물을 성인용 영화로 만들어서 흥행시키는 공식을 입증하는데 성공했다. 샘 레이미는 20년 뒤인 2022년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연출을 맡게 된다. 심지어 20세기 폭스로 입양을 보낸 <엑스맨>도 대박이 난다. 소니가 <스파이더맨> 1편과 2편으로 벌어들인 극장 수익만 16억달러에 달했다. 펄무터가 소니로부터 받은 돈의 160배였다.

펄무터로선 배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마블도 직접 영화를 제작하기로 작정한다. 그렇지만 위험을 질 생각도 자기 돈을 투자할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망한 배우와 무명 감독과 초보 PD로 팀을 꾸린다. 그게 <아이언맨> 1편의 삼총사인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감독 존 파브로와 프로듀서 케빈 파이기였다.

펄무터는 <아이언맨>의 제작비도 월가 은행 메릴린치에서 빌려온다. 투자조차 꺼린 것이다. 이때 메릴린치에 제시한 담보물이 캡틴 아메리카 캐릭터였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은 마블 세계관의 양대 기둥이다. 장남이 빚보증을 서고 차남이 막노동을 뛰는 식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이언맨>이었다. <아이언맨>은 제작비 1800억원을 투자해서 8000억원의 수익을 거뒀다.

단지 흥행수익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언맨> 흥행은 디즈니가 마블 인수에 나서게 자극했다. 디즈니 역시 20세기 폭스나 소니의 히어로물 흥행에 자극 받은 상태였다. 당시 디즈니의 CEO 밥 아이거는 절친 스티브 잡스까지 동원해서 펄무터를 설득했다. 마블의 소유권을 놓고 싶어하지 않는 펄무터한테 잡스는 마블을 파는 대신 디즈니 제국의 주인이 될 기회라고 유혹했다. 실제로 펄무터는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디즈니에 매각하는 대신 디즈니의 지분 1%를 보유하게 됐다. 마블 엔터테인먼트 회장직도 유지해서 마블에 대한 영향력도 유지할 수 있었다.

‘가디언즈 볼륨3’ 400만 관객 돌파

역시나 펄무터는 마블 스튜디오에 사사건건 간섭하려고 들었다. 케빈 파이기 총괄 프로듀서를 비용절감을 명분으로 해고하려고까지 들었다. 비용절감은 핑계일 뿐이었다. 케빈 파이기가 자신 대신 최종 보스인 밥 아이거와 직통했기 때문이었다. 밥 아이거와 케빈 파이기는 마블 콘텐츠의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리는 크리에이터 위원회를 없앴다. 펄무터가 콘텐츠에 개입할 여지를 없애버리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마블 스튜디오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쉬워졌다.

<어벤져스 : 인피티니 워>와 <어벤져스 : 엔드게임>으로 이어진 마블 신화는 안정된 거버넌스 구조가 있어서 가능했다.

2020년부터 마블 흥행불패 신화가 깨지면서 마블 거버넌스 구조에도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단 2020년 2월 밥 아이거가 디즈니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자 펄무터는 자신의 심복을 디즈니 이사회 멤버로 앉히려고 시도했다. 디즈니를 차지해서 마블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마블 내부에선 또 다른 빌런이 등장했다. 빅토리아 알론소 마블 CG 총괄 사장이었다. 마블 영화들은 컴퓨터 그래픽 덩어리인 블록버스터일 수밖에 없다. 자연히 알론소 사장의 역할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알론소 역시 <아이언맨> 1편부터 참여한 마블의 창업 공신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알론소는 영화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했다. 상대적으로 컴퓨터 그래픽 경험이 부족한 신인 예술 감독 위주로 캐스팅했다.

<이터널스>의 클로이 자오 감독이 대표적이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베니스 영화제에선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아시아 여성 감독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했지만 마블에선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후반 작업의 문제였다. 마블은 비밀주의가 강한 회사다. 결말이 유출될 경우 흥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연 배우들조차 자기가 맡은 캐릭터의 운명을 모르는 경우가 적잖다. 어쩔 수 없이 후반 작업에서 시나리오가 수정되고 재작업에 들어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알론소 사장은 주 7일 64시간 노동을 요구했고 말을 듣지 않으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업계에서 퇴출시켰다. 마블은 안팎으로 망가져가고 있었다.

이제 마블 내외부의 빌런은 모두 퇴출됐다. 지난해 2022년 11월 CEO로 전격 복귀한 밥 아이거는 최근 아이작 펄무터 마블 엔터테인먼트 회장을 해고했다. 명분은 비용절감이었다. 비용절감의 화신이 비용절감 때문에 파면된 것이다. 빅토리아 알론소 역시 마블을 떠났다. 마침내 마블 영화의 연출권이 온전히 감독들한테도 되돌아오게 된 것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볼륨3>는 2023년 들어서 한국에서 3번째로 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다. 올해 들어 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스즈메의 문단속>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까지 2편 뿐이다. 요즘 한국 극장가에서 400만 관객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끝났지만 극장가의 관객 가뭄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대형 TV와 손 안의 스마트폰 그리고 저렴한 OTT에 친숙해진 관객들은 구태여 극장을 찾을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주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에만 돈을 열고 몸을 움직인다. 지금의 400만은 과거의 1000만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볼륨3>도 그런 간택 받은 영화 가운데 하나가 됐다.

마블의 32번째 영화가 아니라 3번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여서 가능했던 흥행이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디즈니와 마블의 기본으로 돌아갔다. 가족주의와 영웅주의가 돌아왔다. 마블 흥행을 이끌었던 건 복잡한 게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단순한 신념과 자신을 희생시키더라도 자신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킨다는 희생이 본질이었다. 모두가 꿈꾸지만 현실에선 찾기 어려운 가치들이었다.

펄무터와 알론소는 마블 문화에서 가족주의와 영웅주의를 속물주의와 세속주의로 대체한 빌런들이었다. 무엇보다 감독에게 온전히 연출권을 돌려줬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제임스 건 감독은 한때 마블에서 쫓겨났다가 복귀했다. 이번에야말로 철저하게 연출의 독립성을 지켰다. 제품력이야말로 400만 관객이 기꺼이 지갑을 열게 만든 지렛대다. 춤과 노래로 관객들이 영화를 즐기게 만들었다. 백투베이직. 마블의 가디언이다.

 

- 신기주 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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