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美 국빈방문한 한국에 으름장
우리 국격에 걸맞은 대우 바람직
다리 불태우는 어리석음 없어야

군사력으로는 세계 2위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돼야 할 러시아가 막대한 인적, 경제적 손해는 물론 국가 이미지 손상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시각이 있다.

그런 가운데 러시아가 오랜 역사를 통해 프랑스, 독일 심지어 스웨덴이나 폴란드에게도 국토를 유린당한 과거가 있다 보니 본능적으로 완충지대를 필요로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가까스로 승리는 했지만, 수천만명의 자국 국민이 희생된 전례가 있어 적대 세력과 직접 마주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편에 서 나토가 주둔하면 러시아는 적국과 바로 국경을 마주해야 하고 그들의 안방이라 할 수 있는 모스크바까지도 700㎞에 불과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국토가 넓은 그들에게 700㎞는 지척으로 느껴질 수 있다.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 우리의 기억을 소환했던 장전호 전투가 중국과 한국의 입장 차이로 다시 부각됐다. 임진왜란 때나 6.25 동란 시 중국의 파병 논리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 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 해도 그러면 안 되지만, 러시아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번 미국 국빈 방문 중에 중소기업 대표단을 위시해 많은 기업인들이 참석해 경제 분야의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하면서 미국의 기업인들과 소통하고 친교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에 대해 중국은 연일 외교적 관행을 무시하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외교적 수사가 원래 그렇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것을 고려해도 지나치다고 생각될 정도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성장했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은 종합 국력으로는 6대 강국으로 G8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고 여겨진다.

사정이 이런데도 중국 지도층은 물론 주류 사회의 의식은 과거 황제를 알현하던 시대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의 최고위 공직자에 대한 의전이 그럴 수가 없다. 손님을 지극히 대접하는 게 동양의 보편적 관행이지 않은가.

황제 의전에 대한 예화가 있다. 외국 대사가 부임하면 꼭 황제를 알현하곤 했는데 외교관들이 황제 앞에 엎드리지 않자, 궁리 끝에 보좌에 앉아 있는 황제를 만나기 위해 엎드리지 않고서는 출입할 수 없게 작은 문을 만들었다. 그러자 외교관들이 엉덩이부터 들어오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보이는 것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모욕을 주는 행위다. 상대방의 지위가 바뀌었다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한다. 우리나라는 국토는 작지만 경제, 군사력, 역사적 전통, 문화 수준은 이미 스페인은 넘어섰고 프랑스, 이탈리아와 견줘도 현실적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중국이 한국 반도체 제품의 최대 수입국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관련국들이 한반도 문제의 증상을 명확히 인식하고 증상에 맞게 약을 투여해야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해서는(연목구어, 緣木求魚) 안 된다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으름장이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고사성어는 동양만 있는 게 아니다. 서양에도 넘쳐난다. 이런 상황에 걸맞은 관용 표현을 인용하자면 다리를 불태우지 마라(Don’t burn the bridges.)가 아닐까 싶다.

지원이나 자원을 제공하는 사람이 미래에 중요하거나 부자가 될 수 있으니 불쾌감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우리는 지금도 그러한 위치에 있고 앞으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를 실현하는 특전사는 우리의 중소기업과 대기업이고 후방의 든든한 지원군은 국민이다.

여야는 오른쪽 귀, 왼쪽 귀와 같다. 서로 관점이 다를 수 있고 정책 방향이 상이할 수 있다. 또 내부적으로는 치열한 토론과 정책 경쟁이 있을 수 있지만,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홧김에 자신의 코를 잘라 버려서는 안 된다. 외부의 위협이나 국익에 대해서는 단일 대오가 필요한 시점을 잘 판단하는 국민의 대표가 되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라본다.

 

 

 

김광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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