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기업 정신의 결정체, 가훈

여러 세대를 내려온 장수기업이 세계적 명문기업으로 우뚝 선다. 패밀리 비즈니스 네트워크에 따르면 세계 상위 10대 브랜드 중 8개가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며 명가(名家)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최적의 제품을 완성해 고객으로부터 사랑받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족기업 정신의 결정체, 가훈(家訓)이 자리한다.

가훈은 가업의 존속과 번영을 이루기 위해 선대가 후계에게 남긴 유훈이자 훈계다. 가족이 의사결정을 할 때 판단기준이 되는 핵심 가치관을 적시하고 있어 가치 지향적 경영의 표상이 된다. 지켜야 할 도덕적 덕목을 담고 있는 윤리적 지침으로 안으로는 가족의 행동을 통제, 조정하고 밖으로는 기업조직의 질서를 유지해 가족기업 체제를 안정시킨다.

백년기업으로 가는 핵심 키워드

경영전략 달라져도 가훈은 불변

가치지향, 가족기업 안정 중심축

일본의 ‘이에(いえ, 家)’는 혈연인 ‘가족’이 대를 잇고, 경영체인 ‘기업’을 승계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나 이어가야 할 것에 있어 경영체가 혈연보다 앞선다. 대를 이어 경영체 ‘이에’를 계승해 영속성을 지닌 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경영체 ‘이에’의 성장과 번영을 위해 노력하는 일본 장수기업은 각 시대의 환경 변화에 따라 다양한 경영전략을 구사한다. 그러나 가훈, 가족교서, 가족헌장, 가족규칙 등은 창업 이후 환경이 변해도 그대로 계승한다. ‘이에’의 철학이 담겨있음이다.

1630년부터 간장을 제조한 깃코만(Kikkoman)은 창업자의 가치가 반영된 17개 조항의 가족교서를 지금도 경영활동 지침으로 삼고 있다. 그중 첫 번째 조항이 ‘가족의 화합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기업의 번영과 가족의 재산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라’이다. 깃코만 브랜드를 보면 장수와 행운을 의미하는 깃(kik), 최고의 코(ko), 영원을 뜻하는 만(man)이 조합된 장수하는 최고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가족기업 삼성의 경영철학과 목표는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 인류사회에 공헌한다’ 이다. 도요타자동차 그룹을 일군 도요타 가문(豊田 家門)의 가훈은 ‘일대일업’(一代一業)이다. 한 대(代)에 하나의 사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의미다. 독일-유대계 혈통의 국제적 금융 가문 로스차일드(Daniel Davis Rothschild family)는 ‘붉은 방패’라는 뜻의 문장(紋章)을 사용한다. 문장에는 조화, 성실, 근면이 쓰여 있다. 이 가훈은 설립자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1773~1855) 이후 대대로 내려오고 있다. 718년(養老2) 아와즈(粟津) 온천 개장 이후 문을 연 한 채의 호시료칸(法師旅館)은 최고(最古) 기업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재 제46대 점주가 창업자인 선대의 이름을 습명(襲名)한 젠고로(善五郎) 이다. 젠고로(善五郎)는 대대로 계승하므로 다음 제47대 점주도 습명(襲名)할 것이다. 호시료칸(法師旅館)의 가훈은 ‘스스로 배우고 물에서 배운다(自ら学ぶ、水から学ぶ, 동음이어)’ 이다. 주변 온도에 따라 뜨거워지고 차가워지는 물의 특성처럼 스스로 능력을 키워 순응하고 살아가라는 뜻이다.

필자는 가훈으로 ‘밝은 눈동자, 뜨거운 가슴, 부지런한 손’을 쓰고 있다. 이를 손주에게도 물려줄 생각이다. 우리나라 가족기업도 기업가 정신의 결정체인 가훈을 만들고, 다듬고, 승계할 계획을 지니고 있다. 승계를 마무리한 2세 경영자도 물려받은 가훈을 경영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100년 기업의 꿈이 가족기업 나침반인 가훈에 담겨있다.

 

 

 

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한국가족기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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