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 판사의 공정거래법 산책(5) 대규모유통업법과 판매장려금

최근 들어 공정거래법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은 기본적으로 공정거래가 지켜져야 가능하다. 이 법의 목적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경제력 집중, 부당공동행위, 불공정 거래를 규제해 자유로운 시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이 어려워 중소기업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중소기업인의 공정거래법 이해를 돕고자 대법원 재판연구관 허승 판사가 쉽게 설명하는 공정거래법 사례 시리즈를 매월 소개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중소제과가 출시한 ‘허니칩’은 과자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감자칩 시장 판매 1위를 달성했다. 그러던 어느날 중소제과는 국내 최대 대형마트인 제트마트로부터 현재 1000원에 납품하고 있는 허니칩의 납품단가를 10% 인하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러나 중소제과는 다른 대형마트나 온라인 채널에 모두 같은 가격에 납품하고 있어 납품단가 인하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제트마트는 허니칩을 이미 가장 좋은 매대에 진열하고 있다며 납품단가의 10%를 매대장려금으로 요구했고, 중소제과는 비밀유지를 조건으로 승낙했다. 얼마 후 제트마트는 “허니칩 노마진 판매”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며 허니칩을 1000원에 판매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제트마트가 허니칩 상품대금을 부당하게 감액했다며 제트마트에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제트마트는 과징금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판사 : 공정위는 제트마트가 중소제과로부터 판매장려금을 받은 것이 실질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상품대금 감액이라고 보았네요.

제트마트 :   억울합니다. 저희는 허니칩을 좋은 매대에 진열해주는 대가로 매대장려금을 받았을 뿐입니다. 공정위 지침에서도 매대장려금은 적법하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공정위 : 대규모유통업법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매대장려금을 가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제트마트는 중소제과로부터 납품금액에 비례해서 판매장려금을 받았습니다. 이는 공정위 지침에서 금지하는 성과장려금입니다.

제트마트 :  저희는 허니칩을 마트에서 고객이  제일 많이 지나가고 주목도가 높은 매대에 진열했습니다. 당연히 매대장려금이죠.

대규모유통업자와 판매장려금

공정위는 2021년 납품업자로부터 부당한 판매장려금을 받았다는 이유 등으로 쿠팡에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또한 언론보도에 의하면 공정위는 현재 마켓컬리를 비롯한 이커머스 업체들이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해 납품업자로부터 부당한 판매장려금을 받았는지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대형마트, 백화점 등 대규모유통업자가  ‘갑질’을 통해 납품업자를 착취한다는 우려에서 만들어진 대규모유통업법은 판매장려금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죠.

유통구조의 변화와 판매장려금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판매장려금이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유통업자의 힘이 생산업자보다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2000년대부터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를 비롯한 대형마트가 늘어나고, 대형마트의 시장 점유율이 커짐에 따라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생산업체는 대형마트와 거래하지 않고는 매출을 유지할 수 없게 됐죠. 어느새 대형마트가 생산업체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가지게 됐습니다.

대형마트가 우월적 지위를 가지면서 생산업자가 유통업체의 마케팅 활동에 대한 보상으로 지급하던 판매장려금의 성격이 달라졌습니다. 대형마트가 생산업자에게 마케팅 활동과 무관한 다액의 판매장려금을 요구하고, 이 판매장려금을 주된 수입으로 하면서 고객에게는 노마진 판매라고 광고하는 대형마트까지 등장했죠.

판매장려금에 대한 규제

판매장려금이 중소 납품업자를 착취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자 공정위는 판매장려금을 공정거래법상 거래상 지위 남용 금지 규정을 적용해 규제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공정거래법상 거래상 지위 남용을 입증하는 것은 공정위의 책임인데, 매대 진열의 대가, 마케팅의 대가 등의 명목으로 판매장려금을 받았다고 주장한 대형마트의 주장을 뒤집기는 어려웠죠. 이에 국회는 2012년 1월 1일 공정위가 부담하던 부당성의 증명책임을 대규모유통업자에게 전환하는 내용이 포함된 대규모유통업법을 제정했습니다.

대규모유통업법은 판매장려금에 관한 여러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대규모유통업법의 ‘판매장려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판매장려금과는 뜻이 다릅니다. 대규모유통업법은 “대규모유통업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납품업자에게 금전 등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게 해서는 아니 된다”면서도 “대규모유통업자는 예외적으로 해당 거래분야에서 합리적으로 인정되는 판매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즉 원칙적으로 대규모유통업자는 납품업자로부터 돈을 받을 수 없지만, 예외적으로 대규모유통업법이 ‘판매장려금’이라고 인정한 돈은 받을 수 있습니다. 판매장려금의 범위가 넓어지면 그만큼 대형마트 등 대형유통업자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대규모유통업법은 판매장려금의 범위를 크게 좁히고 있습니다.

대규모유통업법과 판매장려금

대규모유통업법은 판매장려금을 ‘직매입거래 상품의 판매촉진을 위해 (중략) 납품업자가 대규모유통업자에게 지급하는 경제적 이익’이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서 직매입거래란 대규모유통업자가 판매되지 않은 상품의 판매책임을 부담하는 거래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대규모유통업자가 판매되지 않은 상품을 원칙적으로 반품할 수 없는 직매입거래에 해당하지 않으면, 대규모유통업자가 납품업자로부터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받은 돈은 대규모유통업법이 인정한 판매장려금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위법한 것이죠.

상품 판매촉진 목적과 판매장려금

실무에서는 대규모유통업자가 ‘상품의 판매촉진을 위해’ 납품업자로부터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는지가 주로 문제됩니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가 매출증가 가능성이 큰 자리에 상품을 진열해주는 대가로 받는 판매장려금(일명 매대장려금)은 상품의 판매촉진을 위해 받았다고 볼 수 있죠. 반면 대형마트가 납품업자로부터 상품 매입금액의 일정비율로 받는 판매장려금(일명 기본장려금)은 상품의 판매촉진과의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공정위가 제정한 ‘대규모유통업 분야에서 판매장려금의 부당성 심사에 관한 지침’ 역시 매대장려금은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허용되나 기본장려금은 금지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적어도 외형상 상품의 판매촉진과 관계없는 판매장려금을 받는 대형유통업자는 찾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판매장려금을 지급하게 된 실질적인 이유가 무엇이냐 입니다. 사례와 유사한 사건에서 법원은 제트마트가 중소제과로부터 판매장려금을 받기 전후로 허니칩 진열 매대에 변화가 없었고, 제트마트는 자신의 영업이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소제과에 판매장려금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 등을 들어 제트마트가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받은 돈은 대규모유통업법상 허용되는 판매장려금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향후 과제

판매장려금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판매촉진을 위한 정당한 판매장려금은 대규모유통업자의 판매촉진을 유인하고 이로 인한 납품업자의 매출증대를 가져와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죠. 대형유통업자와 중소 납품업자의 상생을 위한 판매장려금이 중소 납품기업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 방법을 고민할 때입니다.

※위 내용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 위 사례는 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18두65071 판결 등 여러 판결을 바탕으로 한 가상의 내용입니다.

 

허승 부장판사는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 중이며 공정거래법, 세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쓴 책으로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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