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외국인력 정책토론회
계약해지 거절하면 태업⋅꾀병
일정기간 변경금지 방안 필수
E-9 비자 업종별로 세분해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지난 1일 ‘중소기업 외국인력 정책토론회’가 ‘사업장 변경,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열리고 있다. 좌장을 맡은 김용진 서강대학교 교수가 토론회 진행을 하고 있다.	김동우 기자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지난 1일 ‘중소기업 외국인력 정책토론회’가 ‘사업장 변경,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열리고 있다. 좌장을 맡은 김용진 서강대학교 교수가 토론회 진행을 하고 있다. 김동우 기자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중소기업 10곳 중 8곳 이상(85.4%)이 외국인 근로자가 사업장 변경을 위해 계약해지를 요구할 경우, 이를 거절하면 태업이나 꾀병, 무단결근 등의 부당 행위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계약해지를 요구받은 중소기업은 결국 대부분(96.8%) 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외국인 근로자 활용업체 500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외국인력 사업장 변경에 따른 중소기업 애로사항 조사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가 사업장 변경을 위해 계약 해지를 요구한 사례가 있었던 기업은 68.0%에 이르렀다.

특히 ‘입국 후 3개월 이내’에 외국인 근로자가 사업장 변경 요구를 했다는 응답이 25.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또 계약해지를 요구받은 중소기업들은 96.8%가 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외국인 근로자의 계약 해지를 요구받았을 때, 기업이 취한 초기 조치로는 ‘계약해지 동의’가 81.2%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이어 ‘계약해지 거절’(14.1%), ‘근로자와 협의 후 임금인상 등 요구사항 수용’(4.7%) 순으로 나타났다.

기업이 외국인 근로자의 계약 해지 요구를 거절했을 때, 외국인 근로자의 대응으로는 ‘태업’이 33.3%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꾀병’(27.1%), ‘무단 결근’(25.0%) 등 기업들은 부당 행위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긍 후 계속 근무’는 12.5%에 불과했다.

이 같은 외국인 근로자의 부당 행위에 대한 기업의 조치로 ‘마지못해 계약해지 동의’가 87.5%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별도 조치 없음’(10.4%), ‘경징계(경고, 감봉, 정직)’(2.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은 사업장 변경을 ‘전면 금지’(19.4%)하거나 ‘제한 강화’(41.8%)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현행 유지’라고 응답한 기업들은 36.0%였다.

중소기업들은 사업주의 잘못이 없음에도 외국인 근로자가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며 태업 등 부당 행위를 할 때,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방안으로 ‘강제 출국’(38.2%)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어 ‘재입국 시 감점 부여’(26.8%), ‘체류 기간 단축’(22.2%) 등의 순이었다.

사업장 변경을 하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한 기업의 비중도 75.2%에 달했다. 인센티브로는 ‘체류기간 연장’(67.8%)과 ‘재입국 절차 간소화’(19.7%), ‘재입국 시 가점 부여’(11.7%) 등이 꼽혔다.

‘고용허가제 개편’ 촉구

이같은 조사결과는 중기중앙회가 지난 1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개최한 ‘중소기업 외국인력 정책토론회’에서 공개됐다.

이번 토론회는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도입되는 비전문 외국인력(E-9 근로자)을 활용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현장 애로를 청취하고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올해 제도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계속될 예정이며, 이날은 첫번째 순서로 중소기업들이 외국인 근로자 활용에 있어 가장 큰 애로로 지적하는 사업장 변경 제도에 관해 현장 기업인과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이 논의됐다.

이재광 중기중앙회 노동인력위원회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저출산·고령화로 생산인구가 감소하고,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은 외국인력 없이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도입 인력을 늘린 것은 만족스럽지만, 제도 개선측면에서는 기업들이 현장에서 체감할 만한 개선이 이뤄졌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작년 12월 정부가 발표한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이 보다 속도감 있게 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제발표에 나선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 근로자 사업장 변경 제도 개선방안’에 대해 견해를 밝혔다.

노민선 연구위원은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행태에 대해 중소기업들의 피로감이 크게 누적된 것으로 보인다”며 “불가피한 사유가 없음에도 외국인 근로자가 사업장 변경을 시도할 때 사업자에게도 최소한의 대응 장치는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용자 귀책이 아닌 경우 초기 일정 기간은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사업주와 근로자 간 분쟁 발생 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조정기구의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장기근속 근로자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및 구인·구직 미스매치 해소를 위한 정보제공도 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김용진 서강대 교수의 진행으로 △김동현 한국기전금속(주) 대표이사 △이동수 동진테크 대표 △최원충 성원A.C.공업(주) 대표이사 △김영생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태희 대구 한의대 교수 △이재인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실 서기관이 열띤 논의를 펼쳤다.

‘동일업종에서만 근무’ 방침 필요

특히 이날 토론에 참석한 중소기업인들은 현재의 사업장 변경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공작기계, 선박 부품 등을 생산하는 김동현 한국기전금속(주) 대표는 “뿌리산업의 대표 업종인 주물업계의 근로자 평균 연령이 60세를 넘은 것은 오래전이며, 젊은 인력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으로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활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외국인 근로자가) 입국하자마자 상대적으로 업무가 쉬운 업종으로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태업으로 일관해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 해지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현장의 실태를 소개했다.

그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9 비자를 업종별로 세분화하고, 이직하더라도 동일 업종에서만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관리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사출 업체인 동진테크의 이동수 대표는 “내국인을 써봤지만 1~2달이 고작이고 가족들이 부족한 인력을 메우고 있는 실정”이라며 “외국인 근로자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장 이전을 요구하고, 거절하면 꾀병을 부리며 일하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밝혔다.

그는 “사업장을 변경해주고 새로 받은 근로자도 똑같은 요구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데 영세기업 입장에서는 대응할 수단이 없다”면서 “고용노동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현장의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신속한 제도 개선으로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호소했다.

자동차용 센서, 정밀기어 등을 생산하는 성원A.C공업(주)의 최원충 대표는 “작년 11월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가 올해 초 친구들이 근무하는 사업장으로 옮기고 싶다며 보내달라 요구해 거절했더니, 무단결근을 자주 하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아 주의를 주자 고용부에서 고발장이 접수됐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조사를 받으러 가니 수당 지급이 명확하지 않다고 해 확인 후 전액 지급했는데, 근로자와 같은 국적의 브로커로 보이는 사람이 근로자 계약 해지에 동의하라고 요구를 해왔다”면서 “상의해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를 사업장 이전을 목적으로 고발까지 하고, 브로커를 이용해 계약 해지를 유도하는 악질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는 “계약하고 근무하러 온 업체가 맘에 들지 않으면 다시 본국으로 출국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토론회를 마친 후 이명로 중기중앙회 인력지원본부장은 “현행 고용허가제에서 개선이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입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는 경우”라며 “사업장 귀책이 없는 경우 계약기간 동안 사업장 변경을 금지하는 한편,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며 태업 등 부당 행위 시에는 본국으로 출국 조치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며, 이를 정부와 국회에 적극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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