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급등 내세워 내달부터 14% 인상
납품대금 연동제 시행 이전 가격인상 ‘눈총’
사이에 낀 레미콘업계, 가격 결정권 미미
골재값⋅유류비… 엎친데 덮친 레미콘업계
일방⋅기습적 가격인상 철회 강력히 규탄
정부, 연동제 사각지대 해법 마련 급선무
오는 10월 납품대금 연동제의 본격적인 시행을

지난해 8월 중소 레미콘업체 대표 900여명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시멘트업체들의 기습적 시멘트 가격 인상에 대해 규탄대회를 열었다.
지난해 8월 중소 레미콘업체 대표 900여명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시멘트업체들의 기습적 시멘트 가격 인상에 대해 규탄대회를 열었다.

오는 10월 납품대금 연동제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시멘트업계가 일제히 가격 인상을 예고하고 나섰다. 앞서 지난 2년 동안 3차례 시멘트 가격을 올린 적이 있어 이번이 납품대금 연동제 시행 전 마지막 인상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1일 시멘트업계의 1위인 쌍용C&E가 7월부터 1종 벌크시멘트 가격을 톤당 10만4800원에서 11만9600원으로 14.1% 인상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성신양회도 톤당 10만5000원에서 12만원으로 14.3% 인상하겠다고 레미콘사에 통보했다. 두 회사는 올해 1분기에 각각 약 17억원, 49억원의 적자를 봤다.

그밖에 한일이나 아세아, 삼표 등은 흑자를 냈으며 아직까지 시멘트 가격 인상에 대해 말하진 않았지만, 가격 인상 행진에 뒤따를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시멘트업계는 이번 가격 인상의 근거로 제조원가에서 20%가량을 차지하는 전기요금 인상을 들고 있다. 전기요금은 올해 1월 kWh(킬로와트시)당 13.1원, 5월에 8원이 올라 상반기에만 21.1원 올랐다. 이는 지난해 인상 폭인 19.3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레미콘업계의 지적이다. 지난해 시멘트 가격 인상의 요인은 유연탄 가격과 환율 상승이었다. 그런데 제조원가의 30~40% 정도를 차지하는 유연탄은 최근 가격이 급락했다. 호주 뉴캐슬탄(6000kcal 기준)의 가격은 지난해에 톤당 최고 400달러에 달했지만, 올해엔 150~160달러 수준으로 60%가량 하락한 상태다.

한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전기요금이 올라 시멘트 가격에 반영했다고 하는데, 그보다 제조원가에서 비중이 더 큰 유연탄의 가격이 급락해 상쇄 효과가 일어난 것도 고려해야 한다”며 시멘트 가격 인하를 촉구했다.

최근 2년간 4번 시멘트값 인상

이번 시멘트 대기업들의 무차별적인 가격 인상 강행으로 관련 업계의 전후방 가격 협상 구조에서 이변이 감지되고 있다. 익명의 관계자에 따르면 건설업계는 대형사 자재구매 담당 협의체인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를 통해 시멘트사와 직접 협상에 나설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되면 중간 유통과정에 있는 레미콘업계의 협상력이 더욱 쪼그라들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 현재도 가격 변동 시 국토교통부가 중재에 나서고 있지만, 만에 하나 시멘트사-건설사의 대기업 간 가격 협상 구조가 이뤄진다면 레미콘업계를 배제한 그들만의 협상테이블이 나올 수도 있다는 우려다.

익명의 관계자는 “시멘트사가 건설업계에만 유리하고 레미콘업계엔 불리한 가격을 설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이러한 민간시장의 가격구조가 견고해지면 정부인 국토교통부가 중재에 나서더라도 레미콘업계의 목소리가 제대로 먹혀들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레미콘이란 ‘레디믹스트 콘크리트(Ready-Mixed Concrete)’의 약자로서, 굳지 않은 상태로 섞으면서 현장으로 운반되는 콘크리트를 뜻한다. 레미콘은 시멘트에 골재, 콘크리트, 물 등을 섞어 만들게 되므로, 레미콘업체는 시멘트업계로부터 시멘트를 공급받는다.

이에 따라 시멘트와 관련된 업계는 시멘트업 – 레미콘업 – 건설업 순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띠고 있다. 시멘트업계와 건설업계의 소수의 대기업들 사이에 레미콘업계의 수백개 중소기업들이 샌드위치처럼 끼워져 있는 형국인데, 가격을 결정하는 협상 측면에서 힘을 쓰기 힘든 모양새다. 시멘트를 공급받는 레미콘업체들로서는 가격 인상분만큼을 건설사에 납품할 때 반영하기 어렵다.

실제로도 시멘트업계의 가격 인상은 이번 인상을 포함해 치근 2년간 4번 이뤄졌다. 이에 지난해 8월 중소 레미콘업체 대표 900여명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시멘트업체들의 기습적 시멘트 가격 인상에 대해 규탄대회를 연 바 있다. 비대위는 2021년 7월 5.1%, 2022년 2월 17~19%에 이어 9월부터 12~15%를 추가적으로 인상한다고 기습 통보받았다고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 레미콘 운반사업자 파업, 골재 가격 및 유류비·운반비 급등 등으로 레미콘업계는 최악의 위기를 지나고 있는 상황이다. 중소레미콘업체 대표들은 규탄대회에서 결의문을 통해 △일방적이고 기습적인 가격인상 철회 △중소레미콘업계에 대한 압력과 강요 중단 △제조원가 및 인상요인 공개 등을 시멘트 업체들에 요구했었다.

연동제 입법 보완 모색해야

시멘트 회사인 쌍용C&E와 성신양회가 시멘트 가격 인상에 나서며 시멘트 업계의 전반적인 가격 인상이 불가피 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지난 4일 서울의 한 시멘트 공장에 레미콘 차량이 주차돼 있다.
시멘트 회사인 쌍용C&E와 성신양회가 시멘트 가격 인상에 나서며 시멘트 업계의 전반적인 가격 인상이 불가피 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지난 4일 서울의 한 시멘트 공장에 레미콘 차량이 주차돼 있다.

지난해 12월 납품대금 연동제의 의무화를 담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올 하반기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법안의 골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납품대금 상승 폭을 약정서에 기재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납품 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 이상인 주요 원재료가 대상이며, 주요 원재료 가격이 위탁-수탁기업 간의 협의비율(10% 이내) 이상 변동하는 경우에 변동분에 연동해 납품대금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예외사항은 △위탁기업이 소기업인 경우 △납품대금이 1억원 이하 소액인 경우 △계약기간이 90일 이내 단기계약인 경우 △기업 간 합의한 경우 등이며, 위반 시에는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중소기업계의 14년 숙원 사업이던 납품대금 연동제가 드디어 법제화됐지만, 레미콘업계의 사례처럼 시장의 독특한 공급구조 등으로 인해 해결이 어려운 사각지대에 대해서는 실효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업계에서는 전기료 등의 주요경비 변동분에 대해서도 연동제가 적용되는 등 입법 보완을 통해 납품대금연동제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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