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발주자 나이키에 밀려 위상 뚝
운동화에서 패션화로 방향 전환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 팬덤 구축
힙하고 핫한 스타일에 2030 매혹
패션계 선호 1위 브랜드 자리매김
일본 주식시장 매수 2위 종목 등극

아식스의 영업이익은 226억 엔으로 무려 120%나 늘어났다. 아식스의 실적은 일본 내수 시장 성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서도 잘 나갔기 때문이다.
아식스의 영업이익은 226억 엔으로 무려 120%나 늘어났다. 아식스의 실적은 일본 내수 시장 성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서도 잘 나갔기 때문이다.

건강한 내수 시장에 건강한 주식 투자. 요즘 아식스는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 아식스는 일본을 대표하는 스포츠 용품 업체다. 아식스는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시구절에서 따온 브랜드다. 일학 개미들의 최애 종목 가운데 하나다. 일학 개미는 일본 증시에 투자하는 한국 투자자들을 일컫는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 따르면, 지난 5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한국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순매수 규모는 3443만달러에 달한다. 한화로는 443억원이다. 불과 2월과 3월까지만 해도 일본 주식은 순매도였다. 그런데 4월부터 50만달러 순매수로 돌아섰다. 그래봤자 6억5000만원 남짓이었다. 그런데 5월 접어들면서 폭풍 매수가 시작됐다. 50배나 증가했다. 서학 개미들이 일학 개미들로 변신한 덕분이다. 실제로도 일본 증시는 활황이다. 2023년 들어서만 닛케이225가 20% 넘게 상승했다. 2023년 5월엔 3만 포인트를 재돌파했다.

시장이 아무리 좋아도 종목을 잘 골라야 수익이 난다. 일단 워런 버핏 추격 매수가 이어졌다. 덕분에 워런 버핏이 투자해서 주목 받은 일본 5대 종합 상사 주식들도 투자 상위에 올랐다. 이토추상사·미쓰비시상사·마루베니·미쓰이물산·스미토모상사 등이다. 버핏은 일본 5대 종합 상사의 비중을 7.4%까지 늘렸다. 그렇지만 일학 개미가 버핏 리스트보다 주목한 종목은 따로 있었다. 4월과 5월에 걸쳐서 일학 개미들이 선택한 개별 종목 가운데 1위는 닌텐도였다. 2위가 바로 아식스다.

올 1분기 영업이익 120%↑

게임회사인 닌텐도와 스포츠용품 회사인 아식스는 일본의 대표적인 내수 소비 브랜드다. 지금 일본 증시가 활황인 이유는 우선 금융적 요인이 크다. 일본중앙은행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금융완화를 계속하고 있다. 대신 정부가 앞장서서 임금 인상을 강조하면서 일본 기업들의 급여 인상이 이어졌다. 임금 인상으로 물가 상승을 상쇄하려는 전략이다.

일본의 월평균 명목임금은 2022년 1인당 311만 원으로 2021년 대비 2.1%까지 증가했다. 버블경제의 절정이었던 1991년 이후 31년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이걸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이 닌텐도와 아식스와 유니클로 같은 일본 소비재 기업들이다. 닌텐도는 2023년부터 임금을 10% 인상하기 시작했다. 유니클로 브랜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은 최대 40%까지 인상할 계획이다.

일본은 민간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4%나 된다. 민간 투자까지 더하면 74%에 달한다. 대외 의존도가 낮아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나 미중 갈등에 따른 대중 수출 부진 같은 한국 경제가 겪는 리스크에서 자유롭다. 닌텐도나 아식스나 유니클로는 이런 일본 경제 구조의 수혜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종목들이다. 일학 개미들이 닌텐도에 이어 아식스를 두 번째로 픽한 이유다.

실제로 아식스는 2023년 1분기에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2023년 1분기 순매출은 1523억엔으로 2022년 1분기 1053억엔에 비해 44.6%나 증가했다. 특히 아식스의 영업이익은 226억 엔으로 무려 120%나 늘어났다. 아식스의 실적은 일본 내수 시장 성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서도 잘 나갔기 때문이다. 아식스는 일본에서만 35% 성장했지만 동시에 호주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포괄하는 아세안 시장에선 무려 56.7%나 커졌다. 유럽 시장에서도 43.9%나 성장했다. 요즘 아식스는 확실히 건강한 성장 건강한 실적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농구화로 시작, 러닝화시장 발굴

아식스는 1949년 일본 고베에서 창업됐다. 창업자 오니츠카 기하치로는 처음엔 오니츠카 타이거라는 운동화 회사를 차렸다. 고베와 오사카 일대 지역은 전통적인 운동화와 섬유 산업 클러스터다. 2차 대전의 폐허 속에서 일본 제조업 재건 과정에서 오니츠카 타이거가 잉태됐다. 오니츠카 타이거는 창업자의 이름에 타이거라는 강한 이미지를 더한 브랜딩이었다. 아식스하면 마라톤화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첫 제품은 러닝화가 아니라 농구화였다. 문어 빨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잘 미끄러지지 않는 농구화를 제조했다.

2023년 상반기 400만 관객을 모았던 일본 애니메이션 <슬램덩크 더 퍼스트>에도 아식스 농구화가 나온다. 북산 농구부 14번 정대만이 신는 농구화가 1983년에 출시된 아식스 파브레 포인트게터 L이다. 2023년 현재는 아식스 젤 PTG MT 화이트레드로 판매되고 있다. 밑창에 3개의 원형 디테일이 있어서 좌우 회전 피봇팅이 쉬운 게 특징이다. 3점 슛터인 정대만의 특징이 투영된 제품이다. 아식스의 시작은 농구코드였던 셈이다. 오니츠카 사장은 선수와 감독에게 직접 일일이 의견을 물어보면서 운동화 품질을 개선했다. 일본 특유의 모노츠쿠리 장인 정신이 아식스에도 투영된 셈이다.

오니츠카 사장은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새로운 시장인 러닝화 시장을 발굴한다. 물집으로 고생하는 마라토너를 보고 실용적인 러닝화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1959년 매직러너가 탄생한다. 통풍이 잘 되도록 신발 옆에 공기 구멍을 낸 러닝화였다. 1961년 일본에서 열린 마이니치 마라톤 대회에선 매직러너를 신은 선수가 우승을 차지한다. 맨발의 아베베로 유명한 아베베 비킬라였다.

오니츠카 사장이 아베베한테 직접 찾아가서 매직러너를 추전한 건 유명한 전설이다. 1963년 벳부 마라톤 대회에선 매직 러너를 신은 일본 마라토너가 세계 최고 기록을 경신한다. 일본 선수가 일본 마라톤화를 신고 세계 최고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달리기 하면 오니츠카 타이거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아식스로 간판을 바꿔단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마케팅 이미지다. 경기력을 향상시켜주는 실용적 스포츠 용품이라는 이미지도 이 때 생겼다. 기능성을 우선시하는 아식스 특유의 기업 문화도 이때 구축됐다.

그렇지만 아식스는 이 무렵에 스스로 적을 키워버린다. 나이키였다. 당시 학생 신분으로 일본 여행을 하고 있었던 필 나이트는 오니츠카 타이거의 품질에 반해버린다. 직접 고베 본사를 찾아가서 미국 수입 유통권을 달라고 협상을 제안한다. 당시 필 나이트가 창업한 회사의 이름은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였다. 오니츠카 사장은 필 나이트한테 미국 유통권을 넘겨준다.

필 나이트는 1971년 독자적인 브랜드인 나이키를 탄생시킨다. 이때부터 아식스와 나이키는 한동안 특허소송전을 통해 자존심 싸움을 벌인다. 오니츠카측은 나이키가 자신들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체 브랜드를 탄생시켰다고 여겼다. 결과적으로 오니츠카는 미국 직진출을 하지 않았다가 미국 시장을 나이키한테 넘겨준 꼴이 됐다. 나이키의 속도와 미국 시장의 덩치 탓에 오니츠카 타이거가 점점 열세에 놓이게 된 것이다.

오니츠카의 대응책은 덩치 키우기였다. 1977년 오니츠카 타이거는 스포츠 의류 브랜드 GTO 와 니트 제품 브랜드 제렝크와 합병해서 새로운 브랜드를 세운다. 건강한 합병에 건강한 회사가 생긴다는 뜻의 아식스였다. 아식스는 오니츠카 타이거와 달리 토탈 스포츠 브랜드였다. 운동화부터 운동복까지 만들었다. 스포츠 용품 브랜드의 경쟁은 종목별 도장 깨기와 닮은꼴이다. 자신의 주종목에서 최고가 된 다음 다른 종목으로 점차 영역을 영토를 넓혀간다. 나이키는 농구로 시작해서 축구까지 확장됐다. 아디다스는 축구로 시작해서 러닝까지 확장됐다.

아식스는 러닝으로 시작해서 농구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최종 결승전은 스포츠 바깥 이상인 라이프스타일 패션화 시장이다. 아식스도 1970년대와 1980년대 전세계적인 조깅 열풍에 힘입어서 조깅 시장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합병을 거치면서 글로벌 토털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했다. 1985년엔 고베 포트 아일랜드에 스포츠 공학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때 지금까지도 아식스를 대표하는 기술인 젤 쿠셔닝 시스템이 개발됐다. 이렇게 아식스라는 브랜딩에 토탈 브랜드로서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고 여기에 연구개발 시스템까지 갖추게 됐다.

주종목 축구화도 나이키가 접수

그렇지만 이때부터 아식스의 위기가 시작된다. 1990년대부터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에 빠져든다.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이었던 아식스는 가격 경쟁력을 잃고 말았다. 1995년 터진 고베 대지진로 아식스의 제조업 시설도 파괴됐다. 그 사이에 나이키가 아식스의 주종목들을 도장깨기하기 시작한다. 단적으로 지금 최고의 마라톤화는 더 이상 아식스가 아니다. 나이키다. 나이키를 신은 마라토너들이 세계 대회를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충격 흡수나 무게감 모두에서 아식스는 나이키한테 밀리고 있다. 아식스의 젤 쿠셔닝 시스템은 훌륭하지만 최신식은 아니다. 그나마 동양의 발등과 발볼에 맞춘 아시안핏이라는 점이 아식스의 경쟁력이다. 사실 지금은 나이키 독주 시대에 가깝다. 아디다스조차 주종목인 축구에서 나이키한테 밀린 지 오래다.

결국 아식스는 일반 대중 시장보단 체육 전공자들이 가성비로 선호하는 스포츠 브랜드가 됐다. 스즈키 이치로나 오타니 쇼헤이처럼 일본을 대표하는 야구 메이저리거들 덕분에 아식스라는 브랜드의 명성을 유지했다. 아식스는 발이 빠른 이치로를 위한 야구화를 개발했다. 정작 LA에인절스의 오타니 쇼헤이는 최근 아식스에서 뉴블랜스로 야구화를 갈아 신었다.

아식스는 운동화에서 패션화로 방향 전환을 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씨앗은 2000년대부터 뿌려졌다. 아식스는 2002년 오니츠카 타이거 브랜드를 부활시킨다. 합병 이전 아식스의 뿌리가 됐던 브랜드였다. 브랜드의 오리지널티를 살리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오니츠카 타이거는 아식스와는 달리 라이프스타일 패션 브랜드로 만들어졌다. 2003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연출한 영화 <킬빌>에서 주인공 우마 서먼이 노란색 트레이닝복과 함께 신고 나온 운동화가 오니츠카 타이거다. 도쿄와 파리와 런던에서 패션쇼를 열면서 스트리트 패션화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해나간다. 2015년엔 아식스 타이거라는 브랜드도 런칭한다. 아식스는 기능성, 오니츠카 타이거는 스타일, 아식스 타이거는 기능적 스타일로 브랜드를 세분화했다.

나이키한테 스포츠 도장깨기를 당한 스포츠 브랜드들의 선택지는 패션화가 될 수밖에 없다. 운동장에선 밀렸지만 관중석에선 이기려는 전략이다. 아디다스도 아디다스 오리지널로 나이키한테 반격을 가했다. 아식스도 마찬가지였다. 초반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디다스와 달리 아식스는 2010년대까진 패션화 시장에서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했다. 2020년대로 접어들면서 마침내 2030 젊은 소비층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한다. 여기엔 2016년부터 협업해온 불가리아 출신 런던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의 역할이 컸다.

키코 코스타디노브는 이른바 고프코어룩으로 유명하다. 키코의 아버지는 건설 노동자였다. 어머니는 청소부였다. 키코는 자신의 뿌리에서 디자인 영감을 얻었다. 노동복과 등산복 같은 스타일을 패션으로 재해석했다. 코프는 아웃도어에서 에너지 충전용으로 먹는 견과류를 뜻한다. 코프코어라는 용어는 2017년 뉴욕 패션 매거진인 <더컷>에서서 처음 사용했다. 아식스는 키코 코스타디노브와 협업한 스니커즈와 어페럴들을 꾸준히 선보이면서 탄탄한 팬덤을 구축했다. 2023년 10월엔 파리 패션위크에서 아식스 노발리스라는 새로운 콜라보레이션 브랜드를 런칭할 예정이다.

매장 철수, 온라인 영업에 올인

이런 노력 덕분에 아식스는 현재 패션계에선 가장 협업하고 싶은 브랜드로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2030 세대 사이에선 아식스가 새로운 하입 브랜드로 통한다. 뉴진스의 히트콕 〈하입보이〉처럼 하입은 힙하고 핫하고 신선하다는 뜻으로 통한다. 나이키는 너무 주류고 아디다스는 너무 올드한데 아식스는 하입하다는 얘기다.

2030 세대한텐 아식스는 이미 신발장에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아식스는 2022년 3월엔 한국 디자이너인 마텡킴과 콜라보를 통해 화제를 모았다. 지금 2030이 몰리는 가장 하입한 스트리트에는 어김 없이 아식스가 있다. 최근 네이버 검색량에서도 아식스가 단기간에 500% 이상 증가했을 정도다.

이쯤되면 일학 개미들이 사들이는 아식스는 일종의 밈 주식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다. 유행하는 브랜드의 인기 주식인 탓이다. 키코 코스타디노브와 콜라보한 아식스 스니커즈는 신상이 40만원이지만 리셀가는 300만원에 달한다. 리셀 시장에서의 인기는 곧 브랜드의 인기를 뜻한다. 아식스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2023년 1분기 아식스의 놀라운 실적은 아식스 부활을 보여주는 결과다. 아식스가 체대생 브랜드에서 아티스트 브랜드로 변신에 성공한 덕분이다.

아식스는 후발주자였던 나이키한테서 이젠 다시 배우고 있다. 나이키의 D2C 유통 전략을 흡수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백화점 매장에서 철수하고 대신 온라인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하입해지는 브랜드 이미지와 온라인 유통이 결합되면서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브랜드에 건강한 실적, 아식스가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다.

- 신기주 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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